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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광 Feb 01. 2022

돌확이 품은 뜻은........

천년의 역사를 찾아서


돌확이 품은 뜻은..........




내가 만났던 그들의 첫 모습은 사소했다.

집 앞을 흐르는 냇가에서 혹은 야산의 나무들 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큼직한 바위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언뜻 보자면 수없이 산천을 쩡 쩡 울려대던 어느 이름 모를 석공의 망치와 정에서 생겨난 투박하고 어설픈 작품에 불과했다.

우리 집의 널찍한 마당 한구석에 있는 듯 없는 듯 철 따라 커가는 수생식물을 담고 있는 돌절구와 딱히 다를 바 없었다.

그는 하필 뭇사람들이 드나드는 사찰의 야외 계단 옆에 눌러앉아 누렇게 시든 수련이나 부레옥잠을 품에 안은 채 겨울의 쓸쓸함을 부채질할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몹시 단단한 돌이었지만 모서리마다 패이고 거칠어진 모양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다소 유화적인 생각으로 바뀌었다.

조금 더 나아가 수 없이 반복된 빗물이 만든 흉터일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왠지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가 품고 있는 것은 스쳐 지나간 많은 시간들이었다. 그런 흉터들을 점차 유심히 바라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살아온 신산했던 날들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로 남았던 것들이 꾸역꾸역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처음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그에게서 지난 일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변화이기도 했다.

그 후로 성불사를 드나들 때마다 그의 존재에 대한 관심이 일었고 그는 어느 시대를 살아온,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증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 본 성불사는 백운산 도솔봉 밑에 위치한 사찰로서 확실한 창건 연대는 찾아볼 수 없으나 신라 말기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부도탑도, 돌절구확 4개, 사찰명이 적힌 기왓장 토기가 역사를 고증하고 있다.’


돌확은 어느 해 성불사 옆 개울의 여느 바위들 틈에서 깊이 박힌 채 발견되어 땅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우연히 스님의 눈에 띄어 세상에 다시 드러난 그는 사찰의 존재 가치를 온몸으로 입증해주고 있었다.

성불사를 방문할 때마다 절의 고즈넉한 풍경이나 차분한 분위기를 즐기는 것보다는 그 돌확 앞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 어떤 것보다 오래된 귀한 신분임에도 누군가의 강압에 못 이겨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듯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요즘은 새로 지은 집이 머물기에 편리하고 좋아 보이지만 절에 가보면 색이 바래어지거나 오래된 흔적이 돋보이는 건물이 훨씬 친근하고 귀해 보였다. 아울러 세월을 안고 있는 묵직한 분위기도 한층 깊어 보였다.

오래된 것에 각별함을 느끼는 것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익숙해진 것에 편함을 느끼는 인간 본연의 감성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성불사는 아직 새 옷을 입은 것처럼 단정하고 깨끗했다. 거친 세월을 지나온 때가 잘 드러나지 않아 안타깝고 섭섭했다. 1000 년의 역사를 고증하기엔 보여줄 만한 것들이 빈약했고 오로지 작은 흔적들을 부여잡고 근근이 연명해오는 듯했다.

사람들은 돌확을 무심히 지나가곤 하지만 내 눈엔, 내 맘엔 그가 항상 먼저 들어왔다.

제자리를 찾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은 곳에 있는 어색함은 나의 방황하는 삶과도 많이 닮아 있는 듯했다.





“ 성불사 뒤 도솔봉 자락에는 40 여 개의 암자와 1,000여 명의 승려가 주석하였고 12개의 물레방아가 있었으며 당시 성불천에는 아침저녁으로 쌀을 씻은 물이 골짜기 사이로 하얗게 흘렀다.”


그들에겐 막연히 오래전이란 표현보다는 신라, 고려, 조선을 한꺼번에 뛰어넘은 장구한 세월이라는 구체적인 표현이 더 적절할 듯했다.

