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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Aug 18. 2017

16-2. 아우슈비츠, 끔찍하고 끈질긴 잔해를 보다

폴란드 크라쿠프

 

이상한 날씨였다. 하늘도 기이했다. 입구를 통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개를 숙인채 걸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수용소에서 지정하는 공식가이드와 투어 하는 것이 원칙이다. 내가 속한 팀처럼 소수의 여러 팀들이 합쳐져 삼십명 남짓되는 그룹이 조직됐다. 그리고 가이드가 배정된다. 그룹을 구별하기 위한 주황색 스티커를 붙인 우리는 앞선 가이드 그룹과 시간차를 두고 입장할 수 있었다. 가방 검색을 마치고 가이드의 마이크와 연결된 헤드폰을 착용한 뒤 수용소 입구로 걸어 들어갔다. 


 녹이 슨 얇은 철문에는 독일어 ARBEIT MACHT FREI 가 새겨져 있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여기서 가능한 자유란 노동에의 몰두로 죽음의 공포가 잠시 잊혀지는 눈속임 같은 것, 이었겠지. 수만의 사람이 들어섰지만 대다수가 다시 나오지 못했던 그 철문 아래를 걸어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맑게 갠 반쪽의 하늘에선 햇빛이 쏟아졌고, 아직 흐린 반쪽의 하늘에선 여우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가 정확히 어떤 하늘 아래 서 있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나치가 운영한 강제수용소 중 가장 큰 규모다. 1940년에 지어진 후로 기존의 다른 수용소의 본부 격이 되었다. 본래 정치범을 수용하려는 목적으로 지어졌으나, 이내 유럽 전역의 유대인과 집시들을 실어 날랐고 가장 악명 높은 학살 시설이 되었다. 나치군이 러시아 군대에 밀려 퇴각하기까지 5년 동안,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130만명에 달하는 이들이 수감되었다. 그리고 110만명의 이들이 죽었다. 대부분 가스실에서 학살당했고, 수용소 내 질병, 굶주림, 구타 또는 생체 실험 등으로 사망한 이도 많다. 사망자의 90%는 유대인이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하루최대 1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이마저도 허름한 막사에 사람을 마구잡이로 집어넣을때 나올 수 있는 단순한 수치라고 한다. 막사 안은 끔찍했다. 마구간 같이 생긴 막사는 목재로 층을 만들어 누울 수 있는 칸을 만들었는데, 나중에는 수감자가 늘어나는 바람에 사람들은 빽빽하게 서서 잠을 자는 지경까지 갔다고 한다. 제대로 먹지 못했고, 씻지도 싸지도 못했다. 잠시 눈을 붙였다 일어나면 옆 사람이 싸늘하게 죽어있었다. 딱딱하게 굳은 시신을 여러명이 힘을 모아 막사 밖으로 옮겼다. 악몽보다 더 끔찍한 시간이 그들에겐 일상이었다. 매일 매일 막사에서는 희망도 죽어나갔을 것이다.   


 내가 나치의 수용소를 처음 접했던 건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통해서였다. 주인공 유대인 귀도는 다섯살 아들 조수아와 수용소로 끌려가는데, 아들에게 수용소 생활을 단체 게임이라고 위장한다. 아버지의 기상천외한 거짓말과 순진무구한 아들의 반응에 쿡쿡 웃었다. 그리고 웃고나선 어김없이 씁쓸해졌다. 아이에게 수용소가 거대한 놀이터로 비쳐질 수 있던 이유는 그곳의 비극이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가 아니었을까. 희극의 재료인 부조리가 가득한 공간이었으니. 감독이 가벼운 농들로 아무리 치장해도 그곳의 슬픔은 훼손될 수 없는 무게이고 깊이였다. 영화 도중에 모두가 웃진 않을 테지만 끝내 모두가 울었을 것이다. 




 유대인을 몰살시키라는 히틀러 명령에 의해 유대인이 집중적으로 수감되기 시작한 건 1942년. 수용 한계치를 넘어서자 수용소는 거대한 학살터로 변했다. 기차로 이송되어 온 유대인은 플랫폼에 내리자마자 선별 당했다. 노동이 가능한 남자만 수용소로 이동하고 나머지 약자, 여성과 아이들, 노인 등은 즉시 가스실로 보내졌다. 가스실에서는 20분만에 2000명을 한꺼번에 죽였다. 시신을 태웠던 화장터에서도 몇 분마다 쌓이는 시체를 전부 처리할 수 없는 포화상태가 되었다. 나치군은 땅에 시신을 쌓아 불에 태우거나 그마저도 시간이 모자라 적당히 흙을 덮어 묻었다. 가이드는 양손을 앞에 모으고 말했다. 




 "수용소의 이들은 이곳 어디에도 있습니다. 나는 영적인 측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땅에 묻혀 썩었고 재가 되어 공중에 날렸습니다. 말 그대로 그들은 여기서 죽어 아무렇게나 흩어졌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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