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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재훈 Jul 30. 2021

한밤 중의 청춘몽상

카투사 이야기 - 7

 시퍼런 멍이 보인다. 난 트럭에서 떨어졌다. 방탄복을 입고 뒤꽁무니에서 잠시 졸았던 탓이다. 폭군 마텔스키가 갑자기 속도를 낸 것이었다. 위에 입고 있던 방탄조끼만 해도 10킬로가 넘는다. 오르막길에서 속도를 내면 어떡하나. 순간 나는 정신을 잃었다. 왜 살다보면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은가. 너무 이상한 일이 벌어져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할 수 없는 날.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것 마냥 이제는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는 순간들. 그래서 모든 걸 체념하고 중력을 따라 지상으로 추락해야만 하는 순간들. 나도 이런 걸 경험하는구나하고 마침내 딱딱한 아스팔트에 닿았을 때에 현실은 피붙이 형제처럼 나와 다시 동행하고 있었다. 모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트럭은 추락한 나를 버리고 그냥 떠나는 듯 싶더니 갑자기 끽하고 멈추었다. 마텔스키는 그제서야 사이드 미러로 나를 발견하고 이상한 장례를 치르나 싶어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팔이 욱신욱신 쑤셨다. 초지일관 햇볕에 타고 있는 검은 아스팔트는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자리는 영원히 여기라고 담담히 고백하고 있었다. 지상은 찬란했다. 그리고 견고했다. 지상(地上)은 절대 부서지지 않았다. 공중에 있는 것들만 뚝하니 부러지는 것이었다. 오른팔을 만져봤다. 팔꿈치도 만져보았다. 부러져서 맛이 갔는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마텔스키는 온갖 찡그리고 있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옆에서 부축해주었다. 자신의 죄과가 떠올랐는지 조금 겁먹은 표정이었다. 나는 그 표정이 더 구겨지길 원하는 할 수 있는 대로 이목구비를 더 뭉갰다. 그는 고속도로로 나가는 오르막길에서 아주 경솔하게 급속도로 엑셀을 밟은 것이었다. 트럭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집으려다 엉덩이를 살짝 들었는데 급발진으로 중심을 잃고 바깥으로 튕겨 나간 거다. 여름에 나온 대대훈련이었고 사건사고가 벌어지면 미군 입장에서도 별로 좋을 게 없었다. 마텔스키는 훈련장으로 복귀해 나보로 트럭 뒤에 누워 있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간나 새끼! 어디 지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보시지! 나는 마음속으로 그를 협박했다. 마텔스키는 메딕을 부르러 갔는지 종적을 감췄다. 간단한 치료를 받고 트럭 뒤에 누웠다. 그새 소문이 퍼졌는지 훈련장에서 나는 슈퍼스타가 되었다. 쟤가 트럭에서 떨어진 슈퍼스타래! 몇몇 미군들이 뒤에 잠자코 누워있는 나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카투사 동기들과 몇몇 선임들도 찾아왔다. 소문이 나면 나야 나쁜 건 없었다. 오히려 마텔스키, 그 개새끼가 문제였으니까. 내가 상황이 이랬다 적나라하게 신고라도 하면 그는 적어도 일등 상사한테 적지 않은 쿠사리를 먹을 게 분명했다. 아니면 내가 직접 가브리엘 신부에게 가서 일러바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트럭 뒤로 살짝 가려져 있는 햇살이 청초하게 느껴졌다. 모든 게 귀찮았다. 그저 이 뜨거운 여름 벌판을 떠나고 싶은 맘뿐이었다. 아니면 너무 아프니까 동두천 숙소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핑계를 대볼까 수작을 꾸며댔다. 


