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광 Jan 16. 2022

나는 촌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나는 촌에 산다.

그것도 깊은 산속에서 15년째 살고 있다.  

처음 이곳으로 귀촌했을 때는 서먹했던 동네 사람들도 가끔 인사를 나누며 지내다 보니 모두가 친숙한 이웃이 되었다.

가끔 길에서 마주치다 보면 어떤 사람이 이사를 왔고 누구네 아들이 장가를 가고 누가 입원을 하는 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전해 듣는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남도의 구수한 사투리가 입술에 쩍쩍 달라붙듯 자연스럽다.

그럴 때마다 내가 태어난 동해를 까마득히 잊어버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정체불명의 사람이 되어가는 듯하다.   

   

때로는 마을회관에서 동네 어른들과 둘러앉아 훼손되어가는 산림에 대해 걱정도 하고 어떻게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 수 있을지 의논도 하곤 한다.

언젠가 회의가 끝날 무렵 뜬금없이 날아온 말이 나를 아연하게 했다.

 “ 다음번 이장은 자네가 하지? 넓은 도시에 살았던 경험을 살리면 좋을 것 같네만....”

스스로 굴러온 돌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마을 일을 맡기려는 사람들의 제안에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여러 차례 그런 얘기가 떠다니는 것을 보니 언제까지 거절하기도 미안하다.

요즘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해봐야겠다며 마음을 고쳐먹고 있다.

이렇게 사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수십 년 동안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해외를 들락거리던 내가 이제 완전한 촌사람이 되었구나.

진정 촌스럽게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어느 날 촌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뭐 그리 아쉬울 것도 없다.

촌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내 일상이 그만큼 단순해지고 편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동안 살아보니 오히려 내가 좀 더 일찍 농촌에 들어와 농부가 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땀 흘린 만큼 수확을 얻으며 사는 법에 익숙해지면 괴로운 시간보다 행복을 느끼며 사는 시간이 훨씬 많아질 것이라는 굳은 믿음 때문이다.     


사람이 촌스럽다는 것은 과거에는 외형적인 모습이나 행동에서 도회지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리숙하거나 초라하게 살았던 것을 일컬었던 말인 듯하다.

그러나 요즘은 마을에 귀촌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도시와는 다르게 살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함이다.

대도시는 더 이상 거주공간으로써 최적의 장소는 아닌 듯하다.

도시에 있는 많은 것들이 이곳 산촌에도 있으며 도시에 없는 많은 것들이 이곳에 넘치듯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누릴 수 있는 것들로 따지면 촌은 도시보다 훨씬 쾌적하게 살 수도 있다.

도시란 부와 명예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촌에 비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약속해주지 못한다.     

나는 젊은 시절을 도시에서 보냈지만 틈만 나면 도시를 탈출할 기회를 노렸고 오랫동안 촌에서 흙과 함께 하는 인생을 꿈꾸곤 했다.

지금도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살고 있지만 그들은 도시를 떠나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바짝 엎드려있다. 도시에는 요즘 살 아파트가 부족해서 다들 아우성인데 그런 곳은 꿈많은 젊은이들 위주로 살았으면 좋겠다.

비교적 시간이 여유롭거나 퇴직한 사람들은 촌에서 살게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텅 비어 가는 산촌에도 활기가 넘칠 텐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흙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산촌에서 살다 보니 절실히 깨닫게 된다.


요즘은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급속히 변하고 있는데 산촌은 그런 움직임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는 듯해서 나로선 다행스럽다.

아직 내겐 빠르게 달리는 디지털 세상보다 천천히 걸어가는 아날로그식 삶이 편하고 좋다.

촌스럽게 산다는 것은 쉽게 변하지 않고 자연처럼 사는 것이며 문명의 시대에서도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고 산다는 의미일 것이다.


집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읍이 있다.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도시의 형태를 지닌 곳이다.

종종 바람을 쐬듯 그곳에 나가 세상의 소식을 듣곤 한다.

읍내에서 그동안 형님 동생 하며 잔정을 쌓아온 친구들을 가끔 만나기도 하고 함께 둘레길을 걷기도한다.

특히 5 일 장이 열리는 날 촌의 인심처럼 두툼한 고기가 먹음직한 국밥에 막걸리를 곁들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읍내에서는 소음이 심한 큰길을 피해 높은 건물 뒤에 감추어진 좁은 골목길을 찾아다닌다.

그곳에는 아주 오래된 돌담을 사이에 두고 키 작은 집들이 어깨를 맞대고 고만고만한 삶을 누리고 있다.

골목 어디든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주었고 이웃 모두가 한가족처럼 지냈던 옛날의 흔적들이 어른거린다.

그런 골목길을 걷다 보면 비록 가난했지만 하루하루가 즐거웠던 옛 시절로 돌아간 듯 마음이 훈훈해진다.    

  

산촌과 읍내가 친구처럼 가까이 있고 어딜 가든 긴장하지 않고 헐렁한 삶이 있어 좋다.

바쁜 일이 없는 탓도 있지만 그렇게 사는 일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렇게 산다고 내 인생이 보잘것 없어지거나 비루해지지 않는다.

촌스럽게 살기로 작정한 사람에겐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나름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전 06화 이야기가 있는 풍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