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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재훈 Aug 03. 2021

노 섹스 인 배럭스

카투사 이야기 - 8

 난 그렇게 일병 짬이 조금 찼을 때에 룸메이트 준이와 헤어졌다. 우리는 각자의 방을 쓰기로 했는데 무슨 이유에서 그랬는지 모른다. 나는 아주 잠시 동안 독방을 썼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밤늦게까지 책을 읽기도 했다. 느헤미야 서 1장이 머릿속에 떠돌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밖에서 그 똑같은 문장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에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시공간을 통과한 것 같은 전능함과 고대의 예언자라도 된 것 같은 영적 자만심이 나를 강하게 눌렀다. 예언자가 되어서 뭣하려고! 그게 무슨 돈이라도 되는 거냐! 뭣이 중헌디! 나는 속으로 되새기며 내 푼수를 알자고 무언의 외침을 내뱉었다. 신을 찾기 위한 노력이 가상했나보다. 여기저기서 기적이 일어나고 보이는 족족마다 나는 그것이 신과 인간을 잇는 동아줄이라고 마음속으로 천명하곤 했다. 

 나는 성경구절을 노란 포스팃에 적어 벽에 붙였다. 위에는 우리말로 아래는 영어로 채웠다. 알파벳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줄을 서서 어떤 모형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모형들을 한꺼번에 삼키고 언어의 기원을 파헤치려는 것뿐만 아니라 언어가 담고 있는 정신까지도 수렵하려 했다. 가히 건방진 행위였다! 그러나 외지 말을 배우는 데에는 이 정도 배짱이 있어야 한다. 그 말이 담고 있는 정신을 알지 못하면 그 말을 정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 나 자신과 무기물처럼 보이는 무형의 언어를 탐구하는 중에 슈퍼스타 한 명이 딱 문을 재꼈다. 축구 스타 메시였다! 아니, 이름만 똑같은 메시.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검은 메시. 리오넬 메시(Messi)가 아니라 메씨(Massey)였다. 처음 보는 이름에 나는 맛세이라고 탁탁 찍어댔다. 이제 고3정도 나이의 순둥이 흑인 친구가 여기 새로운 룸메이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매일 밤 메시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메시는 나보다 심한 올빼미였다. 새벽 두 시까지 영화를 보고 틈틈이 콜 오브 듀티를 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피티를 나가야 하는데 그런 건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흑인이 태생적으로 게으르다는 말이 괜히 나온 거 같지는 않았다. 인종차별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내가 메시만 보고 판단한 건지 모르지만 여기 흑인들은 보통 다 게으르다. 물론 여기 온 미군들은 베이스 자체가 썩 그렇게 좋지 않다. 이미 여러 번 범죄 전과가 있는 건 물론 마리화나 같은 건 기본으로 깔고 들어간다. 주말이 되면 이들은 배럭스 앞 잔디에 캠핑용 의자들을 놓고 광란의 파티를 벌인다. 온 세상이 떠나갈 듯이 웅장한 스피커로 랩을 튼다. 그 요동이 얼마나 심한 지 벽이 울릴 정도였다. 맥주와 보드카를 모아놓고 새벽녘까지 주구장창 마셔댄다. 술에 찌든 인간들은 짐승처럼 괴성을 지른다. 아마 어디선가 마리화나도 입수해온 것 같다. 이들은 끝을 모르고 질주한다. 목줄 풀린 망아지처럼 목적 없이 방황한다. 마치 「펄프 픽션」을 보는 것 같다. 


 “그건 마치 천국에서 섹스를 하는 기분이야.” 메시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이들은 아주 무질서했다. 틈만 나면 엄살을 부리면서 셰밍쳤다.(미군들은 잔머리 굴릴 때 ‘sham’이라는 표현을 쓴다) 바르고 건전한 흑인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쪽도 있다. 그리고 내 생각엔 흑인의 대부분은 후자 쪽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들을 비난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들 태생이 그렇다는 거다. 태어난 태생이 나쁜 건 아니지 않나. 그들의 피엔 놀이와 쉼이 섞여 있다. 나도 그들의 그런 이상한(?) 태생을 물려받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씩 한다. 놀이 문화와 저항의식. 이건 오랜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게 분명했다. 밥 말리 같은 레게가 내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였다. 




“No Sex in Barracks”




“숙소 안에서는 성관계를 갖지 마!” 우리 대대 퍼스트 서전트(일등상사; First Sergeant)는 아주 잘 생긴 얼굴로 금요일 저녁 클로징 멘트를 이렇게 외친다. 대대장 맥과이어 대령은 뒷짐 진 채 잠자코 일등상사의 연설을 구경한다. 여군들은 1층에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가끔씩 남자들과 함께 놀다가 장난을 치기도 했다. 여군들은 위층에서 같이 놀기 전에 1층 로비에 서명을 하고 올라간다. 그리고 방침으로 반드시 문을 열어 놓아야만 한다. 지나가다보면 그 꼴이 얼마나 웃기던지. 찌질한 건지, 똑똑한 건지 … 그렇게 하고 싶으면 밖에 나가서 러브호텔을 빌리든가. 난 속으로 쌍욕을 하면서 그들을 비웃었다. 


