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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광 Jan 12. 2022

겨울 속으로 흐르는 시간들


겨울은 종종 나의 건강에 대한 관심과 게으름 사이에 끊임없는 암투가 벌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날씨가 추워지니 집안에서 뒹굴며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가까운 읍내로 나가는 일조차 뜸해지곤 한다.

운동이 부족한 탓인지 요즘은 뱃살마저 흉하게 불거져 나와 쥐어짜면 지방 덩어리들이 주루룩 흘러나올 것만 같다. 이렇게 볼품 없이 변해가는 내 모습도 빈둥거리며 지내는 일상도 영 마뜩찮다.

늙어간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적지 않은 세월을 지나온 탓도 있겠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물러서는 일이 빈번해지는 데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이 세상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아진다고 느껴질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자꾸 무너져 내리곤 한다.

요즘 내 걱정이 그쯤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이 추운 날 산길을 걷는 것도 고민이 커져가는 내 일상을 바꾸고 싶은 마음에서다.

  

우리 집 앞 개울을 건너면 나타나는 나지막한 언덕에는 캠핑장이 하나 있다.

 오토캠핑장이라고 하지만 땅 바닥에는 습기를 막아주는 넓적한 나무판과 듬성듬성 맨땅이 드러나는 잔디와 큰 나무들이 서 있는 평범한 들판에 불과하다.

평소에는 텅 비어있어 쓸모가 없는 곳처럼 보여지지만 주말이 되면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어떻게들 알았는지 깊은 산 속인데도 캠핑족들은 용케도 잘 찾아온다. 한 겨울인데도 비어있던 자리마다 크고 작은 텐트들과 차량들이 비집고 들어와 마법처럼 마을 하나가 뚝딱 생기곤 한다.

그 안에는 낮선 사람들끼리 서로를 이웃이나 친구들처럼 여기며 하루를 산다.

텐트 앞에서 장작불을 피우거나 요리를 하는 사람들, 또 접이식 의자에 어울려 앉아 산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유롭다.

간혹 바람결에 텐트들이 펄럭거려 을씨년스러워 보이지만 그 누구도 개의치 않는다.

 “에고 하필 추운 날에 무슨 생고생일까 ?”

“그러게요, 사서 고생이라더니, 따순 방 놔두고 쯔쯧..... ” 길을 지나던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위에 허를 차지만 나는 다만 빙긋이 웃어넘길 뿐이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와 퍼지는 음식 냄새, 매캐한 연기에 이르기까지 캠핑장은 삶의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곤 한다.

한겨울인데도 그곳에는 참 희한한 세상이 시끌시끌한 시장처럼 열리고 닫히곤 한다.


캠핑을 하는 사람들이 추위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모습이 내게는 남다르게 느껴지곤 한다.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부단히 움직여 가는 것이 인생이라 하지만 짧은 시간을 머물기 위해 많은 시간과 수고를 들이며 찾아오는 것을 보면 그들의 유별난 자연 사랑을 엿볼 수 있다.

 해가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복잡한 도시를 떠나 헐렁하고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찾아온다.

맑고 깨끗한 자연을 만나고 가슴 속 쌓여있던 고생스러웠던 시간들을 쏟아내고 진정한 쉼을 누리려 한다.

 그러고 보면 자연이란 먹거리를 생산하는 본래의 기능 이외에도 사람들의 답답하고 막힌 것을 시원히 뚫어주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들은 마치 고향의 품에 안긴 듯 편하고 행복해 보인다. 어쩌면 멀어져 있는 고향을 느끼기 위해 자연을 찾는지도 모를 일이다.


산길을 걷다가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모여있는 곳에 다다르면 그들의 고행과 수고로움 앞에 숙연해지곤 한다. 힘겨운 겨울을 나야, 더 푸르고 풍성한 잎을 맺을 수 있는 자연의 법칙을 믿기에 나무들은 그 정도의 시련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봄 여름 가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겨울을 어떻게 극복 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자연이란 원래 그 자리에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시련을 딛고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자연은 수많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품고 있고 우리는 자연에서 힘찬 기운을 얻으며 살아간다.

봄이면 일제히 싹이 트고 천지를 온통 푸르게 덮어버리는 광경을 바라보면 왜 자연이 위대한 것인지 왜 대자연이라고 부르는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런 자연을 생각해보면 내가 얼마나 생각없이 살고 있는지 종종 깨닫게 된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연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의 부지런함과 활기찬 생활 모습은 그러한 진리를 잘 터득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추위를 핑계로 무능함에 사로잡힌 지금의 시간을 훌쩍 넘고 싶다.

겨울 동안 나무들의 일상을 기억하며 겨울을 진정으로 즐기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자연 속에 깃들어 산다는 일 자체가 내게 큰 즐거움이며 큰 자랑인 것을,

앞으로 보란 듯이 살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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