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mi Jun 25. 2017

불안해도 되잖아요? (1)

나는 구직자니까

 며칠 전 직업선호도 검사를 하고, 그 결과에 대해 담당자와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검사는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취업 지원 프로그램에서 필수로 이행해야 하는 검사입니다. 내가 응시한 L형 검사는 개인의 흥미특성을 분석하여 해당 특성에 적합한 직업분야를 안내하고,개인의 성향을 알아내는 성격검사와 생활사 검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0분 남짓 소요되는검사의 문항은 그리 까다롭지 않았습니다. 나는 거의 모든 문항을 빠르게 답변했고, 그 결과는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나의 경력은 이제 5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 기간 동안 직장을 두어번 옮기며 조금씩 다른 업무를 경험해왔습니다. 나는 내가 어떤 일에 자신이 있고 무엇을 즐길 수 있으며, 기피하고 싶은 괴로운 상황은 무엇인지 알게 되었지요. 20대 중반까지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그 것을 좇을 열정만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의 전쟁터에서는 곧 낭만적인 이상이 깨지고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이 뜨이지요. 좌절과 실패를 거듭하며, 일에서의 꿈을 놓진 않을지언정, 나의 진짜 욕망과 능력을 알아야 합니다. 다양한 경험이 많을수록 그런 깨달음은 빠르고 분명하게 오지요. 결과는 내가 인정할 수 없는 의외의 것일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제법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하니까요. 


 AE:예술형과 진취형 (원점수만 보자면 SA: 사회성과 예술형이었지만 전반적인 결과로 볼 때 AE가 더 정확했습니다)으로 나온 흥미유형의 결과는 내가 알고 있는 나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놀랐던 것은 성격검사의 결과였습니다. 이 검사에서 도출되는 성격의 다섯 요인은 외향성, 호감성, 성실성, 정서적 불안정성 그리고 경험에 대한 개방성 입니다. 네가지 요인은기준 점수대의 범위 안에서 높거나 낮게 나왔으나, 정서적 불안정성의 점수가 조금 이상했습니다. 


 이 검사에서는 정서적 불안정성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정서적으로 얼마나안정되어 있고 자신이 세상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으며, 세상을 위협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정도”. 항목의 점수가 높다면 불안, 분노, 우울 등에 쉽게 빠져 스트레스에 취약하다고 해석합니다. 신경과민의 경우일 수 있으며 욕구통제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일 수 있지요. 반면 낮은 점수를 기록한 사람은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어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이 잘 대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민감하지않아 자의식도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정서적 불안정성의 점수가 낮게 나왔습니다. 자존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였기 때문에 그 점수를 당연하게 받아들였지요. 그러나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점수가 평균적인 범위를 넘어서 현저히 낮게 나온 것이었습니다. 50 후반대가 평균인데 비해, 30점대를 기록한 것이지요. 담당자는 유독 낮은 막대그래프에 동그라미를 치며 말했습니다.


“구직자가 자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불안해하는 건 자연스러운거예요. 물론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자신감이 높고 불안정한 미래에 대해서 받는 스트레스도 낮아 이 항목의 점수가 낮지요. 그런데 평균치보다 너무 낮은 점수가 나왔다는 건 다른 해석도 가능해요. 혹시 자연스러운 불안감까지 과하게 부정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두 번 세 번 다시 생각하고 말하는 나는 대답도 한 템포 느립니다. 그러나그 질문에는 두세 번의 되새김질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대답했습니다. 


“그런 것 같아요. 아니, 정말 그래요.” 


마치 요 며칠 두드러지게 느꼈던 불편함이 정곡을 찔린 것 같았습니다. 나는 부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용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