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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재훈 Sep 14. 2021

안전 불감증

카투사 이야기 - 10

 마텔스키는 잔뜩 겁을 먹었다. 오늘자 뉴스로 북한의 미사일 소식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너무 겁먹지 마.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격려랍시고 말을 걸어왔다. “나는 괜찮아. 한국인에겐 매일 같이 일어나는 일이라서.” 내가 김정은의 협박이 이제는 아이 장난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니 미군들은 뭔가 어색해했다. 우리는 포천에서 대대훈련 중이었다. 귀가 찢어질 정도로 큰 포탄 소리에 잠시도 안심할 수 없었다. 


 므뇨즈 신부는 갓 공수해온 피자들을 미군들에게 나누어주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군종병이 꿀 보직이라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적당한 간식거리를 내어주며 힘든 미군에게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면 되기 때문이다. 가끔씩 출출할 때마다 트럭 뒤에 쌓인 전투식량을 까먹었다. 오뚜기 3분 카레처럼 네모난 박스 안에 여러 음식들이 담겨 있다. 한국 전투식량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종류도 20가지 정도여서 먹고 싶을 걸 고르면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비프와 마카로니였다. 전투식량답게 아주 짜고 달아서 먹고 나면 그 포만감이 대단했다. 그 만족감으로 그나마 훈련장에서 죽 치고 기다리는 시간을 버텨냈다. 그 당시 김정은이 거의 선전포고에 가까운 지령을 내어서 훈련장 분위기가 그리 썩 좋지 않았다. 미군들은 자기들끼리 쑥덕쑥덕 거렸다. 혹시 전쟁이 정말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미국은 아직도 한반도를 위험천만한 불운의 땅으로 간주한다. 백악관도 국방장관도 그렇다. 전 세계에 정전상태를 이어오고 있는 땅은 우리 밖에 없다. 그 안에 사는 우리만 불감증이 있다. 때론 이런 서로 다른 반응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속으론 겁을 먹고 있는 마텔스키의 모습에 나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나라고 평소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전쟁이라는 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다이너마이트 같은 거니까. 내가 이해하고 있는 김정은은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허한 존재였다. 자기 숙부와 이복형제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인사인데 뭐 할 말이 더 있을까. 나는 솔직히 전쟁이 멀리 있지 않다고 보았다. 만약 내일 정말 전쟁이 터지는 상상을 하니 조금은 겁이 났다. 그러면 그동안 익숙했던 모든 시스템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거다. 모든 것이 뒤바뀌는 거다. 전쟁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겪어야하는 혼란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잠깐 상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 할아버지들이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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