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탯국 끓이기

작은심술 큰 기쁨

by 아이린

아버지는 1년 365일 국과 김이 없으면 식사를 못 하신다. 그런데 한 여름에 더운 국 끓이기는 고역이다. 냉국으로 얄팍하게 넘기려 해도 소용없다. 국이 없으면 김치를 수저로 꾹꾹 눌러 김치 국물을 드신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과거 그런 행동을 하셔서 할머니가 진저리를 치시면서 김치 국물에 배추 조금 띄워 주곤 하셨는데 우리 아버지가 그러신다.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 전용 김치그릇을 준비해 두고 어머니와 나는 따로 먹는다. 국문제는.. 심술을 좀 부리기로 했다. 아버지가 싫어하는 감잣국 미역국 그리고 황탯국을 돌려 끓인다. 어머니와 나는 이 세 가지 국을 좋아한다.


특히 황탯국은 나의 최애다. 얼마 전 바자회에서 사 온 들기름과 인터넷 평이 좋은 황태를 사용하고 조각무를 썰어 끓인다. 오늘도 그렇게 달달 볶으면서 서서 끓이니 제법 덥다. 다리는 물론 아프다. 아버지가 좋아하지 않는 국을 끓인다는 게 조그만 위안이니 내가 좀 못되긴 했다. 전에 성질나서 육개장을 잔뜩 끓여 일주일 내내 들였는데 냄새도 구역질 날만큼 싫은 어머니와 나와 달리 아버지는 매 끼니 잘 드시는 게 아닌가. 그래도 안 끓일 테다. 동생은 한번 끓여 냉동해 뒀다 데워주라는데 육개장 끓이기가 얼마나 힘든데... 한솥 끓이는 건 어떻고 ...며칠 후 추석에 토란국 끓일 생각만 해도 아득한데, 우리 집에서 토란국은 아버지만 좋아하신다. 매년 추석에 그것을 안 끓이면 싫은 소리 하셨고 작년도 예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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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가 볶아지면서 물을 조금씩 붓고 색이 뽀얗게 변하면 준비해 둔 파마늘 콩나물 계란 푼 것을 넣고 뚜껑을 덮은 후 불을 줄인다. 콩나물이 익는 냄새가 나면 다시 뚜껑을 열고 간을 좀 본 후 불을 끈다. 힘은 들었지만 침이 고인다. 이따 저녁에 맛있게 먹을 생각하니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아버지는 이 맛있는 국을 왜 싫어하시는지 모르겠다만 일단 국물을 내놓았으니 내 알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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