 내 입은 침묵했다. 그간의 정 때문이었는지 선뜻 있었던 일을 말하기가 껄끄러웠다. 무엇보다 사건이 커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미군 실수로 카투사 한 놈이 죽을 뻔했다라고 소문이 퍼지면 나라고 나쁠 건 없지만 여러모로 귀찮은 짓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았다. 꿩 대신 닭이라고, 이 핑계로 그냥 기지로 복귀할 수 있게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통증은 심각한 것 같지 않았다. 채플린은 꿀 보직이다 라는 선입견이 선후임 사이에서 빗발칠 때 나는 할 수 있는 한 고된 얼굴을 선보이려 애썼다. 다른 카투사들은 훈련만 나오면 1주, 2주는 씻지도 못하고 바깥에서 자야만 했다. 군종병이었던 나는 이상하게 그런 고된 임무에서 자주 해방되곤 했다. 가브리엘 신부를 따라다니는 게 내 임무였으므로 그가 오늘 훈련장에 나가지 않으면 나 또한 주구장창 숙소에서 놀기만 하면 되었다. 그래서 가브리엘이 되도 않는 사명감을 불태우지 않고 잠잠한 온건주의자로 살아가길 간절히 바랬다. 


 저녁이 되고 오른 팔꿈치가 부쩍 붓는 느낌이 들었다. 가브리엘 앞에서 온갖 아픈 내색을 선보였으나 끄덕도 하지 않았다. 그냥 당당히 이런 일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숙소로 복귀해야겠다고 요청도 해볼 만 했다. 그런데 나보다 더 고생하는 놈들을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천막 안에선 작은 예배가 드려졌다. 흰 도포를 입은 가브리엘이 미군들을 앞에 모아놓고 설교를 시작했다. 뒤에서 잠잠히 지켜보던 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소총을 찾으러 LMTV 앞으로 갔다.LMTV는 베이지 자켓을 입은 것처럼 젠틀하고 고요했다. 조수석 문을 열었더니 여군 낸시가 고개를 뻐끔 내밀었다. 




“쉼, 뭐 찾으러 왔어?” 




무슨 작당을 피고 있는지 낸시 낯빛엔 수상한 죄의식 같은 게 묻어났다. 




“내 소총이 거기 있어. 갖고 가야 돼” 나는 되도록 그 작당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물었다. 옆에 누군가의 낌새가 느껴졌다. 두 눈으로 보지 않아도 이미 본 것 같은 은밀한 섹슈얼리티가 열린 공간을 찾아 천천히 유랑하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에 엄청나게 많이 쌓여 있어! 그러니까 내일 아침에 찾아보는 게 어때?” 금발에 동동한 아기동자 낸시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다. 달팽이처럼 본능적으로 안으로 숨고 싶어 했다. 이미 어떤 욕구에 한창 빠져있는 중이었다. ‘그년 참 싸가지 밥 말아 먹었네’ 나는 마음으로 속삭였다. 낸시는 바로 옆에 인사과 여군이었는데 아담하고 글래머러스한 몸매로 풋 남자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았다. 막 한국으로 전입 왔을 때엔 내가 좋다고 주말에 시간 좀 내줄 수 있냐고 꼬리를 쳤다. 꽃뱀 같은 건 모르던 시절에 그 청량한 요구는 들끓는 청년의 정기에 기름을 붓는 행위와 같았다. 나는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남자들의 음담패설엔 살면서 백마 한 번 타봐야 한다는 게 어록처럼 남아있었다. 꿈을 이룰 수 있겠다는 이상한 기대가 내 마음에 사무쳤다.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하는 마음으로 나는 낸시를 만날 때마다 대면대면했다. 


 그래도 소총은 갖고 있는 게 나을거 같아서 몇 시간 후에 다시 베이지 트럭으로 갔다. 조수석 문을 다시 열려고 하니 낸시, 이 년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지 않는가. 




“쉼, 건스 아 파일드 업!!!” 




