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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Jun 25. 2017

불안해도 되잖아요? (2)

나는 구직자니까

 퇴사한 지 6개월이 되었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욕심이 나는 일이기 때문에 버텼던 자리는, 나답게 사는 나를 허락해주지 못했습니다. 삶의 균형이 무너지고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지요. 일로 성공하는 것보다 일 이전에 존재해야 할 나를 지키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속사정은 언제나 더 복잡한 법이지만) 나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그 후 나는 나 자신에게 성실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지쳐있던 몸에게 휴식을, 무기력해진 마음에는 활력을 주었습니다. 읽고 싶던 책과 영화를 몰아보고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글로 썼습니다. 이 곳 저 곳을 여행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일하는 내내 문득문득 나타나 나를 괴롭히던 의문은 머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삶일까? 지금 받는 보상들을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같은. 퇴사 후 찾아온 일상의 순간들은 의구심을 가질 수 없는, 단순하고 명백한 성격의 것이었으니까요. 거창하진 않았지만 자유 위에 쌓아 올리는 소박한 행복들로 충분했습니다. 내게 필요했던 건 삶의 재건이었습니다. 일 때문에 희생해야 했던 반쪽의 나,말입니다. 


 그러나 생계를 위해 다시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내 자신에게 6개월의 휴식을 약속했었습니다. 이번달 초부터 채용 공고를 슬슬 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일의 형태, 내가 일하고 싶은 조직의 그림이 확실해졌기 때문에 피곤한 고민은 덜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선택의 문도 좁아졌지요. 좁아진 문틈으로 미래를 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불안해졌습니다. 서른 살, 여성, 6개월의 공백. 회사가 싫어하거나 고개를 갸웃거릴 요소임이 분명하니까요. 생각보다 채용은 많지 않았고, 맞지 않은 조건들 때문에 초조해지기도했습니다. 


 퇴사도, 휴식도 모두 나의 선택이었습니다. 원망이나 한탄을 돌릴 변명의 대상은 없었지요. 나는 내 결정이 어리석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야 했고, 그걸 가장 먼저 입증해야 할 대상은 나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을 부정했는지 모릅니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부담감 때문에 수상한 자기 최면으로 변해버렸을 것입니다. 불안의 실체를 정면으로 응시하기보다, 과도한 자의식을 앞세워 불안해하지 못하게 막아서 버린 것이지요. 


 이건 진정한 자신감이 아닙니다. 스스로에게 안대를 씌웠을 뿐이지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세우기 위해 내가 잘 할 수 있느냐는 의심을 거세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눈 먼 자신감이 위험합니다. 적당한 의심과 불안 속에서 우리는 감정들의 원인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원인들을 하나씩 해결해가고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불식시켜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건강한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일 것입니다. 


 부정은 중요한 것을 외면하거나 기만하기 쉽다는 사실을 나는 잠깐 잊고 있었습니다. 겨우 재건한 나를 나는 다시 깜빡 잃을 뻔 했습니다. 이제 나를 부정하며 비겁해지지 말아야 겠습니다. 나는 미래가 조금 겁이 나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반쪽의 내가 계속해서 지켜질 수 있는 곳에서 다시 일해보겠습니다. 그 곳에서 몇 번째인지는 기억할 수 없는, 인생의 새로운 장이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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