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건너편에는 작은 텃밭이 하나 있다.
해마다 봄이 오면 싹을 내미는 채소들은 주인을 닮듯 건강하게 자랐고 밭에는 그 흔한 잡초 하나 보이지 않았다.
텃밭의 주인인 성훈 할머니는 90대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일을 하셨고 항상 우리 집 앞마당을 통해 그곳을 드나들곤 했다.
내가 보기에는 할머니가 보내는 시간의 대부분은 밭에서였는데 그렇다고 텃밭이 아주 크거나 일거리가 넘칠 만큼 많은 것은 아니었다.
밭을 보면 늘 할머니 모습이 떠올랐고 할머니를 보면 곧 밭이 떠오르곤 했다.
그 모습은 산촌에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것처럼 매우 자연스럽고 익숙한 풍경이기도 했다.
우리 집 창을 통해 철 따라 변하는 밭의 풍경과 할머니의 놀이와도 같은 일상을 바라보는 것은 무료한 내게 쏠쏠한 즐거움을 주곤 했다.
할머니의 정성으로 자라는 채소들의 푸르고 싱싱한 모습을 보면 때때로 내 마음속에도 파릇한 기운이 넘쳐나곤 했다.
해마다 밭을 채우는 채소의 종류는 달라지는데 감자나 고구마 마늘, 상추, 고추, 배추, 무, 옥수수 콩 등 그들 중 어떤 것이 선택받게 될 것인지는 오로지 할머니의 생각에 달려있었다.
오랫동안 채소를 키우면서 터득한 작물에 대한 특성이나 성격을 할머니는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때에는 내가 밭으로 다가가 요즘 인기가 좋은 품종에 대해 얘기를 하거나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채소를 길러 보는 게 어떨는지 의견을 제시해 보았지만 그때마다 할머니는 당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나의 제안을 슬며서 비껴나가곤 했다.
안 되는 이유는 분명했다.
병충해에 약하고 토질에 맞지 않고 습기에 약하다는 등의 확실한 이유를 해박한 전문가처럼 유창하게 설명 해주었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참아왔던 사람처럼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내었다.
일단 그런 논리와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우리 식탁에 오르는 채소에 대한 지식이 총망라되어 그 이야기를 듣는 데에만 많은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밭에 심을 품종의 선택은 언제나 할머니의 몫이었지만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특별히 힘들이지 않고도 나의 정원처럼 그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할머니의 판단에 따라 채소의 인생은 여러 해를 이어가기도 했고 한 해로 끝나버리거나 몇 년 동안 볼 수 없는 경우도 생겨나곤 했다.
할머니가 정성 들여 키우는 채소는 우리 집 식탁에도 영향을 미치곤 했다.
추수를 할 때마다 우리 집 앞에 몰래 두고 가는 적지 않은 채소들(매번 수확할 때마다 그랬다. 절대로 두고 가시지 말라고 부탁해도 막무가내였다) 때문에 미안하고 황송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얼마 안 돼서..... 또는 별 것도 아닌데.....’ 하면서
오히려 우리에게 미안해하거나 소녀처럼 수줍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한 해 동안 얼마나 힘들게 지은 것이란 걸 알고 있는 내게 할머니가 곁들이는 겸손에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여러 해 동안 염치없이 받아먹곤 했다.
참 이상도 한 것이 아랫 밭의 진수 할아버지도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사는 가영이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수시로 우리 집 앞에 당신들이 키운 채소를 몰래 놓고 가곤 했는데.......
처음엔 누가 두고 간 것인지 왜 얘기하지 않는지 그런 것 때문에 오히려 신경이 더 쓰이곤 했다.
심지어는 몇 달이 지난 후에야 밝혀낸 적도 있었는데 그분들 덕분에 키우지도 않으면서도 채소는 집안에 넘쳐나곤 했다.
요즘은 채소가 담긴 바구니만 보고도 단 번에 어느 분이 다녀갔음을 알 수 있다.
한동네에 십여 년 살다 보니 산촌 사람들의 특징이란 것이 산에서 얻어지는 나물이나 추수한 채소 또는 맛난 음식에 이르기까지 서로 나누는 일이 보편화되어있다는 것이다.
힘들이며 키운 채소를 이웃에 나누어주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행위이기도 했고 내 것과 상대방 소유의 경계마저 허무는 것이기도 했다.
마치 살면서 공유하는 공기와 물처럼 나누고 가까이 지내는 것을 보면 그들의 인정은 각별한 데가 있었다.
처음엔 밖으로만 맴돌던 우리도 그들의 활짝 열린 마음속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한 것도 어쩌면 땅이 인간에게 베풀어 주는 넉넉함을 보고 배운 데서 생겨난 삶의 철학이 아닐까?
누군가 농사를 짓는 일은 천천히 삶을 알아가는 행위라고 했듯 산촌의 생활은 좀 더 살아보아야 이해되는 부분이 참 많았다.
처음 귀촌하여 작은 텃밭을 가꾸는 일을 시작했는데 매번 잡초들의 거센 도전을 이겨내지 못한 채 두 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잡초더미에 묻힌 밭을 바라볼 때마다 게으른 주인을 만난 탓인 듯해서 사람들 보기가 민망스러웠고 한편으로는 자연을 너무 모르고 덤빈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땅을 마주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부지런함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농사를 짓는 일은 아이들의 철없는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끔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무렵 일을 마친 할머니는 밭둑으로 저만치 물러나 하루 동안 일구어 놓은 밭을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당신이 오늘 하루 열심히 일한 것만큼의 후련함과 보람이 생긴 듯했고 앞으로 남아있는 일들에 대해 생각하는 듯했다.
부드럽게 펴진 흙과 반듯한 고랑, 그 속에 심을 씨앗과 한여름의 가뭄과 태풍, 달려드는 잡초들과 병충해 등을.......
그것은 또한 당신이 지금껏 살아온 시간들과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이기도 했다.
할머니는 밭에 있을 때가 가장 평온해 보였고 텃밭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할머니의 삶은 간결해지고 깊어지는 듯했다.
텃밭은 언제나 할머니 인생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무대와도 같았다.
비록 작은 텃밭이긴 하지만 그 속에는 해마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꾸준히 일구고 채소를 키우며 살아온 할머니의 인생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나이 들어 나에게도 항상 손이 가고 마음이 가는 텃밭 하나를 놀이터처럼 곁에 두고 살았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