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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Jul 09. 2017

유월의 마지막 날




 며칠 전 경의선 숲길을 걸었습니다. 오랜만에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고 약속장소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나는 그 만남에 확신이 없었습니다. 만날 이유보다 만나지 않아도 될 이유가 많은 인연이었습니다. 고민은 대기 중 습기처럼 진득하게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습니다. 나는 결국 도중에 마음을 바꾸어 방향을 틀었습니다. 개의 목줄을 잡거나 캔맥주를 손에 쥔 사람들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곳이 경의선 숲길이었습니다.


 경의선 숲길 중 책의 거리는 신촌로터리와 창천삼거리 사이에 입구가 있습니다. 입구라는 말이 거창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목 끝까지 단추를 잠근 도심의 앞섬이 살짝 풀려있는 듯한 느낌을 받거든요. 하늘이 시원하게 보이고 길은 쭉 뻗어 있습니다. 정원은 소박하기 그지 없지만 길은 자신을 믿고 걸으라는 듯 당당하게 뻗어있습니다. 아마도 이 길의 자신감은 철로를 달리던 열차의 거침없는 활주로부터 비롯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용산과 가좌를 잇는 경의선은 이제 땅 아래서 오고 갑니다. 더는 필요 없어진 지상 철로는 걷혔고 그 길은 사람을 위해 닦아졌습니다. 경의선 숲길이라는 이름은 있지만 아직 숲을 떠올릴 수 있는 울창함은 없습니다. 그러나 콘크리트와 모래가 더 많이 덮인 길일지라도 숨통을 트여주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적어도 숲길을 꿈꿀 자격이 되는 길이니까요. 나는 싱그러움이 무성하게 뒤덮을 언젠가를 상상하며 가만가만 걸었습니다.








 숲길을 따라 홍대입구역 방향으로 쭉 걸어 내려가다 보면 고가도로가 나옵니다. 굴다리로 불렸던 캄캄하고 음침한 터널은 번듯한 가교의 모양을 갖췄습니다. 그래피티로 치장됐던 다리 안쪽 벽에는 책거리를 상징하는 장식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나는 터널에 빛이 없던 시절 3년을 그 지척에서 살았습니다. 터널에는 자주 가지 않았습니다. 터널이 통하던 길은 내가 오가는 동선이 아니었고 어쩐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기도 했으니까요. 사람들은 이제 밤에도 환한 빛을 맞으며 가교 아래 앉아 이야기를 나눕니다.


 굴다리 바로 옆, 굴다리를 낀 가장 마지막 집이 내가 세 들어 살던 다세대 주택이었습니다. 주인 할머니는 1층,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노래를 가르치는 사람이 3층, 나는 비어있던 2층을 얻었습니다. 나는 그 집을 처음 보자마자 마음을 뺏겼습니다. 당시 살고 있던 원룸에 비해 큰 평수도 이유였지만 내게는 거실의 큰 창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습니다. 아니, 그 창에 담겼던 풍경이 아름다웠다고 말해야 정확할 것입니다.


 커다란 창으로는 굴다리가 보였습니다. 굴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시선을 훔칠 수 있을 만큼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굴다리 너머 건물 숲과의 사이에는 푸석한 얼굴의 공터가 있었습니다. 봄에는 언뜻 풀이 돋아나는 듯 했고 가을에는 노란 건초의 등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모래 먼지가 폴폴 일어나는 마른 길이었습니다. 계약서를 받아가는 아주머니는 곧 공원이 조성될 거라며 그곳을 가리켰습니다. 그러나 내가 살던 3년동안 공사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곳이 영원히 버려진 땅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완전히 변해버린  위에  있었습니다.  닦인 보행로와 소박한 푸르름, 그리고 이제 그곳을 숲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가진  위에 말이지요. 나는 지나가는 아무라도 붙잡고  곳의 예전 모습을 느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갑자기 몰라볼 정도로 변했어요, 호소하고 싶었죠.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내가 기억하는 풍경은 아주 오래된, 3 전의 것입니다. 나의 기억과 애착은 흐르는 시간에 아랑곳 없이 고정되어 있던 모양입니다. 나는 그간 멀리 있었고 충분히 무심하였습니다. 이제서야 무릎을 치며, 나없이 너무 빨리 변했다며 원망 섞인 탄성을 짓고 있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나의 이라고 부를  있는 것들이 서서히 빠져나가는것 같습니다. 곁에 두고 계속 들여다볼  있는 것들이 갈수록 적어집니다. 설사 가까이 있는 것들이라 하더라도 언제나 마음을 쓰지 못합니다. 익숙한 대상이 별안간 낯설어지는 당혹스러움은, 내가 무심했던 시간에 대한 벌이 아닐까 합니다. 엄마의 손등이 생각났습니다. 작지만 두꺼운 엄마의 손은 무엇을 쥐고있고 있든 어디에 얹혀져 있든 억척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았을때 손은 무척 야위어 있었고, 손등에는 견뎌낸 세월의 흔적만 거죽으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나는 엄마의 손이 낯설어질 때까지 엄마와 너무 멀리 있었습니다. 내가 너무 멀었습니다.


 유월의 마지막 밤을 걸었습니다. 2017년의 절반이 과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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