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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재훈 Jul 08. 2021

콜링, 섹슈얼리티

카투사 이야기 - 5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해. 준이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눈치 없이 겁을 먹은 척 했다. 사실 준이가 무섭진 않았다. 준이가 새벽에 자는 나를 덥치는 건 아닐까 상상해봤지만 아무리 봐도 현실성 없는 얘기였다. 준이는 운동을 싫어했다. 준이는 일과가 끝나면 롤을 하러 기지 밖으로 외출을 끊었다. 방 안에 있는 날이면 동기 영이를 끌고 와서 서전 킴을 욕했다. 그 서전 킴 개새끼, 한국계면 그래도 우리에게 잘해야 하는 거 아냐? 부산 사투리가 심하게 요동쳤다. 그런 험한 말에도 작은 체구와 동그란 얼굴이 오히려 귀여워 보이는 건 준이의 본성이 남들처럼 그리 억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준이는 내 첫 번째 룸메이트였고 갓 이등병 시절에 우리는 서로의 어려움을 털어놓곤 했다. 또 다른 동기였던 영이는 어딘가 조금 모자라 보이는 선임과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카투사가 축복이라는 건 두 명이서 한 방을 쓴다는 거였다. 그마저도 짬을 먹고 상병쯤 되면 혼자서 방을 쓰는 특권을 누린다.


 준이와 내가 자대배치를 받던 첫 날, 바로 위 선임들이 12시까지 방에 쳐들어와 조심해야할 사항들을 이것저것 말했다. 고개가 저절로 떨어질 정도로 심신이 고단했던 하루였다. 선임들은 사무실에 나란히 앉아있던 우리를 한 번씩 흘겨보았다. 오, 쟤가 채플린이야? 마텔스키보다 더 무섭게 생겼는데? 반장 중에 한 명이 나를 보고 말했다. 마텔스키는 나와 함께 일할 미군 군종병이었는데 험상궂게 생긴 게 내가 뿜어내는 아우라와는 조금 결이 달라보였다. 이제 전역을 앞둔 선임이 나를 이끌고 군종병 사무실을 열었다. 매튜 마텔스키. 갈매기 날개처럼 양옆으로 솟아오른 눈썹과 단조로운 이목구비 구도가 불긋한 핌플과 합쳐지면서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이목구비가 뚜렷하다고 해서 꼭 잘생긴 건 아닌 것 같았다. 마텔스키는 그리다 만 미완성의 작품처럼 보였다. 마텔스키는 어리둥절한 나에게 먼저 악수를 건넸다. 그의 질문에 오랫동안 머릿속으로 영작했던 문장을 입으로 쏟아냈다. 아임 굳엣 리딩앤 리스닝 벗 낫 굿 엣 스피킹. 마텔스키는 오케이라며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리고 새벽 PT가 끝날 때마다 마텔스키는 나에게 마이보이 마이보이라고 외쳤다. 조금 함부로 대한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이곳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을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었다.


 나와 준이는 반년 넘게 함께 룸을 썼다. 종종 서로 안 맞는 구석이 있었지만 우린 권태기를 지난 숙련된 부부처럼 알아서 피할 건 피하고 맞출 건 맞추었다. 어느 날 급해서 변기를 올리지 않고 싸는 내 모습을 보고 준이는 기겁을 했다. 끝없는 잔소리가 이어졌다. 이게 미래에 결혼 실사판이구나 싶었다. 그래도 우리는 여러 가지로 균형 잡힌 생활을 이어왔는데 그 중에서도 서로 다른 취침 시간이 그랬다. 준이는 열한시나 열두시가 되면 잠자리에 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 시간에 스탠드 불을 켜고 성경을 읽거나 영어 공부를 했다. - 신기하게 그때만 해도 독서에 대한 갈증이 전혀 없었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지도 몰랐다. 지금 서른이 된 내가 책벌레가 된 걸 보면 사람 일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같다 – 씻는 시간도 달라서 좋았다.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우리는 각자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밖에는 눈이 쏟아졌다. 그리고 나는 새벽 두시가 되서야 스탠드를 껐다.


