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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으면 그걸로 된다

2024 춘천마라톤 10k 준비 3

by 잡념주자

3월 3일,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이었다. 달리기 위해 목감천 산책로 위에 섰다. 생각해 보니 밖에서 달리는 건 오랜만이었다. 겨울에는 계단 오르기와 러닝머신 달리기를 주로 반복하며 이따금 땅이 미끄러워 보이지 않는 날에만 밖에서 달리기를 했다. 달리기는 좀 줄었지만 보강운동-계단 오르기를 더 많이 해서 절대적인 운동량은 줄지 않았고 얼마 전 러닝머신에서는 꽤나 빠른 속도까지 높여가며 인터벌 비슷한 훈련도 해봤다.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4월에 열리는 서울봄꽃마라톤에 10킬로미터 종목 참가신청도 했다. 그렇게 겨울 동안 제법 충실하게 운동을 해왔다는 뿌듯함을 갖고 목감천 주로 위에 섰다.

그날은 좀 길게 달려볼 생각으로 주로 달리던 스피돔 방향의 반대편, 개봉 쪽으로 몸을 틀었다. 무조건 10킬로미터를 채운다는 생각으로 발을 옮겼다. 달리다 보면 첫걸음이 유난히 무거운 날이 있는데 그날이 그랬다. 꽤 오래 뛰어도 다리는 계속 무겁고 호흡은 넘어갈 듯 가빠졌다. 미세먼지 탓이라 생각하며 꾸욱 참고 보폭을 좁히며 잘게 잘게 뛰었다. 그렇게 개봉을 지나 안양천 부근에서 반환점을 찍고 다시 집 근처로 돌아오니 5킬로미터를 뛰고 온 아내가 보였다. 문득 멈춰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억지로 발을 굴렸다.

횟수를 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겨우내 달마다 50킬로미터 정도씩은 뛰었고 뛸 수 없는 날에는 계단 오르기도 부지런히 했는데 몸이 왜 이럴까, 실망스럽다. 그렇게 7킬로미터를 지났을 무렵부터 무릎이 아파왔다. 무릎보호대를 하고 있는데도 무릎이 아프다니. 조금 어정쩡한 자세로 아프지 않은 다리 쪽에 무게를 주어가며 계속 달렸다. 그리고 9킬로미터를 지나며 이제 다 왔다는 안도감을 느낄 때 발 쪽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날이 선 욱신거림이 발바닥, 뒤꿈치에 느껴졌다.

그렇게 뛰는 것도 걷는 것도 아닌 상태로 어정쩡하게, 어쨌거나 10킬로미터는 채웠다. 괜찮아지겠지 생각한 발의 통증은 주말이 지나고도 없어지지 않아 병원으로 찾아갔다. 족저근막염과 아킬레스건염이 함께 발에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어쨌거나 뛰어봤으니 됐다. 대회신청을 포기했다. 너무 격렬하게 뛰었나. 그건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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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지 못하는 초조함에 계단만 오르내리며 느리게 뛰다 보면 언젠가 빨리 뛸 수 있다는 말을 곱씹었다. 내 달리기에 무엇이 잘못된 걸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찾아냈던 말. 이렇게 느리게라도 계속 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유튜브 속 저 Sub 3 주자들처럼 멋있게 빠르게 뛸 수 있겠지. 그럼에도 나의 달리기가 너무나 더디게 자라나는 느낌은 계속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쉬지 않고 뛰던 여름날이 특히 그랬다. 심박수는 왜 이렇게 치솟고 거리며 속도는 왜 이렇게 늘어나지 않는지. 가을을 준비하며 초조하고 작아지는 느낌을 주로에서 자주 만났다. 느리더라도 즐겁게 뛰자, 매번 다짐을 하지만 초조함은 어느새 보폭을 늘이고 급하게 발을 구르도록 만들었다.

여름이 지나고 부산을 다녀오고 나니 춘천마라톤이 바로 다음 주였던 토요일. 마지막 장거리 달리기 연습이라는 생각으로 3월처럼 목감천 주로에 섰다. 전날 내린 비로 토사가 흘러내려 주로가 뻘밭이 되었지만 뭐 어떠랴, 기록을 낼 생각으로 달릴 것도 아니고 그냥, 몸이 준비되어 있는지를 보려고 연습하는 것일 뿐이다, 연습.

심박수가 오르지 않게 하려고 신경 쓰며 천천히 발을 구른다. 뻘을 피하느라 순간 짧고 빠르게 뛰어간다. 안돼, 천천히. 다짐을 하는데 다리가 가볍게 풀린 것이 느껴진다. 해는 저 위에 있는데 덥지는 않다. 바람도 적당히 불어온다. 시원하게 달려봐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미끄러질 것 같은 뻘 밭을 피해 가며 조심스럽게 발을 더 빨리 움직여본다. 아픈 곳은 아직 없다. 목감천과 안양천이 만나는 곳에서 반환점을 돌아 다시 스피돔 방향으로 달려간다. 아, 더 위로 뛰어가고 싶은데 도저히 달릴 수가 없는 진흙탕이다. 발길을 돌려 다시 아래로 향한다. 멈춰야 하나. 평일에 뛰는 아파트 단지를 계속 돌자, 10킬로미터가 채워질 때까지. 은근슬쩍 손목을 본다. 7킬로미터가 지났는데 시간은 40분을 조금 넘겼을 뿐이다. PB가 뜨려나? 오르막을 오른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10킬로미터를 달렸음을 알리는 진동이 손목에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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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속에는 40분대 주자도 즐비하건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린, 그래도 6분 줄어든 저 기록이 얼마나 뿌듯하고 예뻐 보이는지. 여름 내 70분 내에라도 들어오고 싶다, 완주도 안되면 어쩌나 걱정하던 날들이 무색할 만큼 '나 치고는' 훌륭한 기록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초조해하면서도 멈추지는 않았던 여름날이 저 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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