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착한 사람이랑 해야 된다더니 맞는 말 같다.
나는 평소에 '나 정도면 착하고 성격도 좋지'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때때로 선행도 베풀고 공중도덕도 잘 지키고, 여유가 있다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지내면서 은근히 자아도취에 빠졌었는데 정말 마음씨 곱고 친절하고 다정한 남편을 만나고 그런 생각을 접게 되었다.
만나기 전부터 친절하고 착한 사람인건 느끼고 있었지만, 참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대학생 때 야간작업 중 출출한 배를 잡고 둘이서 컵라면을 사 먹으러 간 날이었다. 우리가 익숙히 다니는 골목은 사방이 주택가여서 밤에는 꽤 어둡고 조용한 곳이었는데 편의점에 다 와갈 때쯤 우리는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편의점 근처라서 많이 어둡지도 않고 사람도 많은지라 내가 아니어도 누가 도와줄 거라 생각했고 대문 앞에 잠옷을 입고 있으니 부모가 금방 찾을 거라고 생각돼 난 지나치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지나치지 않고 우는 아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주었다. "왜 울고 있어? 집은 어디야?" 울먹이던 아이에게 앞집에 간 아빠가 오지 않는다는 자초지종을 듣고, 아빠를 불러주기 위해 앞집의 초인종을 눌러 사정을 말했다. 다행히 아이아빠가 금방 나와서 아이를 달래며 집으로 들어갔고 우리는 가던 길을 마저 갈 수 있었다.
아이가 집에 들어가는 걸 보니 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일의 경중을 떠나 어찌 되었든 도움이 필요한 어린애였는데 그냥 지나치려던 모습을 보여준 게 창피했다. 그리고 아이의 울음을 무시한 채 지나가는 나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혼자 외면치 않고 도움을 주는 모습에 내가 정말 선한 사람을 만났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의 선행은 작은 곳에서 계속됐다. 관광지에서 간식을 사고 있는데 갑자기 비를 내려 앞에 업혀있는 아이가 비를 맞지 않게 부모 모르게 살짝 씌워준다던지, 전단지를 나눠주는 할머니가 있으면 꼭 받아준다던지, 높은 계단에 낑낑거리며 짐을 올리는 사람을 도와준다던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하지 않는 선행들을 하곤 했다.
나와 그 외의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친절하면 그냥 착한 사람이었겠지만, 다행히 나를 항상 우선으로 생각해 주는 착한 애인이고 착한 남편이라 결혼까지 하게 됐다. 도움이 굳이 필요해 보이지 않거나 취객처럼 남편이 되려 다칠 위험이 있는 경우는 그냥 지나쳤으면 할 때가 종종 있다. 나는 모르는 타인보다 내 남편이 더 중요하기에 이유를 말해주며 설득하면 알았다 하며 내 말을 따라준다. 가끔 내 말을 듣고도 돕고 싶단 눈빛으로 허락을 기다리면 "그래, 도와주고 와요"라며 보내주긴 하지만 대부분 날 먼저 생각해 줘서 착한 남편이 더 좋아 보이는 것 같다. 내 말을 무시한 채 모두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라면 아마 결혼까지는 안 하지 않았을까?
좋은 모습들을 보여주는 남편덕에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사랑하게 된 것 같다. 비단 타인에게 베푸는 선행 외에도 나에게도 배려해 주고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들을 따라 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조금이라도 짐이 있으면 들어주거나, 먹고 싶다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사러 나갈 준비가 되어있거나, 몸이 아프거나 힘든 날에 밤새 간호해 주거나 내가 할 일들을 대신해 주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자신도 힘들고 귀찮을 텐데 날 생각하며 행동해 주는 모습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나도 짐이 여러 개면 꼭 나눠 들고, 먹고 싶어 하는 게 있으면 다음날이나 주말에 꼭 만들어주고, 아플 때 간호해 주고 힘든 날은 푹 쉴 수 있는 환경들을 만들어주면서 남편이 주는 배려를 내 방식대로 돌려주고 있다. 남편이 먼저 행동하고 나도 따라 하면서 더 웃고, 사랑하고, 아껴주는 시간들이 생기는 것 같다.
결혼은 착한 사람이랑 해야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착한 사람과 결혼 한 나는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받기만 하면 점점 닳아 없어질 수도 있으니, 더 아끼고 보듬어서 착한 마음이 마르지 않게 가꿔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