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가지 못할 순간
30년도 더 된 사진이다. 사진을 조금 손보긴 했다. 필카여서 해상도 등등이 엉망인 탓도 물론 있다. 주변에 캠핑도구를 좀 넣어 달랬는데, 나노 바나나는 이게 한계인가 보다. 기억 속의 캠핑 도구는 저런 형태는 아니었는데.. 아무튼 미국인 유럽 아시아 남미 등등의 지역에서 온 30세 미만의 젊은 이들이 트럭을 타고 트래킹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인은 없었다. 머무는 곳 이 캠핑장 텐트였는데... 태어나서 처음 해본 야영이었다. 국내에서라도 좀 다녀본 경험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나는 집순이과여서 이런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 영어를 엄청 잘하진 않았다.그냥 알아듣고 어느 정도의 의사표현은 가능했지만, 내가 느끼는 미묘한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는 못했다. 일행은 대부분이 유럽 애들이었다. 차별을 대놓고 당하거나 하지 않았으니 내가 깍두기 취급을 받는구나 하는 건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화났냐고? 별로 나도 굳이 섞이고 싶은 맘은 없었다
사교적 성격이 아닌 탓이 따돌림의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대체적으로 친절했기에 그리고 캠핑 리더가 잘 이끌어줘서 힘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밥 먹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같이 캠프장 인근 마트에서 식재료를 산다. 나라는 달라도 유럽 애들이 먹는 건 거기서 거기다. 나만 밥과 김치를 먹는 한국인이었다. 파스타 스테이크 샐러드 팬케이크 등등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하면 잘 먹었네 하겠지만 고추장이라도 챙겨 오지 못한 나는 미칠 지경이었다. 참다 참다 워싱턴에 간 날은 자유여행 시간에 한국음식점을 수소문해 찾아가 밥과 김치 등등을 퍼먹었다. 불쌍했는지 식당에서 밥과 김치를 돈 더 안 받고 준 기억도 난다.
그네들에게 나는 어딘지 모르는 아시아에서 온 말수 적은 아이였다. 내가 자신들의 이름을 한글로 써주면 신기해했다. 학교 역사선생인 독일애에겐 한국의 역사 분단등을 이야기했고 남과 북이 대립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지역감정에 대한 이야기 등등 내 나름 한국에 대해 그네들이 묻는 것을 이야기했다. 첫 배낭여행땐 한국의 위치를 중국과 일본 사이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무렵은 최소한 대한민국이 어디 있는지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었다. 일종의 단체 관광을 한 셈인데,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힘들어한 나였기에 바다 위 섬 같은 존재로 하는 여행이 나쁘지 않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따로 또 같이 이런 여행인데, 이후엔 다시 가지 못했다. 나이가 서른이 넘어 자격이 없기도 했고 말이다. 저 무렵만 해도 다리가 멀쩡해 잘 돌아다녔는데...
나는 인생 마지막 여행으로 산티아고 순례를 계획 중이다. 조금 씩이지만 돈을 모으고, 다리 근력을 키우는 운동을 하고 있다. 환갑이 되는 때 떠나려고 한다. 그전까지 내 다리가 나아졌으면 내손이 가방을 들고 움직임이 가능한 상태이길 소망한다. 키보드를 치고 글을 쓰고 역기를 들었다 놨다. 걸레질을 힘주어한다. 나의 모든 일상은 환갑 때 다시 한번 배낭을 메고 외국인들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을 하기 위한 준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