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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Aug 12. 2017

14. 우여곡절 많은 M과 나

폴란드 크라쿠프





드디어 받아본 상자. 발송인엔 폴란드의 Mateusz가, 수신인엔 한국의 내가 적혀있다. 







M은 누군가요?


 여행에서 돌아온 지 2주가 지난 5월 중순, 폴란드에서 부친 택배가 도착했다. Mateusz가 보낸 상자였다. 사연이 많은 상자다. 그래서 크라쿠프를 이야기할 때 나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호스트였다. 나는 크라쿠프에서 머무는 4일동안 그의 집에서 카우치서핑(Couch surfing)을 했다. 


 바르샤바는 아침 일찍 도착해 짧게 이틀을 머무는 일정이여서 도심의 호스텔에서 묵었다. 크라쿠프에서는 꼭 카우치서핑을 하고 싶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실제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이 여행을 특별하게 만드는 나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카우치서핑에 대한 내 첫 경험은 다음 글 별책부록(https://brunch.co.kr/@0327/50) 참고!) 그러나 내가 크라쿠프에서 머무는 4월 14~17일은 EASTER 주간이었다. 대부분의 호스트가 가족과 보내거나 여행을 떠날 계획을 가지고 있어 나는 요청을 줄줄이 거절당했다.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호스텔을 예약할 수 밖에 없었다. Mateusz는 출국 직전 극적으로 답을 보냈다. 일이 너무 바빠 한달동안 내가 보낸 메세지를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와의 신기한 인연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렇게 우린 만났다. Mateusz는 졸업 후 바로 일을 시작해, 나보다 세살 어렸지만 경력은 나와 비슷했다. 엔지니어인 그는 아트, 그중에서도 그래피티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잤던 방 한쪽 벽은 그의 그래피티 작품이었다. 그는 방이 세개 있는 아파트에서 회사 동료인 독일인과 대학교 친구인 미국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방에 내 침구를 마련해주고 EASTER 주말 내내 부모님댁에 가있었다. 허락되는 시간동안 함께 구시가를 걷고 도시 외곽으로 드라이브를 했지만 아무래도 우리에겐 짧았다. 그는 EASTER 주간임을 무척 아쉬워했다. 아마도 그때의 아쉬움이 내가 떠난 후에도 그가 기꺼이 나를 도와주게 된 이유가 된 것 같다. 




Mateusz의 방 그래피티 "H★ME SWEET H♥ME". 방은 추워서 빨강, 연두, 파랑 담요를 모두 덮어야 했다. 








무슨 상자인가요?


 폴란드는 물가가 저렴하다. 나는 크라쿠프에서 폴란드 그릇을 포함해 기념품과 식재료를 많이 샀다. 그러나 남은 여행기간 동안 무게와 부피가 제법 되는 짐을 가지고 다닐 자신은 없었다. 독일로 떠나기 전 한국으로 부칠 계산이었다. 폴란드는 국제배송 요금마저 저렴했으니까. 그러나 시기가 좋지 않았다. 쇼핑을 마친 금요일 오후 이후로 우체국은 문을 열지 않았다. 크라쿠프에서의 마지막 날인 월요일은 아우슈비츠와 비르켄나우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다. 투어는 우체국 영업 시간인 9-6보다 일찍 시작해서 늦게 끝난다. 결국 내겐 내가 사놓은 짐을 부칠 시간이 없었다. 투어에 그 짐을 가져간다고 해도 밤에는 나이트버스를 타고 베를린으로 넘어갈 테고, 결국 나는 독일에서 비싼 요금으로 짐을 부쳐야만 했다.


 마지막 밤 짐을 쌀 때도 Mateusz는 없었다. 나는 가방을 꾸리고 부쳐야 할 짐을 방 한 켠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고민 끝에 Mateusz에게 부탁을 했다. 나로선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가 거절해도 크게 낙심하지 말자고 혼자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Mateusz는 흔쾌히 허락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단단히 포장만 해준다면, 나머지는 자신이 알아서 하겠노라고. 그에게 성가신 뒷처리를 부탁한 것이 못내 맘에 걸렸다. 침구를 가지런히 개고 그의 방을 나올 때에도 마지막에는 한구석 쌓아 올린 짐에 시선이 갔다. 집주소를 또박또박 적은 포스트잇이 맨 위에 있었다. 

