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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Dec 28. 2020

너의 감정은 언제나 옳아

타인을 살리는 공감의 지침서『당신이 옳다』 

 저는 제 자신을 좋은 청자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듣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기술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태도인 것 같아요. 상대방의 이야기를 정말 궁금해하는가 -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발판 삼는게 아니라. 그 자체로 상대방을, 상대방의 삶을 애정을 가지고 알고 싶어하는가 – 말이죠. 좋은 청자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운좋게 상대방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깊고 큰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역부족이예요. 이때 필요한 것이 적극적인 공감입니다. 바로 정혜신 선생님이 강조하는 ‘당신은 옳다’라는 지지 말이예요. 




 정혜신 선생님은 잘 알려진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사’ 등의 전문직 명칭보다 ‘치유자’라는 역할로 자신을 정의합니다. (이 글에서 어떻게 호명해야 할지 꽤 고민을 하다가 저에게는 큰 가르침을 주셨다는 의미에서 감히 ‘선생님’으로 적습니다) 병원의 상담실을 나와 우리 사회의 소외 받은 이들-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 등-의 현장에서 그들의 분노와 슬픔과 함께하셨죠. 시련과 비극 속에서 무너지려 하는 그들을 살려낼 수 있던 건 공감이었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우울증이나 정신자 ‘환자’가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 개별적인 존재로 자신을 보아줄 때. 자격증과 전문 지식이 무력해지는 응급상황에서 심리적 CPR 이 되어주는 거죠. 





어떤 것을 묻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죽고 싶다는 마음을 비쳤는데도 그 고통이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하고 방치되거나 외면되지 않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누가 죽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그 마음에 대해 자세히 묻는 것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라 여긴다. 아니다. 정반대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이 가장 절박하게 원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심각한 내 고통을 드러냈을 때 바로 그 마음과 바로 그 상황에 깊이 주목하고 물어봐 준다면 위로와 치유는 이미 시작된다. 무엇을 묻느냐가 아니고 나에게 집중하고 나의 마음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치유이기 때문이다.

                                                                            -정혜신, 『당신이 옳다』(2018), 해냄출판사, p.80





책 속 공감의 핵심들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세바시의 강의입니다. 책을 미처 읽지 못하시겠다면 20분이 채 안되는 시간을 투자해 들어보세요 :)

 






 사람의 감정은 고유한 존재와 맞닿아 있는 가장 진실한 영역입니다. 그래서 판단과 행위에 대해서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지 언정, 감정과 느낌만큼은 타인이 쉽게 비난하고 지탄할 수 없어요. 정혜신 선생님이 말하는 ‘당신이 옳다’라는 공감은 이 감정을 향합니다. 공감자는 사건의 내용보다 그 사건을 겪은 감정을 물어야만 그 존재로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됩니다. 만약 상대방이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찬찬히 물어야 합니다.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공감은 시작되고, “제대로 알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조심스럽게 물어야” 공감할 수 있습니다. 앎과 이해의 노력이 바탕이 되지 않는 공감은 겉핥기일 뿐이고, 무엇보다 그 공감이 ‘텅 빈’ 것이라는 사실은 상대방이 더 예민하게 알아차릴 거예요. 




감정은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의 이분법으로 판단할 대상이 아니다. 감정은 한 존재의 지금 상태를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바로미터다. 내 뺨을 스치는 바람 한줄기마다 고유한 이름과 성질을 붙이고 규정지을 수 없듯 끊임없이 움직이는 감정은 내 존재의 상태를 시시각각으로 반영하는 신호다.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고 그래서 모든 감정은 옳다. … 모든 감정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표피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을 감정을 긍정적, 부정적으로 가르는 시각은 한 존재의 핵심에 다가가는 일, 누군가에게 깊이 공감하는 일을 막는 큰 걸림돌이 된다. 

                                                          -정혜신, 『당신이 옳다』(2018), 해냄출판사, p.218-219





 저도 종종 누군가의 고민을 들을 때 곧장 답으로 직진하려는 마음이 들기도 해요. 현실적인 조언과 판단이 이 사람을 힘든 상황으로부터 빨리 구출해주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요.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공격적인 감정(‘죽이고 싶어’, ‘끔찍한 방식으로 복수할거야’ 등)을 표출할 때는 덜컥 겁이 나면서 상대방이 이런 감정을 느껴도 괜찮은 걸까, 걱정스럽게 자문하기도 하죠. 자꾸 상대방의 이야기에서 저의 안전한 세계로 뒷걸음질쳐질 때마다 정혜신 선생님의 말들을 생각합니다. 이해의 물음표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공감의 느낌표는 무의미하니까요. 마음을 다잡고 조심스레 묻습니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어? 어떤 점이 그렇게 힘들었던 건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어?’ 그때가 상대방의 연약하고 섬세한 마음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던 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격상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연장되면서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홀로 고립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 요즘이예요. (제대로 보낸 것 같지도 않은) 한해가 끝이 나고 (그다지 나아질 것처럼 보이지 않는) 한해가 다가오고 있죠. 새로운 꿈과 희망에 부풀어 마땅히 들떠야할 때 그러질 못하니 마음은 더 헛헛해집니다. '함께'라는 느낌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나의 소망처럼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다르지 않겠죠? 그러니 한해 동안 수고 많았다, 내년에는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냐, 식상한 안부의 인사를 건네며 우리 이렇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그런데 말이야. 요즘 네 마음은 어때?" 진정한 대화는 그때부터 시작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혜신 선생님은 유투브 TV를 통해 사연을 받고 그 마음들에 말을 건네고 계셔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따뜻한 말들을 듣고 싶을 때 찾곤 합니다. 코로나 블루를 위한 프로도 있으니 마음의 보살핌이 필요하신 분들께서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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