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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재훈 Jul 06. 2021

역시 될 놈은 된다니까!

카투사 이야기 - 4

 윤은 이렇게 말했다. “역시 될 놈은 된다니까” 그 한 마디가 내 어깨를 으쓱하게 했다. 보통 발표일 하루 전에 선발된 지원자들에겐 문자가 오는 게 관습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깜깜무소식이었다. 솔직히 기대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난 보통 이런 중대한 발표 소식에 큰 희망을 걸지 않는 편이다. 어떻게 보면 대학입시나 이런 카투사 발표에서 합격이나 선발되었다는 소식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이성적이지 못한 일 아닐까? 우리는 그저 운에 맡겨져 살아갈 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물론 입시 같은 건 공부 하면 할수록 좋은 점수를 받을 순 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는 순간서부터는 모든 건 운으로 결정된다. 우린 우리가 속한 클래스 집단 안에서 사실상 무작위로 배열되고 정착하게 된다. 고대 간 놈이나 연대 간 놈이나 다 거기서 거기다. 단지 자신이 선택한 대로 성취했냐 안 했냐의 차이일 뿐이다. 


 학교 위당관에서 대학 영어 수업을 들으러 앉았는데 주변에 스무 살 남자 애들이 시끌벅적하다. 벌써부터 문자로 누가 누가 선발되었다고 궁시렁댔다. 세상만사 모습이 늘 그렇듯 선발소식을 먼저 들은 남자애들은 들떠서 옆에 있는 친구에게 치근대었다. 아직까지 빈 통으로 남아있는 내 문자함. 난 그렇게 마음을 접었다. 자고로 이런 운(運)의 선택을 받기 위해선 내 안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전체는 아니더라도 우주 가운데 있는 일부라도 끌어 모아 새롭게 조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게 내 철학이었다. 세상 밖의 모든 에너지가 내게로 수렴하도록 만드는 게 그것이었다. - 옛날에 읽었던 『시크릿』이라는 책이 갑자기 기억났다. 그 책에선 소원을 이루고 싶다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떠올리라고 써져 있었다. - 인간이 우주의 에너지를 끌어 모은다는 건 내게 있어선 대표적으로 공부하고 책을 읽고, 세상의 모든 지식을 갖는 행위를 의미했다. 나는 더 똑똑해질수록 우주를 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인간의 이런 자발적인 행위 에도 불구하고 우주엔 큼지막한 장애 하나가 있는데 그게 바로 ‘우연’이라는 녀석이다. 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신촌역에서 2호선 열차를 탔다. 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깎아내리면서 그 말을 내뱉었다. 역시 될 놈은 된다고. 


 그래서 윤의 말대로 나는 내 자신이 정말 ‘될 놈’ 중의 한 명이라고 확신했을까? 그렇진 않았던 것 같다. 그 ‘될 놈’이라는 것도 시시각각 바뀌는 척도 또는 기준 같은 거였다. 영어 수업이 끝나고 중도(중앙도서관)에 가서 인터넷으로 내 이름을 조회해보았으나 계속 오류가 떴다.(이 이유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집에 전화를 걸었고 내 이름을 조회해달라고 부탁했다. 인과관계가 확실히 기억나진 않는다)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 어머니는 컴퓨터를 만지는 속도가 현저히 느렸다. 나는 필요한 정보를 전해주고 대신 검색해달라고 했고, 잠깐 길었던 침묵이 끝나고 어머니는 “합격했는데?”라는 대답을 들려줬다.


 나는 속으로 놀라했지만 겉으론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어떤 근사한 품위를 잃고 싶지 않았다. 내 안에 국제적인 감각이 다시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인터네서녈한 마인드로 살고 싶다는 나만의 동경이 시(詩)의 잔상과 같은 이미지를 내게 심겨주었다. 내 마음 가운데에는 미국인과 영어로 얘기하고 있는, 영화 같은 한 장면이 느릿느릿 부화했다. 어쩌면 내 안에 그 국제적인 감각이 이 천운을 나에게로 끌고 왔을지도 몰랐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옛 속담처럼. 그리고 카투사로 지내보는 게 앞으로 내 인생에 꼭 필요한 무언가가 될지도 몰랐다. 