 


 국경을 넘어 독일을 여행했던 나나 휴가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간 그나 모두 바빴다. 우리는 독일에서도,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도 연락을 주고 받았다. 회사 때문에 주중에 우체국을 갈 수 없던 그는 택배를 부치는 일이 늦어져서 연신 미안해했다. 나는 그를 닦달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받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 감사한 처지였다. 마침내 도착한, 테이프로 꽁꽁 둘러진 종이상자가 어찌나 반갑던지. 닳고 때가 탄 상자의 모서리에서 Mateusz와 나 사이의 먼 거리가 읽혀졌다. 상자를 여니 기념품과 먹을 거리가 가득했고 상자 가장 밑바닥에는 두툼하게 포장된 폴란드 그릇이 깔려 있었다. 가장 원했고 기다렸던 선물. 떨리는 손으로 에어캡을 천천히 벗기는데, 갑자기 훌렁하며 손에 부재의 감각이 느껴졌다. 그랬다. 그릇 두 개는 모두 반으로 두 동강 나 있었다.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빗겨나가지 않는 불운을 목도하니 마음이 서글퍼졌다. 하지만 멀쩡한 상태로 남의 것이기보다 망가졌지만 나의 손에 있다는 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멀리서 온 것들이 온전하게 내게 안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마치 전리품처럼 느껴졌던 물건들. 한국에선 흔히 보지 못하는 유형의 과자부터 폴란드 스프(내가 반한!)와 유명한 화장품까지. 대부분 선물로. 
이번 여행 최고 사치였던 폴란드 그릇은 처참히 깨져서 왔다. 자세히 보면 두 그릇 모두 반으로 깨진 금이 보인다. 커피잔 세트마저도 깨져서 왔다면 며칠은 앓아누웠을지 모른다. 




 



택배를 받았으면 끝 아닌가요?


 택배는 가장 저렴한 선박을 이용했다. 3kg 정도 했던 상자의 국제 배송비는 23 euro 였다. Mateusz는 그가 상자를 부쳤다고 연락한 날, 내가 오후에 바로 송금하겠다는 것을 한사코 마다했다. 상자가 우리 집까지 도착해 개봉해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후 돈을 받아야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난 택배를 받은 다음 날 은행을 갔다. 그러나 워낙 소액이라 송금 금액에 비해 수수료가 1.5~2배 정도가 됐다. 나의 투정을 들은 Mateusz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제안했다. 


     "If It charge You a lot, just put 20 EUR into the envelope ( you don't need to send me coins of 23 eur, just put 20 EUR and postcard from Seoul I love postcards ).Letter can't bㄷ expansive."



 그리하여 나는 그를 위해 카드와 엽서를 고르고 정성껏 편지를 썼다. 빳빳한 20 euro 지폐 한 장과 그가 좋아할만한 그래피티 스티커 (Don't Panic이 큰 도움이 되었다!)를 잔뜩 담아 봉투를 봉했다. 그는 6월 즈음 내 카드를 들고 환히 웃는 사진 한장을 보냈다. 




"The best letter I have ever received!"




 Mateusz 덕분에 폴란드에서 산 작은 선물들은 모두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투명 에폭시접착제로 위태롭게 붙인 폴란드 그릇도 가끔 이쁘게 깎은 과일을 담아낸다. 접시를 가로지르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금을 볼 때마다 이 그릇이 내 앞에 놓이기까지의 순탄하지 않았던 시간이 떠오른다. 그래서 흉한 모습에도 자꾸 쓰게 된다. 어떤 이의 선의와 기꺼이 베푸는 수고로 인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 사람의 일상에 풍족함을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을. 자꾸 생각하곤 한다.   













+덧. 나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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