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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May 31. 2017

5. 쇼팽, 이 곳의 음악을 부탁해

폴란드 바르샤바



 식당에서 빗속일지라도 씩씩하게 걸을 용기를 얻은 후였다. 2시에 시작하는 Free Walking Tour에 참가하기 위해 구시가를 향해 걸었다. 식당과 멀지 않은 곳에 Saxon Garden이 있었다. 공원은 전쟁으로 파괴된 Saxon Palace가 있던 곳이며, 현재는 Tomb of the Unkown Soldier (기념탑)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빨간 우산을 쓰고 초록의 숲을 걸었다. 허문 땅에서 흙내음이 짙게 뿜어져 나왔다. 비는 키 큰 나무의 가장 연한 잎사귀의 향까지 안아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공원은 고요했다. 풀밭은 빗방울도, 사람들의 발뒤축도 포근하게 안았다. 모든 신중한 소리가 젖은 땅 속으로 흡수되는 것 같았다. 우거진 녹음 사이 사이가 아득해 보였던 건 그 때문일지 몰랐다. 그곳의 소리는 얕았다. 빗소리에 위안을 삼아 걷고 있던 나는 보통의 벤치와는 다른, 검은색 석조 벤치를 발견했다. 그리고 벤치 모퉁이의 단추를 누른 순간, 미끄러져나온 음악은 풍경에 다른 결을 만들었다. 내가 만난 것은 쇼팽의 벤치였다. 




쇼팽의 가족은 Saxon Palace에서 살면서 이 공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곡은 MAZURKA IN B B FLAT MAJOR, OP. 7 . 


빗소리와 새의 지저귐, 행인의 기척까지 함께 어우러진 쇼팽의 곡. 30초가 아쉬워 버튼을 누르고 또 눌렀다. 






 바르샤바는 쇼팽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폴란드가 가장 사랑하는 쇼팽이 태어나 어린 나이에 재능을 인정받고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터전이다. 쇼팽의 박물관, 쇼팽의 심장을 안치한 성당부터 쇼팽의 이름을 딴 국제공항까지, 폴란드는 다양하게 그를 기리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이 쇼팽의 벤치다. 바르샤바 도심 곳곳에는 20개의 쇼팽의 벤치가 있다. 모두 쇼팽의 삶과 음악에 의미를 갖는특별한 장소에 세워졌다. 


 쇼팽의 벤치는 사람이 앉기 위해 만들어진 단순한 벤치가 아니다. 도시 내 쇼팽 벤치의 위치를 보여주는 단순한 지도가 새겨져 있고, 음악 장치도 내재되어 있다. 단추를 누르면 쇼팽의 작품이 30~40초간 흘러나온다. 물론 벤치마다 곡은 다 다르다. 단추 옆 QR코드를 스캔하면 음악, 장소, 역사 등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Presidential Palace 앞 쇼팽의 벤치. 이 곳은 1818년 8살의 쇼팽이 첫 피아노 공연을 가졌던, 역사적인 데뷔무대였다.   



 예전에는 풍경에 음악을 입히는 일이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특히나 자연에는. 자연은 이미 존재의 소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음악이 있다는 것 또한 안다. 훌륭한 음악은 자연의 겸손하고 충실한 소리를 해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풍경과 소리가 가진 감동을 몇 배로 증폭시켜 전달해준다. 우리 마음에 음악의 선율만큼 출렁이는 파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내가 이날 비에 젖은 숲의 입구에서 들었던 쇼팽의 곡이 그랬다. 





http://en.chopin.warsawtour.pl/chopins-music


바르샤바가 쇼팽을 기억하고 또 현시대에 쇼팽을 되살리려 하는 노력은 Chopin’s warsaw 사이트에서 확인할수 있다. 쇼팽의 벤치가 위치한 장소와 그 의미, 벤치에 담겨있는 20곡의 멜로디를 비롯해 바르샤바의 과거와 오늘을 비교해볼 수 있는 체험, 쇼팽과 관련된 이벤트 소식도 업데이트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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