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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재훈 Jul 02. 2021

유 디드 그레잇 잡

카투사 이야기 - 3

 주한미군은 연례행사처럼 전국적으로 축구대회를 연다. 대대마다 미군들과 카투사들이 한데 섞여 대표팀이 꾸려졌다. 말할 것도 없이 나는 대대 안에서 이미 축구 왕이라 불리고 있었다. 갓 이병 시절부터 선임들에게 사랑받은 이유도 다 이 발끝에서 시작됐다. 미국에선 유럽이나 우리나라처럼 축구가 그렇게 사랑받는 스포츠가 아니다. 디팩(D-fac, 미군기지 식당)에 들어가도 TV에선 NFL과 NBA 프로만 주구장창 켜진다. 그러나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 아닌가. 이곳에서도 수없이 많은 종족들이 살고 있다. 그야말로 멜팅 팟! 우리대표팀 안에는 남미 계, 독일 계 미군들도 있었다. 아무리 미국이 축구에 관심이 없다하지만 이들은 논외였다. 조상들로부터 공을 차는 피를 물려받았는지 이들은 어마무시하게 공을 찼다. 어마무시하다는 건 거칠다는 게 아니라 정말로 공을 잘 찬다는 의미이다. 그중에서 로드리게즈는 – 벌써부터 스페인 쪽 냄새가 짙게 나지 않는가 – 압권이었다. 실력뿐만 아니라 뛰어난 코칭으로 팀을 조직해나갔다. 그런 로드리게즈조차도 내 실력만큼은 인정해준 건 사실이지만 … 카투사로 지내면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꼽으라면 이때를 뽑을 것 같다. 우리는 이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사실 우리 팀은 동두천 내에서 열리는 대회에도 참가한 적도 있었지만 몇 번 고배를 마시곤 했다. 


 축구만 하면 나는 에이스 역할을 해야 했고 그만큼 그라운드에서 엄청난 활동량을 소화해야했다. 동기였던 J는 나만큼 잘하는 축에 속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대단한 움직임을 보여주진 못했다. 한 번은 내가 너무 혼자 뛰는 것 같아 불평을 토로 했다. 아임 타이어드. <I’m tired> 주변의 선수들이 좀 더 도와줘야 한다고 피력한다는 걸 잘못 표현한 것이다. 그러자 그 얘기를 듣고 로드리게즈가 노발대발했다. 에브리원 이스 퍼킹 타이어드. fxxx 이 쏟아졌다. 옆에 있던 K는 단어선택을 잘못 했다고 스쳐가듯이 내게 얘기했다. 


어쨌든 나는 어떤 운동 종목이든지 대대 대표로 나가곤 했다. 동기였던 J와 육상 릴레이에 나갔던 기억은 영영 지워지지 않는다. 상상만 했던 것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게 어떤 의미와 감격을 가져다주는지 나는 종종 되새김질하고 그 짜릿한 우월감을 직접 체화해보려고 애쓴다. 나는 항상 이 현실화(現實化)가 미스테리하다고 느꼈다. TV로 김연아가 트리플 악셀을 하고 영광의 금메달을 목에 거는 걸 보는 게 다른 나라 일처럼 보이곤 했다. 한없이 커 보이는 영광과 명예. 평생 나는 그런 것들과 거리가 멀다고 합리화하며 살아왔지만 막상 릴레이가 시작되고 나도 모르게 그 영예로운 운명을 향해 뛰어가는 내 자신을 보고 있으면 내 안에 사상(思想)과 절대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초월적인 신체능력을 스스로 체감하곤 했다. 생각과 몸의 불일치. 이 두 가지는 결코 상생할 수 없었다. 이 새로운 자각은 내게 새벽에 단잠을 깨우는 꾀꼬리 소리처럼 그동안 익숙했던 모든 것을 깨뜨리는 총성과 같았다. 이런 자각은 살면서 자주 찾아오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때마다 인간으로써의 내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고 등고선처럼 새겨져 있는 이 세계의 위상 그래프 위에 ‘나’라는 존재가 들어갈 만한 공간을 찾으려 애쓰곤 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나 난 이 세상이 온통 위계로 가득 차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런 위계라면 조금 쉽게 말하자면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된다는 식의 믿음이었다. 사람은 각자 있어야할 위치가 있고 그 위치에서 벗어나면 죽도록 고생만 한다는 게 이 믿음의 실체였다. 


