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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vs방패의 대결'에 담긴 진짜 의미

하나은행배 슈퍼매치 4강전 - 박정환 VS 신민준 (2)

by 이연
나. 창과 방패.png 이미지 : 챗GPT

어떤 스포츠든 선수마다 플레이 스타일과 운영 패턴에 차이가 있다. 주로 자신의 강점이 잘 발휘되도록 전략을 짜고, 잘 이기는 방식으로 연습을 반복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어느 부분을 키우려고 하지 않는 이상 자신의 강점을 계속 강화하는 방식으로 가기 마련이다. 이 플레이 스타일과 패턴을 바둑 용어로는 '기풍'이라고 표현한다.


박정환은 실수가 적고 치밀한 편이다. 그러다보니 꾸준히 안정적으로 행마하며 상대가 실수할 때 약간씩 이득을 보는 스타일로 경기를 유리하게 만든다. 상대는 어디서 실수했는지도 모른 채 패배한다. 다만 과감한 바꿔치기가 필요할 때, 좀 당해주고 넓은 곳을 가야 할 때도 안정적인 행마만 고집하거나 치밀하게 득실 계산을 하다가 상대에게 중요한 턴을 뺏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신민준은 서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변화무쌍한 상황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돌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이라면 작은 실수 하나로 큰 타격을 입기 마련인데,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 역으로 상대의 실수를 유도해낸다. 하지만 안정적으로 판이 짜여서 상대에게 실수를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 본인이 잔실수를 하며 불리해지곤 한다.


두 선수의 상대전적은 박정환 기준 14승 9패. 안정적으로 가면 박정환이 우세하고 난전으로 가면 신민준이 더 잘 싸우는 편이지만 정수대로 두면서 '유리한 전투'로 유도하기는 어려운 만큼 '안정적 운영'에 강점이 있는 박정환의 승률이 더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로 직전 6월 초에 치러졌던 쏘팔코사놀배는 박정환의 약점과 신민준의 강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흑을 잡은 신민준이 판의 절반을 휩쓰는 대난투로 유도하는 쪽으로 포진을 짰고, 별 의심없이 따라가던 박정환은 돌이 고립되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중요한 돌이 잡히며 50수만에 신민준이 승기를 잡았고, 이후에 박정환은 다시 기회를 잡지 못 했다.


<24-25 하나은행배 슈퍼매치> 4강전

(흑)박정환(백)신민준

2보 (19수~30수)

<실전진행1>

<실전진행1>

얼마 전의 아픈 기억 때문인지 본인 스타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흑을 잡은 박정환은 아예 난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없애버리려는 듯 보인다.

박정환은 가장 평범한 19 양걸침을 두어갔다. 20,22로 타고나온 뒤 23,25로 모양을 다지는 것은 기본 정석. 여기서 신민준도 처음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 백의 응수는 가,나,다 3가지 정도이다.


<참고도1>

보통의 경우 <참고도1>처럼 1로 붙이는 수가 많이 쓰이지만 11까지 진행된다고 봤을 때 박정환의 의도대로 너무 무난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신민준은 초반에 모양이 결정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참고도2>


그렇다면 다른 수는 뭐가 있을까. 실전처럼 26자리 호구치는 수, <참고도2>처럼 꽉 잇는 수 정도가 떠오른다. 호구치는 수는 한 발 물러서는 느낌이 있다. 그렇다면 역시 꽉 잇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지만 <참고도2>처럼 전투가 일어났을 때 전체 판세를 보면 좌하귀는 흑이 한 발 더 나와있고, 우상귀 쪽은 아예 흑돌로 벽이 쌓여있다. 아무리 봐도 백이 유리한 전투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전진행2>

<실전진행2>

신민준은 여기까지 빠르게 판단한 다음 26자리로 호구치는 수를 선택했다. 27로 벌리자 28로 철통방어. 유리한 곳에서 싸우기 위해 힘을 비축하는 모양새다.

여기서 박정환은 29로 씌워갔는데, 원래는 <참고도3>처럼 우하귀 집을 짓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신민준이라면 안정적으로 4,5 교환을 해주기보다는 <참고도3-1>의 1로 들어가 전투를 벌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 때 우하귀가 아닌 [가]의 자리에 흑돌이 있다면 이 싸움은 흑이 훨씬 유리해질 것이다. 신민준은 그 의도를 파악하고 침입이 아닌 30 어깨짚음으로 흑 모양을 삭감해 들어갔다.

<참고도3>

<참고도3>

1,3으로 우하귀 집을 짓는 것이 가장 크다. 4로 받을 때 5로 지키는 간격도 만족스럽다. 하지만 백이 이렇게 둬 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참고도3-1>

<참고도3-1>

백1로 들어가 흑도 약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3,5로 뛰어나가면 이 싸움은 백이 약간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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