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배 슈퍼매치 4강전 - 박정환 VS 신민준 (3)
하나은행배는 우승상금이 무려 7500만원으로, 개인전 국내 대회 중 최대 규모이다. 3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전통의 대회인 GS배의 7000만원을 능가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대회는 이벤트성 매치인 '팀 대항전'으로 출발했다.
첫 대회의 명칭은 <하나은행배 MZ 슈퍼매치>로, M세대와 Z세대가 각각 선발전을 벌여 자기 세대를 대표할 5명을 뽑아 5대5 연승전으로 대결하는 방식이었다. 연승전이란 이긴 선수가 계속해서 두는 방식으로, 첫 번째 선수가 올 킬을 해낼 수도 있고 1~4장이 모두 패했더라도 주장이 나머지를 모두 이기면 이길 수 있는 방식이다. 세계대회에서는 농심신라면배가 이 방식을 택하고 있다.
첫 번째 대회에서는 Z세대의 주장인 신진서가 M세대 주장인 박정환을 꺾으며 우승을 결정지었다.
이렇게 막을 내리며 '재밌었던 이벤트' 정도로 남을 줄 알았는데...
<23-24 하나은행배 MZ 슈퍼매치>를 개최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바둑인들은 깜짝 놀랐다. 우승 상금을 무려 7500만원으로 증액했는데, 이건 국내 최대 규모의 상금이기 때문이었다. 그냥 이벤트 대회 정도로 알았는데, 공식 대회로 만들어준다고? 심지어 상금을 올려주기까지 하다니! 잘 모르긴 해도 많은 프로기사들이 하나은행을 향해 '압도적 감사'를 표했을 것이다. 이 대회에서는 6위 김명훈이 박정환을 잡고, 5위 강동윤이 신진서를 잡으며 두 사람이 결승에서 붙는 신선한 상황이 벌어졌고, 김명훈이 2-1로 강동윤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는 한 번 하고 말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조아바이톤배 루키리그>처럼 단체전을 개인전으로 변경한 경우가 있었지만, 대회 규모를 줄인 경우였다. 스폰서가 나서서 대회 규모를 이렇게 확대해 준 사례도 처음이었고, 또 있던 대회가 사라지는 것도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기에 기사들 사이에서는 '올해 하나은행배 하려나?' 같은 이야기가 종종 나오곤 했다. 이런 불안감은 다행히도 <24-25 하나은행배 슈퍼매치>가 무사히 개최된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사그라들었다.
<24-25 하나은행배 슈퍼매치>는 전 시즌과 다른 큰 변화가 있었다. 바로 대회 명칭에서 'MZ'를 뺀 것이다. 이전 시즌 M세대보다 나이 많은 시니어 선수의 참가를 제한했던 방식을 모든 기사가 참여할 수 있는 '종합기전'으로 바꾸었다. '상금 많은 제한기전'에서 '진정한 국내 최대 규모 기전'으로 올라갈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24-25 하나은행배 슈퍼매치> 4강전
(흑)박정환(백)신민준
3보 (31수~38수)
<실전진행1>
박정환은 어깨짚음에 잠시 고민하다가 31로 밀어갔다. 32로 한 칸과 33,35는 당연. 여기서 백은 기로에 섰다. <가>로 상변을 마무리할 것인가, <나>로 나와서 큰 싸움을 벌일 것인가. 아니면 <다>로 집을 챙기며 김빼기 작전을 펼 것인가.
백이 상변을 두는 경우부터 보자. <참고도1> 1로 지킨다면 흑은 10 자리로 낮게 넘어가야 한다. 이 교환 자체는 기분 좋다. 하지만 4로 우변을 막히게 된다고 치면 흑 모양이 넓어진다. 백 입장에서는 썩 내키지 않는 진행이다.
<참고도2> 1로 우하귀를 차지하는 것도 유력한 진행이다. 10으로 상변을 내주더라도 이미 백이 집을 많이 차지했기에 충분하다.(AI 추산 백 승률 50%) 다만 신민준은 전투를 원했기에 이렇게 정리하는 것은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참고도 1>처럼 상변을 둬놓고 <참고도 2>처럼 두면 백이 양쪽을 다 차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 답은 <참고도 2-1>에 있다. 뒤늦게 1로 파고든다면 2,4로 막아서 우변쪽 모양을 크게 넓힌다. 이렇게 되면 흑이 약간 유리해진다.
반대로, 흑이 비슷한 모양을 만들 수는 없을까?
<참고도 2-2> 2로 먼저 막는 것을 선수하고 8,10으로 두면 모양이 비슷해 보이긴 한다. 하지만 이때는 상변의 연결이 확실치 않아 [가]의 약점이 치명적이다. 이 경우는 오히려 백이 약간 유리하다.
<실전진행2>
신민준은 시간을 쓰지 않고 즉각 36,38로 끊고 나왔다. 애초에 싸우기로 작정했는데, 굳이 이리저리 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박정환도 눈을 번쩍 뜨고 수를 읽기 시작했다. 이 바둑 첫 번째 전투가 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