 쌓여있다고! 쌓여있어서 찾을 수 없다고! 나는 오케이하고 아주 무력하게 다시 떠났다. 이상한 신음소리가 일정한 리듬을 따라 흔들흔들 미세하게 퍼졌다. 베이지 트럭은 장단을 맞춰 위아래로 펌프질을 했다. 그 미세한 짝짓기 소리가 심장에 와 꽂혔다. 점점 수축해가는 내 몸덩이와 추문을 입고 뜀박질하는 베이지 트럭이 서로 대비되었다. 베이지 녀석은 나와 달리 점점 어디론가 확장해가고 있었다. 섹슈얼리티의 세계. 나는 밤하늘에 별을 보며 아브라함을 떠올렸다. 만인의 조상, 아브라함. 거룩함은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었지만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구타를 당한 채 쓰러져 있었다. 낸시의 어깨는 지금도 들썩이고 있겠지. 엉덩이를 흔들고 있겠지. 나는 뒤가 아니라 앞이 아파왔다. 남자는 앞이 아파야 마땅한 거라고 혼자서 핑계를 대었다. 혼자는 해갈할 수 없는 정욕들이 물밀 듯이 밀려와 마음 한쪽을 시리게 했다. 발걸음이 띠어지지 않았다. 내가 떠나기보다는 낸시의 어깨가 고요해지기를 기다렸다. 그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사디즘의 악마가 내가 있는 공간을 덮쳤다. 그 야릇한 소리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나는 숨죽이며 그 파동과 골을 애무했다. 낸시의 어깨가 보였다. 난 그 소리처럼 움직이는 태를 보며 숨죽였다. 낸시의 좁은 어깨를 만졌다. 비둘기 같은 가슴을 만졌다. 가슴과 가슴 사이에 난 골짜기를 묵상했다. 그리고 천천히 낸시 안으로 들어갔다. 성기를 집어넣었다. 들어가기 직전의 그 야릇함이 내 마음을 다시 푹 찔렀다. 나는 야생동물처럼 사정을 했다. 끈적끈적한 정액이 속옷 여기저기에 묻었다. 낸시는 오르가즘에 빠져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낸시 안에 계속 사정했다. 사정을 할 때 오히려 고통스러웠다. 내가 부러웠던 건 들어가기 직전의 그 여성스러움과 야릇함이었다. 낸시의 여성성. 낸시의 아름다움. 그 모든 골들이 오히려 더 멋져 보였다. 성욕이란 바로 그 시작하기 직전에 날 것 그대로의 느낌, 그 자체였다. 새벽 매미가 울었다. 세 번 울었다. 나는 아직도 낸시 안에 있었다. 낸시를 찢었다. 성기가 도륙날 때까지. 나는 계속 사정했다. 벌써 이번이 다섯 번째다. 그녀는 내 페니스를 움켜쥐었다. 고환을 부드럽게 만졌다. 여성성이라는 게 확연하게 정체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가까이 있으니 더 확실해졌다. 그녀는 그것을 잡고 핥고 빨았다. 정액과 수액, 모든 체액들이 내 몸에서 빠져나갔다. 그건 마치 고래 안에 소화액처럼 끈적였다. 그것들이 동굴 군데군데 난사되었을 때 저 너머 산령(山靈)같은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허무한 울음이다. 나도 거기서 울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삼켜야만 하는 한 여자의 고통스런 신음일지도 몰랐다. 나는 그저 그 난사를 즐길 뿐이었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 넣었고 안으로 들어갔다. 낸시는 아픔에 울부짖었다. 힘이 넘쳤다. 몸 안에 남아 있는 게 전부 사라질 때까지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다. 비비고 마찰하고 넣었다. 낸시는 이제 자발적으로 일어서서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젖꼭지가 피부에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점차 얼굴을 내리더니 아직 한참 살아있는 페니스를 다시 한 번 잡았다. 그녀는 정감있게 귀두에 혀를 문질렀다. 나는 다시 한 번 힘차게 사정했다. 




* 이 작품은 2021 박경리 토지문화관 입주작가로 선정되어 활동하는동안 집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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