 그렇게 릴레이는 시작되었고 난 첫 주자로 서기로 했다. 장교 스코비치는 그야말로 옛날 로마 장군처럼 잘 생기고 키도 훤칠했다. 카이사르 조각상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듣기로 그가 100미터를 10초대에 돌파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실제로 뛰는 걸 보니 그 말이 거짓말 같진 않았다. 어쨌든 이건 팀 스포츠였고 네 명 모두가 다 같이 잘 뛰어야만 이길 수 있는 게임이었다. 스코비치와 흑인 일병, J 그리고 나. 우린 그렇게 운명의 릴레이 선에 섰고 나는 스타트를 끊었다. 수많은 군중들이 우리를 둘러쌌다. 운동장 트랙이 평소보다 더 길고 험난하게 보였다. 나는 어떤 플랜도 없었지만 막상 뛰는 순간 두 번째로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 욱이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안경 쓴 빡빡머리 카투사 한 명이 선두로 치고 나오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아직 트랙은 많이 남아 있었고 다음 기회를 찾았다. 나는 빡빡머리가 힘이 빠질 때를 호시탐탐 노렸다. 400미터 트랙의 반을 돌았다. 빡빡머리가 조금 지쳐 보이긴 했지만 아직 힘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방심하면 2등으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해보였다. 내 뒤에도 두 명이 더 쫓아오고 있었다. 250미터를 지난 것 같았다. 이제는 쇼브를 봐야했다. 첫 주자였기에 굳이 꼭 일등을 해야 할 필요까진 없었다. 그러나 내 주변엔 수많은 관중들이 있었고 나는 내 안에 아드레날린을 더 분출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속도를 내어 빡빡머리를 추월했다. 뒤에서 가파른 숨소리가 요동쳤다. 나는 이제 밀리지 않기 위해 페이스를 유지해야만 했다. 빡빡머리에게 더 힘이 남아 있지 않다면 내가 이길 승산이 컸다. 마지막 100미터가 남았을 때쯤 내 다리엔 이미 젖산이 충분히 채워진 느낌이었다. 턱은 땅 밑까지 떨어진 느낌이었고 다리 힘은 급속도로 빠지기 시작했다. 


 내가 추월하자 관중들은 감탄의 함성을 내질렀다. 즉흥적으로 짜 올린 내 플랜이 정확하게 들어맞았던 거다. 솔직히 빡빡머리는 처음부터 선두에 설 생각만 했지 전체적인 페이스를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당장 앞에 놓여있는 흥분거리에 시선을 빼앗긴 거였다.  관중들도 동시에 내 플랜의 정체를 완벽히 캐치해내고 그 다이내믹한 전략의 위대함에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곱슬 금발의 스코비치가 갑자기 내가 있는 쪽으로 뛰어오기 시작하더니 쉼! 쉼! 리틀 빗 모어! 모어! 라고 해댔다.(아무리 생각해도 스코비치는 유명 팝가수 마이클 볼튼을 닮은 것 같다) 이윽고 출발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탈진이라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되었다. 함성은 갈수록 커졌다. 너에게 공감한다는 전인격적인 시그널이 여기저기로 전파되었다. 그건 마치 내 영혼의 성격에 관해 말하는 것과 같았고 그 심부에서 뽑아져 나온 즉흥성 또한 너의 영혼과 흡사 닮아있으며 아주 위대하다고 덧붙이는 것 같았다. 난 그 함성이 신의 계시처럼 들렸다. 그리고 내 자아는 하늘에 구름이 가득 차듯 그렇게 자아도취 상태에 빠져들었다. 수많은 미군들이 나를 둘러쌌고 어깨를 쳤다. 




