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뼈마디를 드러낸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잎이 풍성했던 자리에 실핏줄 같은 잔가지들이 하늘을 덮고 있다.
잎에 가리어져 속내를 알 수 없었던 나무들의 욕망이 이제야 보이는 듯하다.
더 멀리 더 높이 다다르려 했던.........
돌아오는 봄이면 분명 그렇게 닿아 있을 것이다.
겨울산에는 특별히 아름다운 구석이 잘 보이지 않지만 보란 듯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낸 나무들이 가끔 예뻐 보이기도 한다.
산촌 마을은 대부분 산을 경계로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큰 산맥이 흘러와 작은 능선을 만들고 능선이 쇠하는 지점에는 영락없이 마을이 들어서 있다.
마을마다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고 어떤 역사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읍내로 향하는 차창으로 드러나는 묘목이나 작물을 보며 어렴풋이 짐작해 볼 뿐이다. 길은 산으로 막혀있는 사람들 간의 소통을 권하듯 마을에서 마을로 이어지며 읍내에 닿는다.
읍내에 못 미친 길 위에 걸린 하얀 현수막들이 요란하게 나부낀다.
지역에 반가운 일이나 축하할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길을 가로지른 나뭇가지에 걸리며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곤 한다.
현수막들이 나란히 걸려있는 곳에 가까이 다가서니 아니나 다를까? 올 해도 어김없이 반가운 소식들이 주를 이룬다.
“구서 마을, 김갑동 3남 김 00 사법고시 합격!”
“하조마을 허진구 박사학위 취득”
“ 봉강초 출신 박치곤 00 전자 전무 승진을 축하합니다”
그들을 보니 한기 가득한 겨울 날씨인데도 가슴이 훈훈해져 온다.
언뜻 과시하듯 자랑하는 풍경은 희화적이지만 고향의 친구, 이웃들이 보내는 응원에 진심이 묻어난다. 산속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의 열린 마음을 보는 듯하다.
현수막 아래를 지나가는 차량들의 속도가 늦어지는 걸 보면 그들 눈에도 축하 메시지가 닿는 듯하다.
이렇게 작은 마을 곳곳에서 해마다 빠지지 않고 축하 격문이 걸리는 걸 보면 소위 인재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곳이 결코 큰 도시에 국한되어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 보면 보잘것없는 산촌에 불과하지만 지금도 들판에 돋아나는 새싹처럼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아직은 여리고 불분명하지만 다가올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도 모를 일이 다.
나는 오래전 동해의 작은 어촌에서 태어났고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줄곧 고향에서 살았다.
내 위로 터울이 큰 형이 있는데 공부를 잘해 서울에 있는 세칭 일류대학이라는 곳에 합격했다.
그날 우리 집에서는 잔치가 벌어졌고 부모님은 대단한 일을 했다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았다.
그날을 돌이켜보면 형으로 인해 우리 집의 살림살이가 펴질 수도 있다는 큰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집안에서 자식을 서울로 보내어 대학 공부를 시키기엔 큰 무리가 따랐다.
형의 대학 생활이 시작되자 부모님은 새벽부터 밤이 늦도록 일을 했고 일에 지친 어머니는 밤마다 앓는 소리를 했다.
어쩌다 잠에서 깨어 고단함에 짓눌리는 어머니의 신음 소리를 들으면 속상한 나머지 금방이라도 울음보가 터질 것만 같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우리 집에는 작은 희망이라도 들어설 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생활은 갈수록 쪼들리고 힘겨웠지만 어머니는 형이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우리를 다독거렸고 늘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 시절은 힘겨웠지만 다행히 잘 지나갔고 형이 졸업하자 우리 집도 조금씩 형편이 나아질 수 있었다.
당시 우리 부모님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목적으로 공부를 시켰지만 정작 당신들은 더 험난한 인생을 살았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당신들의 용기 앞에 저절로 숙연해진다.
세상에 이름을 빛낸 사람들 주변에는 우리가 모르는 놀라운 일들이 있음을 발견할 때 그 사람의 인생이 더욱 값지고 훌륭해 보인다.
언젠가 축하 현수막 아래를 지나면서 아들이 뜬금없는 말을 했다.
“ 엄마 아빠는 만약 저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면 저런 거 안 걸 거죠? ”
한 번도 생각 해 본적이 없었지만 우리에게 그런 날이 올까 싶었다.
“. 글쎄?. 돼지 한 마리는 잡아야 되지않겠어?.......”
나는 선심쓰듯 농담을 던졌지만 그가 힘겹게 지나오고 있는 날들을 생각하는 중이었다.
전공과는 달리 글을 쓴다며 겪었던 정신적인 갈등과 아픔들,
좀 더 단단해지기 위해 부딪혀야하는 일이라고,
당연한 과정이라고 위로하듯 달래보곤하지만 그렇게하기엔 그가 겪는 고통이 너무 컷다.
작은 일에서 행복을 찾는 평범한 삶이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지만 그것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껏 그런 행복을 찾아나서는 일에 몹시 서툴렀던 것 같다.
열심히 살다보면 행복은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지금이라도 내 스스로 행복해지는 습관을 키워나가야 할 것같다. 행복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학습이 될 것이다.
자식이 행복을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이 나보다 힘차고 당당해 보일 때 어설픈 부모의 역할에서 벗어나 조금은 떳떳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달려오는 바람에 맞서지 않고 잔가지 사이로 술술 통과시키는 겨울나무들이 한결 여유로워 보인다.
이제는 아이들이 가고 싶은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그 길을 얼마나 좋아하는 것인지 뒷전에서 묵묵히 바라보며 응원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내가 선택 할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