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재훈 Sep 30. 2022

불안의 시대 - 2

<종말에 관한 기록> - 똥  

레바논 베이루트에서는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이란 핵과학자 모흐센 파크리자데가 이스라엘 모사드에게 암살당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중동은 지금 화약창고지이다.




페스트 이후에 최악의 바이러스가 지구를 침투했다.




《아비정전》은 종말의 음침함을 보여준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디파티드》는 마피아의 세계가 얼마나 치졸한지 보여준다.




넬슨 만델라의 연설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그리고 파농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도 썼는데….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우리에게 꿈이 있다고 말했었는데….




21세기에 “Black Lives Matter”이라는 구호가 드나드는 것은 웬 말인가.





(…)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오딘의 슬레이프니르를 타기 위해서?



스페인 내전을 돌아보기 위해서?



칼리쿨라 황제의 미련함을 반면교사 삼기 위해서?



천경자 씨의 아프리카 여인 수채화를 다시 감상하기 위해서?



그렇다.



우리는 지금 4차원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3차원의 요소로만 살기에는 어딘가 결핍을 느끼고 있다.
















이외에 채워져야 할 4차원 요소는 바로 상상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의 엉뚱함과 천진난만함.




가장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철학을 시작한다면 아마 이런 소설을 쓸 수 있겠지.




나에게 가장 사소한 영역이란 바로 가장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그 어린 시절의 추억이란, 바로 만화 삼국지였다.




난 그렇게 성장했다.




주유와 제갈량의 모략 속에서 적벽대전을 상상했다.




호로곡 전투에서 사마의가 간신히 목숨을 건졌을 때에,


그 아쉬움이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좀 더 성숙해지고 싶어서 조자룡 장군을 흠모했다.


그는 흰색 갑옷과 흰색 투구를 쓰고 있었다.








*








나는 새벽에 노트북이 똥을 먹는 꿈을 꾸었다.




그렇다.




지금 내가 타이핑을 치고 있는 이 기계에 똥이 들어 있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역겹고 끔찍하다.




똥은 기계의 갖은 구멍들을 찾아내어 기어이 그 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똥은 그런 조사하는 본능에서 희열을 느끼나보다.




그 똥은 황금 똥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뱃속에서 제대로 소화되지 않은 못난 똥이다.




그 똥은 흐물흐물거린다.




물에 흠뻑 젖어 설사에 비견된다.




그런 똥들이 지금 나의 기계에 들어있다.




옛말에 똥이 나오는 꿈을 꾸면 재수가 좋다고 하던데….




나는 아직도 미신을 믿는 족속일 뿐이다.




이 똥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지하세계를 통과하고 있다.




수천 톤의 똥들을 매일 나르지 않으면 도시는 패닉에 빠진다.




김훈 씨의 『연필로 쓰기』라는 에세이를 보면 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똥의 역학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더러움을 느끼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똥의 4차원적 요소를 이해하기 위해서 지금도 애쓰고 있다.




어젯밤 꾸었던 꿈을 이해하기 위해서.




인류의 가장 더럽고 추악한 영역을 이해하기 위해서.




똥의 철학. 똥의 마음. 똥의 성분. 똥의 역할.




이 모든 것들이 결합하여 똥이 똥 됨을 인간에게 가르쳐준다.




그리고 똥들은 인간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들의 배에서부터 탄생한 존재예요!”




똥들은 아주 당당하게 말한다.




나는 지금 한참동안 똥을 만지고 있다.


똥의 흙갈색이 손에 묻어난다.


냄새는 아주 고약하다.


물로 씻어내야 하는데 그냥 놔두고 싶은 강한 욕망을 느낀다.




그렇게 나 자신을 더럽게 내버려둔 채


1분 후에 손에 묻은 똥 자국 냄새를 맡아본다.




킁킁 … 킁킁 …




다시 1분 후에 맡아본다.




킁킁 … 킁킁 …




그 냄새는 인류의 뇌리 속에 영원히 각인될 것이다.


그리고 인류는 그 냄새에 영원히 중독될 것이다.






*






인류는 조금씩 자유를 빼앗기고 있다.




자신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그 결정권조차 상실해버렸다.




마스크를 써야할지 벗어야할지




그 자유에서조차 인간은 이제 더 이상 선택할 권리가 없다.




마지막 남은 때에




사람들은 자신이 정착한 곳에 영원히 앉아서 자신의 일에 집중한다.




모빌리티(mobility)는 사라졌다.




이것이 가장 큰 비극이다.




이제 인류는 어디론가 갈 수 없다.




가장 개인적인 삶을 살아가며, 가장 검소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움직이지 않고 에너지를 비축하는 검소한 삶.




자연스레 자연의 과실을 따먹게 되고, 나의 동산을 거닐게 되며,


수고하지 않고 채소들과 과일들을 얻는 비결을 깨달은 채,


잠시나마 낙원의 꿈을 꾸어본다.




영국 시인 밀턴은 『실낙원』을 지었고,


인류는 점차 『복낙원』으로 향하고 있다.




대학 때 어느 교수는 밀턴의 시를 다시 읽으면서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실력 없는 사람이라 다시 읽어볼 여력이 없다.




인류는 그렇게 죽어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불안의 시대 -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