 나는 구약의 다니엘 서나 느헤미야 서를 읽는 걸 좋아했고 신약으로는 히브리서 같은 바울 서신을 읽었다. 차마 말할 수 없지만 그때는 기적 같은 걸 몇 번 경험한 때였다. 그리고 그 기적의 기원이 내가 믿는 신앙에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내가 보기엔 종교의 성패는 현실과 믿음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적절하게 메우느냐에 달려 있었다. 나는 맹목적이 신앙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종교에 끌렸던 이유는 종교 없는 현실엔 확실한 예언이나 계시가 거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세상은 돌고 도는 물레방아처럼 계속 변한다. 내가 본 세상은 사춘기 소녀의 변덕과도 같았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물질, 물체. 우리가 보이지 않는 중력을 믿는 이유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걸 직접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 확신을 갖고 싶었던 거다. 낙하하는 계시가 나에게도 떨어지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원서 책을 갖고 다니면서 읽었다. 기지 안에 도서관에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빌려 겨드랑이에 끼고 들고 오면 왠지 폼이 나보였다. 하지만 장담컨대 그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사치꺼리가 아니었다. 일리아드는 내 안에서 움직였고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세상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은 세상의 파편들. 부수적이라고 느껴졌던 것들이 점점 확대되어 내 눈 앞에 큼지막하게 도래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확대경이 황금처럼 보였다. 활자의 힘이 믿어지기 시작했다. 십 센치도 안 되는 이 작은 등이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되었다니 참으로 놀라웠다. 그리고 나는 점점 그 세계에 빠지기 시작한 거였다.


 준이와 나는 깊은 심연까지 들어갔고 이윽고 준이가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었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준이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준이를 혐오할지도 모른다는 내 두려움 때문에. 내 율법 같은 신념은 오히려 준이를 찍어 내리는 쪽으로 움직였다. 내 안에 단두대는 수많은 영혼들의 모가지를 찍었다. 나는 또 종교와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며 준이의 편을 들어야 할지 신의 계명에 따라 마녀사냥을 이어가야할지 고뇌했다. “난 이걸 일러바칠 거야!” 준이와 나 사이에 커다란 선이 그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선은 점점 넓어져 남극에 크레파스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나는 준이를 용납할 수 없었고 그를 심판하고 싶었다. 그리고 카투사 지역반장에게 말할 것이라고 준이를 위협했다. 방문을 닫으며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건 준이를 위협하기 위한 거짓 쇼였고 사실 난 누구에게도 준이의 비밀을 이르지 않았다.


 준이는 내게 소중한 존재였다. 호모 섹슈열리티라는 게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는 존재한다는 걸 이제야 느낀다. 인간의 욕망이 또 다른 화신을 낳았다는 게 문제였다. 어쩌면 그날 준이의 그 뒤틀림은 인간으로써 숙명처럼 안고 가야할 고독과 같은 거였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고 그 어색함은 우리 가운데서 천천히 희석되었다. 가끔씩 나는 그때 준이의 고백이 자신을 어떤 것으로 가장하기 위한 거짓말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중 스파이처럼 말이다.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와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 사이에서 고혹한 연기를 펼치는 박쥐. 혹여나 그때 준이가 내가 활자의 세계에 점점 빠져들었던 것처럼 그렇게 인간 심연 깊숙한 데서 어떤 알 수 없는 콜링을 받고 기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내게 그렇게 담담하게 고백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때 내가 좀 더 지혜로웠다면 최소한 준이가 받았던 그 콜링의 실체가 진짜였는지 가짜였는지 혹은 진짜라면 가끔씩 찾아오는 손님과도 같은 거였는지 아니면 너의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바꾸는 거대한 무언가였는지 말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이것도 내 후회에 불과한 걸까. 어쨌든 일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거였을까. 다시 그때를 회상하며 지금 내 심장에서 올라오는 작은 미동을 느껴본다.


* 이 작품은 2021 박경리 토지문화재단 문인창작실 입주작가로 선정되어 활동하는동안 집필되었습니다.


* 소설의 내용은 모두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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