 나는 을지로를 지나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을 내리는 윤의 처연한 대비를 기억한다. 평생 해외 한 번 나가지 않고 이 좁은 땅을 벗어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 않는가. 난 그들의 운명 또한 귀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나와 같은 운명이 필요 없는 인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카투사가 되었고 윤은 그렇지 않았다. 천문학과를 복수전공했던 윤은 대학교 4학년이 돼서야 입대를 했다. 그는 진주에 있는 공군기지로 발령이 났다. 윤과는 그렇게 연락이 끊겼다. 어떤 이유에선가 윤은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다. 분명 휴가를 나왔을 때도 묵묵부답이었다. 


 에프씨 연세 축구 동아리 형들은 내가 카투사에 뽑혔다는 소식을 듣고 너가? 너가? 라고 말꼬리를 올렸다. 동아리 동기들도 모두 낙방했다는 소식이었다. 형들이 그렇게 물음표를 달았던 건 내가 일학년 때 수업을 거의 들어가지 않은 무뢰한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형들의 그런 반문이 꼭 조롱 같은 건 아니었다. 새내기 땐 어떤 사고라도 전부 용서되는 시기였으니까. 의례까진 아니더라도 첫 번째 학기에 F를 줄로 맞는 게 창피가 아니라 명예로운 일로 치부되기까지 했으니까. 학사경고를 맞은 그 놈은 고루한 공부 따윈 집어치고 세상의 진짜 가치를 찾기 위해 놀고 또 놀고, 용기 있게 방랑자의 인생을 살아보기로 스스로 선택한 거였으니까. 나에게 있어 그 시간은 전위적인 아방가르드 예술 행위와 같은 거였다. 그건 해방, 그리고 꿈이었다. 그 시기만큼 혼란스러웠던 적이 또 있었을까. 나는 어떤 살(煞)에 맞은 것처럼 그 속에서 돌고 돌았다. 모진 기운이 나를 휘감았고 나는 거기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학교를 빠진다고 해서 꼭 어떤 영웅적인 경험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신촌에 있는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동아리 형들과 축구를 했다. 그야말로 시간은 아무 쓸모없이 허구하게 흘러갔다. 그 무념무상의 시간들이란 끔찍하다. 그 시절의 나는 무언가를 건강하게 생산하고 만들어낼 수 없었다. 끊임없이 소모하고 바닥을 드러내는 인생. 교실 속의 공기는 숨 막혔고 가치 없어 보였다. 유일하게 내 눈을 즐겁게 해준 건 캠퍼스의 전경, 여학우들의 산뜻한 옷차림, 왁자지껄한 신촌 거리, 그리고 연대생이라는 위상을 각종 쾌락거리들로 아주 사치스럽게 소비하는 무리들의 그림자 같은 거였다. 그리고 그들의 검은 그림자를 밟을 때마다 나는 섬뜩한 기운이 솟아올랐다. 프리메이슨에 새로 가입한 풋내기가 된 것 마냥 나도 어떤 조직의 일원으로써의 의무를 충실히 감내해야만 했다. 그때만 해도 국제적인 감각은커녕 내 안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존재할 수 없었다. 급기야 피폐해졌고 섬세한 감각 따윈 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줄 F로 장식한 종이 쪼가리를 얼굴에 내던지며 아버지는 쓰러져 있는 내 옆구리를 사정없이 밟았다. 미친 새끼, 창피하지도 않냐. 니가 인간이냐. 그는 나와 우리 가족 사이에 박혀있는 심연의 고리를 보지 못했다. 나로서는 이것이 불가피한 거였다. 나는 자유를 갈망했다. 진정한 자유.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나아가고 싶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었다. 루시퍼를 닮은 악마가 나를 비웃고 있었다. 저는 창피하지 않아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나는 악마의 얼굴에 대고 그렇게 말했다. 그들에겐 도무지 이해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거짓말을 보태지 않고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진짜 내 인생을 살아가는 게 내게는 훨씬 중요했기에. 


 카투사가 되는 건 학점 같은 게 필요 없었다. 괜찮은 영어 성적만 있으면 되었다. 나는 영어를 잘하는 지질학도였다. 지금부터라도 내 인생을 걸어가고 싶었다. 어느 순간에 나는 돌연 변했다. 무언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런 마음이 왜 생겼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전혀 모르던 게 내 마음을 헤집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기생충처럼 내 몸에 고질적으로 박혀있던 무기력함이 다시 나를 잡기도 했지만 내 스스로도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다는 걸 확연하게 체감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 이 작품은 2021 박경리 토지문화재단 문인 창작실 입주작가로 선정되어 활동하는동안 집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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