유 디드 그레잇 잡 




J는 내 바통을 건네받았고 나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금방이라도 숨이 멈출 것 같았다. 가끔씩 절벽 끝에 서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큰 게 마려운데 버스는 도저히 멈출 생각을 하지 않을 때. 이 위기만 잘 넘기면 괜찮아질 거라는 또 다른 자아의 목소리.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게 내 인생의 성격이자 영혼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평택기지로 넘어갔다. 8강전서부터는 평택에서 시합이 진행된다고 했다. 서전 로드리게즈는 내게 상관에게 허락을 맡고 오라고 말했다. 미 군목이었던 가브리엘 신부는 탐탁지 않아하면서 내게 잘 갔다 오라고 말했다. 로드리게즈는 대표팀을 벤에 태우고 멋진 선글라스를 낀 채 벤을 몰기 시작했다. 평택은 그야말로 낙원의 성지였다. 동두천 캠프 케이시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다양한 시설들이 있었다. 수퍼 짐(Super Gym)이라고 축구 스타디움 만 한 체육관이 먼저 우릴 반겼다. 내부엔 수영장과 헬스 센터, 각종 피트니스 센터들이 있었다. 야구장과 축구장은 도대체 몇 개인지 대충 세어 봐도 세 네 개가 함께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이라이트는 주한미군 가족들이 머물 수 있도록 만든 롯지였는데 일반 오성급 호텔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세련된 무드를 갖추고 있었다. 더블베드는 더 없이 좋았다. 적어도 사성과 오성 급 사이에 숙박시설이었다. 난 이 대목에서 괜히 천조국 천조국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엄청난 자본이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그것이 자국민의 안위를 위한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이런 원더랜드를 한껏 창조할 수 있다는 게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평택에 도착한 저녁엔 타코벨 회식이 있었다. 각자 원하는 타코를 시켰다. K는 유학파여서 그럴지 몰라도 J와 다른 카투사들은 이런 타코가 익숙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평생 그걸 먹어온 마냥 아주 침착한 자세로 힙하게 타코를 받아들었다. 옆에 있던 로드리게즈가 그 모습을 보고 비웃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이라도 영어를 쓰고 싶은 욕심에 하루 종일 머릿속에 되 내이던 문장들을 쏟아내려 했지만 이 소심한 성격이 어디 사라지겠는가. 나는 기본적으로 정말 마음이 맞는 사람이 아닌 이상 오랜 시간을 함께 있지 못하는 인간이다. 내면에 어떤 대상을 향한 동경은 넘치는데 그걸 뒤받치는 지렛대가 없었다. 수없이 생각하다 결국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사건은 종결된다. 그래도 조금 위로가 되는 건 이렇게 혼자 머릿속으로 굴려도 어느 정도 언어감각을 향상하는 데는 아주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었다.(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다) 물론 언어를 익히는 데는 원어민과 직접 대화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이런 서바이벌은 계속 힘을 발휘했고 어쨌든 좋은 쪽으로 움직이곤 했다. 


 나는 K와 같은 방을 쓰기로 했다. 군중 속에선 모든 시선을 자기에게로 끌 수 있었던 그가 이런 소박한 관계 속에선 마치 길 잃은 양처럼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우린 속 깊은 얘기를 하지 못했다. 그는 내가 자신과 조금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또 안 그럴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우리가 서로 한껏 흥분해서 얘기할 수 있는 테마는 그리 많지 않았다. 프리미어리그 중계를 틀어놓고 입씨름하는 것과 박지성 골 모음을 보면서 함께 감탄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신승대 캐스터의 독특한 어감이 룸을 가득 채웠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K는 먼저 자겠다고 했다. 난 그런 그가 불편하기도 했지만 좋았다. 그에겐 내게 흐르고 있는 감정이 똑같이 내재해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행복한 2박 3일을 보냈다. 아침 조식 뷔페가 감칠맛이 났다. 이것이 바로 럭셔리의 정점이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크루아상, 딸기 잼을 바른 구운 식빵을 차려 로비 소파에 앉았다. 무슨 국가대표 선수도 아닌데 J와 K와 나는 비장한 얼굴로 아침을 맞이했다. 뜨거웠던 여름, 우린 3:0 2:1 스코어로 결승전에 올랐다. 결승전보다 어려운 준결승전이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막상 9부 능선을 넘으면 그 다음 문제는 오히려 쉽게 느껴진다. 이것이 인생의 묘미처럼 보였다. 결승전은 생각보다 쉽게 끝났고 우리는 우승컵을 들었다. 공을 전달해줄 수 있는 공간이 텅텅 비어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오른쪽에서 스로잉을 건네받아 장대한 중거리포를 날렸고 그대로 골 망을 흔들었다. 우린 우승한 대가로 포상휴가를 받았다. 나는 그 휴가를 바로 다음 주에 썼다. 그래서 목금토일에 이어 월요일까지 연달아 쉴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대대에서 우리 대표팀을 위해 마련한 세레모니에는 참가할 수 없었지만. 나름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게 내 방식이니까 … 후회는 없다. 아무리 카투사라도 휴가만큼 좋은 건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말마다 서울로 외박을 나가도 절대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걸 누리기 위해 카투사로 왔으니까!   





* 이 작품은 2021 박경리 토지문화재단 문인 창작실 입주작가로 선정되어 활동하는동안 집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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