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기다리는 법을 배울 나이

뭐든지 천천히 과정을 즐기자

by 아이린

라면을 끓일 때도 물을 끓이고 면을 넣으라 하는데 나는 그걸 잘 못한다. 냄비를 지켜보고 서있지도 못한다. 타이머 맞추고 앉아 기다리면 되는데 그걸 내가 못한다. 머리가 나쁜 거지. 라면과 수프를 털어 넣고 그냥 끓인다. 가장 맛있는 라면 조리법은 적힌 대로 하는 거라는데 쩝. 그래도 물조절이 잘 된 건지 뭔지 맛은 보통 라면 맛은 난다. 내 착각일 수도 있다.


커피를 끓일 때도 드립을 해서 마시는 커피가 맛이 있음을 알면서도 천천히 내려가는 물을 기다리지 못해 그냥 포기 인스턴트커피봉지 두 개를 찢어 머그에 붓고 커피포트로 끓인 팔팔 끓는 물을 붓고 마신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준비하고 세척하고 썰고 하는 이 모든 과정이 번거롭고 귀찮아 음식 만드는 일을 더 이상 안 한 지도 좀 되었다. 먹는 시간도 무슨 경주를 하는지 함께 먹는 이들이 있는 날은 나 혼자 식사를 먼저 마치고 물이나 커피를 마시며 그네들을 기다리며 불편하게 만들곤 한다. 그러니 나와 같이 밥 먹으려 하는 이가 없지.


성질이 급한 편이라고 이야기 들은 적도 없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아니지 우리 집 유전자에 다혈질이 없을 리가 없지 나도 다혈질이다. 단 부글부글 끓어도 표현을 안 하고 속으로 삭이는 다혈질이다. 교정을 위해 시작한 필사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쓱싹 숙제하듯 하루 한 장 해치우고 다했다 뿌듯해한다


며칠 전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부분을 필사하는데 이런 구절이 나왔다.

번데기에서 나오는 과정은 참을성 있게 이루어져야 했고, 날개를 펴는 과정은 햇빛을 받으면서 천천히. 이루어져야 했다. ( 중략)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음식의 맛도 천천히 씹어야 음미할 수 있고 라면도 물부터 끓이고 그다음 천천히 내용물을 넣어야 맛있는데 커피도 천천히 물을 드립 해서 내려 마셔야 더 진한 향을 맛보는데 말이다. 번데기에 구멍을 뚫어 나비가 쉽게 나오도록 했다가 나비를 죽인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서두르지도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내 삶의 리듬을 하나하나 느끼며 살아야 한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서까지 기다리는 법을 배우지 못해 어리석음을 풀풀 내보내면 정말 그건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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