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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광 Jan 27. 2022

나무가 알을 낳았어요

봄은 약수를 마셔야 온다.

               

앞뜰의 노란 국화와 수국이 어느 날 몰아닥친 강추위에 꽁꽁 얼어버렸다.

추위를 근근이 견디어내며 집을 지켰던 꽃이 갑작스럽게 얼고 허물어진 모습은 참담했다.

우리 집을 여보란 듯 지켜주던 그들이 그나마 내겐 위안거리였는데 그들을 잃고 나니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듯 한동안 마음이 허전했다.

내 앞에 남아있던 꽃은 그들을 끝으로 막을 내렸고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듯 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골목에는 사람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좀처럼 무료함을 참지 못하는 나는 집 주변을 기웃거리며 소일거리를 찾곤 했다.

냇가에서 바위를 옮겨 돌담을 고치거나 실개천에 빠진 낙엽들을 모으거나 전정가위를 들고 웃자란 매화나무를 손질하기도 하며 겨울의 기세를 눌러보곤 했다.

막상 일에 집중하다 보면 몸이 후끈 달아오르고 종전까지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잡념들이 말끔히 사라지고 활력이 생겨나곤 했다.

그렇게라도 고단하게 하루 일을 끝내고 잠자리에 누우면 뭔가해냈다는 성취감에 마음이 뿌듯해지고 더러 떨어진 자존감이 회복되기도 했다.

겨울철 내가 무계획적으로 선택하는 일은 쉽게 늙지 않고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해내고 싶은 삶을 조금이나마 지탱해주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은 건강하고 신성한 것이라는 말이 실감이 나곤 했다.


마을은 한동안 텅 빈듯하다가도 2 월에 가까워지면서부터 점차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길가에서 가끔 두런거리는 사람들 소리가 들려오고 둘레길을 걷는 낯선 사람들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마을 어디선가에서 한결 순해진 바람을 타고 봄기운이 스며드는 듯했다.

가까운 산에는 벌써 고로쇠 약수가 나오고 있어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을 부르고 있었다.

내가 깃들어 사는 백운산 골짜기는 우리나라에서 고로쇠가 처음 시작된 곳으로 제법 알려져 있었다.

겨울의 추위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주를 끝으로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고로쇠나무가 물을 내밀어 주었다.

지루한 추위를 박차고 일어선 사람들은 고로쇠를 찾기 위해 가파른 산을 오르곤 했다.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큰 나무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일이 힘들수록 더 많은 약수들이 돌아왔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안방 드나들 듯 산을 누볐던 어른들은 다리에 힘이 풀어지면서 더 이상 산을 오를 수 없게 되었다.

산을 은퇴한 어른들이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마치 미래의 나를 보는 것 같아 쓸쓸해지기도 했다.


약수는 나무에서 가느다란 투명 호스를 타고 아주 천천히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세상에 처음 고개를 내밀 듯 방울방울 떨어지는 약수를 보면 겨우내 움츠려있던 욕망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곤 했다.

마땅히 해야 했던 일들과 봄이면 하고 싶은 일들이 맞물리면서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암담한 현실과 맞서곤 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하기보다는 봄이 오면 달라질 것들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

자연은 사람에 비해 답답할 만큼 느릿느릿 움직였고 자연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수시로 충돌했다.

내가 귀촌했던 해에는 아무리 봐도 멈추어있는 듯한 자연을 보며 지루함을 떨칠 수 없었다.

‘뜰에 뿌린 꽃씨는 왜 아직 소식이 없는지, 뒷산에 심은 매화는 언제 열매를 맺을 건지, 아침은 왜 그리 더디게 오는지 등등......’

자연은 늘 일정한 속도로 가고 있지만 나는 늘 뭔가를 빨리 이루고 싶은 욕심 때문에 조급해지곤 했다.

맛있는 밥을 위해서는 가열과 뜸의 시간이 필요하듯 자연은 나에게 늘 느긋해지기를 요구했다.

뜨거운 날이 계속되는 여름에도 나무에는 푸른 감이나 푸릇한 밤송이가 커나가는 것을 보면서  자연이 준비하는 과정을 간간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가을이란 여름이 키워온 것을 수확하는 기간일 뿐이었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내일을 준비하는 자연의 성과는 결코 인간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자연 속에 길들여지다 보니 점차 나도 자연의 속도를 이해할 수 있었고 지금 제법 자연에 익숙해져 있었다.  


나무들이 물을 몸 밖으로 내밀면서 지상에 어떤 신호라도 보내는 것인지 작은 연못에 개구리들이 울었다.

아직 경칩까지는 많은 날이 남았는데 짝을 부르며 합창하듯 울리는 소리는 거의 발악에 가까웠다.

잠에서 깬 것인지 처음부터 잠을 못 이루고 있는 것인지 짝을 찾는 일이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절실해 보였다.     

 

더 높은 산에 다가가니 나무마다 매단 봉지에는 수액들로 가득했다.

아직 한 방울도 보내지 않은 나무들도 있긴 했지만 마치 많은 알을 낳은 듯 비닐봉지가 부풀어 올라있었다. 한 방울씩 천천히 떨어지며 며칠을 쌓아놓으니 꽤 많은 양이었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고로쇠 약수는 봄이 오고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약수를 찾아 한동안 뜸했던 사람들의 발길도 잦아졌다.

예전 같으면 여수 돌산도에서 또는 고흥 섬마을에서 단체 손님을 실을 버스들이 마을 주차장을 가득 채우곤 했다.

해풍을 맞으면 사는 사람들에게 특효가 있다는 소문 따라 섬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들은 저마다 어느 민박집 뜨듯한 아랫목에 눌러앉아 숯불화로에 고기를 구우며 항아리에 가득한 약수를 밤새  마셨다.

많은 양을 들이켜야 속이 더 깨끗해지고 더 건강한 봄을 맞이할 수 있다며 전투하듯 마셔댔고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신호가 왔다며 빈번하게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작은 온돌방마다 화장실이 구비되어있는 이유를 그때서야 알 수 있었다.

밖은 찬 바람이 씽씽 불었지만 산촌의 뜨거운 온돌방에서 약수를 마시며 하룻밤을 보내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내겐 생소한 문화였고 시간을 거슬러 내가 시작되었던 먼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낯선 객지에서 상처받던 내가 그리던 자연의 품 안으로 돌아와 구원받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막연히 가난하다고 여겨지던 시골 사람들의 삶이 오히려 도시 사람들에 비해 훨씬 풍요롭게 느껴졌다.  

그 후로 도시 한가운데에서 치열하게 살면서 문득문득 그런 순간이 나를 찾아오곤 했다.

뒤늦은 생각이었지만 나도 시골 사람들처럼 살고 싶었고 사람답게 살고픈 마음이 솟구쳐 올랐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삶은 헛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추억이 내 시야를 바꾸어놓았고 다행스럽게도 나는 평소 가고자 했지만 멀리 벗어나 있었던 나의 길에 들어선 기쁨을 누리고 있다.

아직은 추운 날의 연속이지만 진정한 봄은 고로쇠 약수를 마셔야 온다는 것을 진리처럼 생각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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