 그런데 상상만 했던 일이 내 방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동기들과 저녁을 먹으러 외출을 나간 사이에 메시가 사고를 쳤다. 오랜만에 외출해서 저녁을 먹고 오는 밤이었다. 힐끔 열려있는 방 문 사이를 휘 집고 들어갔을 땐 두 몸은 이미 한데 얽혀있었고 곧 절정에 도달하고 있었다. 메시는 위에서 흑인 여군을 강하게 누르고 있었다. 한창 재미를 보고 있는 중인데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었다. “오! 쓈!” 내 검은 그림자를 확인하고 메시는 격정적인 몸부림을 멈췄다. 그날 이후로 “오! 쓈!”은 카투사 동기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되었다. 그런데 그 유행어의 대상이 왜 메시가 아니고 나야만 했는지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풀어헤친 바지 자크를 주섬주섬 오므리다가 메시는 나에게 잠시만 나가 있어달라고 말했다. 무슨 해답이 있는 게 아니어서 대수롭지 않게 알겠다고 했다.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비밀로 해줄 수 있어?” 메시는 간곡하게 내게 부탁했다. 그것도 뭐 큰일이라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메시는 사고뭉치였다. 


 해야 할 일은 이리저리 내빼고 지 몸에 좋은 것만 쫓아다니는 쾌락주의자. 그에 비하면 나는 금욕주의를 자랑삼는 스토아학파 같은 존재였다. 그들의 이런 특유한 개방주의는 1층에 번 듯이 나돌아 다니는 레즈비언도 한몫했다. 이두와 삼두가 불끈 튀어나온 여군 라울은 이미 커밍아웃을 했다. 갑자기 그 룸메이트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남자가 되고 싶었던 건지 라울은 매일 일과가 끝나고 짐으로 향했다. 매일 저녁 세탁하기 위해 1층 런드리 룸에 들어갈 때마다 닫혀있는 여군들의 방이 다른 세계처럼 보였다. 한편으론 무섭기도 했지만 그 안을 힐끔 들여다보고 싶은 관음 욕구가 샘솟았다. 히치콕의 「이창」처럼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 싶었다. 그렇게 아쉬움에 세탁기에 옷가지를 넣고 벤딩 머신으로 향했다. 


 어느 순간서부터 나는 닥터 페퍼 팬이 되었다. 콜라와 사이다랑은 비교할 수 없는 감칠맛이 입안에서 톡톡 쏘아댔다. 또 한 가지 매료된 건 초록 액체, 몬스터였다. 길쭉하니 괴기스러운 초록 문양 ‘M’이 들어가 있는 마법의 에너지 드링크였다. 그걸 마셔서 에너지가 솟기보다는 오히려 나는 그 맛이 맘에 들었다. 레드불은 회색과 파란 바탕에 황소 마크가 들어가 있었는데 그걸 옆에 끼고 다니면 왠지 있어 보였다. 이상하게 큼지막한 앤서니 피자와 마시면 환상의 조합이었다. 어쨌든 나는 늦은 밤 심심할 때면 벤딩머신에서 닥터 페퍼를 뽑아 먹었다. 75센트가 필요한 때마다 모아놨던 25센트 동전 몇 개를 서랍에서 꺼내들었다. 조지 워싱턴처럼 보이는 인위적인 얼굴이 항상 다른 동전보다 더 비대해 보였다.   


 배럭스 안의 이러한 스캔들은 멈추라고 해도 멈출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이들은 성(性)을 착취하는 게 아니라 쾌락의 도구로 삼았다. 기지 바깥으론 베트남 여자들이 줄지어 이들을 섬겼다. 미군들이 베트남 여성들과 결혼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푸씨, 푸씨”(pussy) 미군들은 그 여자들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먼 외지에서 그들은 외로웠고 누군가가 자신의 아픔을 만져주길 원했다. 푸씨는 돈을 원했고 외지 남자들은 정서(情緖)를 원했다. 그들은 그렇게 한데 섞여 살기 원했다. 


 그렇다고 내가 메시를 싫어했던 건 아니다. 그 태생적인 게으름에 질릴 때도 있었지만 순둥이 같은 착함이 나와 꽤 코드가 잘 맞았다. 난 그가 일부러 악동이 되길 원치 않았다. 메시는 자꾸 스스로 악동이 되려고 애썼다. 누군가를 밟아 이기기 위해서. 그 모습이 참 처량하고 안쓰러웠다. 일찍부터 잘못된 길을 선택했다. 순둥이 메시는 이 험난한 외지생활을 선택하면 안됐었다. 그는 상명하복의 구조를 이겨낼 재간이 없어 보였다. 상관 마텔스키의 온갖 욕을 쳐 먹을 만한 맷집도 없어 보였다. 자유로운 영혼은 그냥 세상을 누릴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게 지혜로운 일 아닐까. 요새 그는 군복을 벗고 여러 가지 음악 작업을 한다고 했다. 인스타그램에 가끔씩 업로드되는 EDM 비슷한 곡조들이 그의 옛 얼굴을 회상케 했다. 나는 추억에 잠기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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