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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Aug 12. 2017

14-1. 별책부록: 카우치서핑

폴란드 크라쿠프


 2013년, 3개월동안 홀로 떠났던 배낭여행을 카우치서핑으로 다녀왔다. 여행을 다녀와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왔다. 나에겐 지금 회상에도 여전히 가슴 뛰고 특별한 시간이었다. 

 지금은 에어비앤비(Airbnb)가 제 3의 숙박 형태로 유행하고 있다. 여행지에서 현지인처럼 지내고 싶은 여행자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것이다. 그들이 내건 '여행은 살아보는거야' 라는 캐치프라이즈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나 역시 에어비앤비로 여행한 도시가 더러 있고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카우치서핑과는 같은 느낌일 수 없다. 에어비앤비에서는 주인과 손님의 관계를 넘기가 어렵다. 호텔 프론트의 직원보다야 훨씬 가깝고 친근한 사이지만. 

 반면에 카우치서핑은 현지인과 여행자가 만나는 느낌이다. 그리고 금새 친구가 된다. 어쩌면 이미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끼리 만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완전한 타인의 집에 발을 들여놓는 여행자나, 완전한 타인인 여행자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현지인이나 모두 무모한 모험을 하는 셈이다. 호기심과 순진한 믿음, 조건없는 친절이나 격의 없는 친근함이 어색하지 않은 사람들만이 그 모험에 몸 던질 수 있으니 말이다. 


During 81 days journey, 32 hosts and 37 different beds, couchs or even the floor I stayed awhile.

81일간의 여정, 32명의 호스트, 내가 머물었던 37개의 침대/소파 혹은 바닥. 나는 떠날 때 마다 고마운 마음을 적은 하트를 남겨놓았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도전은 Coach surfing이었다. 한국에서는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한 숙박형태지만, 유럽에서는 인기를 끈 지 제법 되었다. Coach surfing은 의미 그대로 현지인 집에 빈 소파나 침대, 하다못해 마룻바닥 한켠에서 숙박을 하는 방식이다. 


 Coach surfing은 자체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다. (www.coachsurfing.org) 이곳에는 세계 방방곡곡 자신의 장소를 여행객에게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호스트들과 호스트를 찾는 여행객들이 가득하다. 호스트가 프로필을 통해 자기소개와 숙박 장소, 규정 등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면 여행자는 자신의 숙박 예상 일자와 함께 마음에 드는 호스트에게 숙박을 신청하게 된다. 호스트는 여행자의 프로필을 포함하여 여행의 동기, 자신을 호스트로 택한 이유 등을 읽고 수락 여부를 결정하여 통지한다. 만약 호스트와 게스트 간 합의가 이루어지면 숙박이 성사되는 것이다. 그들은 만날 시간과 장소를 조율하고 만나게 된다.그리고 이 대목까지 와서 대부분 눈치 챌 수 있는 Coach surfing의 전제조건이란 바로 신뢰이다.


 여행을 떠나겠노라고 선언했을 때 부모님이 가지셨던 불안은 내가 Coach surfing으로 여행하겠다고 했을 때 극대화되었다. 부모님이 온라인상의 단편적인 정보들로 어떻게 호스트를 믿을 수 있느냐는 의심을 갖는 건 당연했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낯선 사람 집으로 걸어 들어가 잠을 잔다고? 어느 대목에서 안전하다고 느껴야 되는 거냐?’


 나는 우물거리다가 대답했다.


 ‘그러게요.’


 얼핏 생각하면 정신 나간 소리처럼 들릴 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이어지고 있잖아요. 어차피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믿는 쪽이 편하죠.’


 부모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신의 딸이 무모해도 너무 무모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드셨을 것이다. 그러나 둘째가라면 서러울 쿨-한 부모님 아니셨던가.


 ‘그래라, 그럼. 네 목숨은 네가 알아서 부지하거라.’


 그렇다. 나는 살아 돌아오라는 충고를 들어야 하는 여행을 다녀왔다.




  Coach surfing 사이트는 사용자의 확실한 검증을 위한 다양한 장치를 갖추고 있다. 회원 가입 시 철저한 본인 확인 절차를 거쳐야만 하고, 게스트는 숙박 후 호스트에 대한 평가를 자유롭게 남길 수 있다. 호스트는 자신의 프로필에 게재된 게스트들의 평을 수정하거나 삭제할 권한이 없다. 또한 타당한 이유가 있을 때 호스트를 신고할 수 있으며, 심의를 걸쳐 호스트는 영구 제명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장치들은 타인에 대한 완전한 확신을 심어주기에는 역부족이다. 중요한 것은 신뢰다. 사람들의 선한 호의를 믿고 그에 성실히 응하는 것. 불신은 끝없는 의심을 낳고 불안을 증폭시킨다. 선함에 대한 눈 먼 믿음 없이는 Coach surfing은 애초에 불가능한 모험이다.


 불쾌하고 아찔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나는 Couch surfing을 선택한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나중에 Couch surfing에 대한 글을 따로 쓰겠지만, 굳이 그 글을 읽지 않아도 내 여행을 들여다보게 되면 알게 될 것이다. Couch surfing이 이번 여행을 얼마나 아름답고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는지를. 여행에 중반부부터는 내가 Couch surfing을 통해 여행을 하는 중인지, Couch surfing을 위해 여행을 하는 중인지가 불확실해질 정도였다. Couch surfing은 단순히 숙박비용을 아끼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다른 세계의 다양한 사람이 있고, 그들이 서슴없이 열어주는 일상이 있다. 내가 받게 되는 것은 공짜 침대가 아니라 그들의 진짜 삶에 기웃거릴 수 있는 행운이다. 살아생전 다시 오기 힘든 머나먼 도시 속 삶으로의 초대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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