오로지 책이나 구전을 통해 불교문화가 꽃피었다는 역사가 전해지지만 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막연할 뿐이었다.

돌확에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그때의 풍경이 잔잔하게 그려지곤 했다.

천년 전에도 정신적인 안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탓일까?

깊은 계곡에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살았던 것인지..........


골짜기마다 들어찬 암자를 향해 사람들은 수시로 산을 오르내리곤 했다. 



산골짜기마다 곳곳에 피어오르는 연기가 산속에 자욱하게 퍼졌다.아침저녁이면 시냇가에서 쌀을 씻는 여인들이 눈에 띄었고 쌀뜨물은 하얗게 흘러갔다. 산골짜기마다 곳곳에 피어오르는 연기가 산속에 자욱하게 퍼졌다.아침저녁이면 시냇가에서 쌀을 씻는 여인들이 눈에 띄었고 쌀뜨물은 하얗게 흘러갔다.

물레방아가 덜컹거리며 돌아갈 때마다 두건을 두른 여인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고 돌확에는 쌀이 빻아지고 있었다. 일하는 도중에도 여인들은 한숨을 짓기도 하고 때로는 깔깔거리며 웃기도 했다.

냇가 바위에서 빨래하거나 쌀을 씻으며 근거 없는 소문을 이야기하며 방향을 잃은 이야기들은 날개를 달고 정처 없이 날아다니곤 했다.

사람들은 수시로 몰려오고 떠나가며 근거도 없이 떠도는 이야기를 즐겼다. 사람들은 수시로 몰려오고 떠나가며 근거도 없이 떠도는 이야기를 즐겼다.

음매장골 암자의 젊은 승려가 사라졌고 살모사골에서는 지난밤에 호랑이가 내려와 할머니의 팔을 물었다는 등의 소문들이 무성했다.





상상에 잠기다 보니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뒷산에 있었던 오래전 그들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더 깊어졌다.

그래서 겨울이면 산으로 향하는 마을의 어른들과 함께 도솔봉 자락을 누비고 다녔다.


애써 다리품을 팔며 힘들여 오른 높은 골짜기마다 기원을 알 수 없는 폐사지와 숯가마 터들이 차고 넘쳤다.

아무에게도 노출되지 않고 해마다 떨어진 낙엽들만 켜켜이 쌓인 원시림에 가까운 산이었다.

잊힌 기억들을 애써 입증해 보려는 듯 암자의 돌담은 무너진 채 세월을 나고 있었고 우물인 듯 여전히 맑은 샘이 흐르는 흔적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건물이 들어섰을 법한 빈 터에는 뿌리를 내민 고목들이 허망함을 달래주고 있었다.

죽은 채 서 있는 나무들과 허공을 향해 뻗은 마디마다 검버섯이 피어있고 껍질이 두꺼운 고목들이 서로를 에워싸듯 서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깊은 산에는 아직도 옛날이 흐트러짐 없이 남아있었다.

언젼가 칭얼대는 손주에게 호랑이가 나타나는 시절의 옛날 얘기처럼 들려주고 싶은 풍경이었다.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것은 돌확들만으로 외롭게 연명하는 성불사의 1000년의 역사가 허구가 아니었음을 입증하고 있었다.

까마득히 잊혔지만 엄연한 삶의 흔적들이 반갑고 놀라웠다.

우리는 그동안 저들이 줄기차게 내려준 끈을 잡고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과 누구에겐가 다시  전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에게 불쑥 찾아들었다.


비록 떠나간 사람들은 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손때가 묻은 것들은 여전히 남아있어 우리에게 힘을 준다.   

언젠가 나도 세상에서 까마득히 잊혀져갈 것이며 이땅에 살았던 흔적조차 지워질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살았던 세상에  남겨둘만한  것들애 대해 종종 생각해보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내 앞에 다가오는 시간들을 어떻게 맞이하고 보내야하는지 나는 아직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살아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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