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시다. 그 시인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 시만큼은 마음에 박혀 외우고 있다. 뭐 외운다기엔 너무 짧지만 말이다. 하찮게 여겨지기 쉬운 존재를 통해,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불태웠던 희생의 가치와 존재의 소중함을 하는 아무튼 그런 내용인데 나에게는 조금 아프게 와닿는다. 나는 한 번도 뜨거웠던 적이 없었다. 누군가를 따듯하게 해 준 연탄재도 되지 못하는 존재였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내게 지 어미의 쌀쌀맞음과 지 아비의 인정머리 없음을 물려받은 년이라고 내가 당신의 심기를 건드리면 욕을 하셨다. 누구를 뜨겁게 사랑한 적도 무언가에 온 마음 다해 몰두한 일도 없다.
내 관심을 유일하게 붙잡은 것은 동물뿐이었다. 끝까지 사랑하고 목소리 높여 시위를 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던 존재는 동물 외엔 없었다 앞발이 쇠사슬에 매여 매달린 채 학대 당하는 백구를 위한 현장에도 개 도살장에도 나는 있었다. 돌고래 제돌이를 위한 시위현장과 여러 동물복지를 위한 시위현장에 나는 있었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기들이 시험을 치다 말고 서울역으로 뛰어 나갈 때 나는 시험을 다 치렀다 답안지를 다 내고 짐을 챙겨 서울 역으로 갔다. 그러나 거기서도 나는 한 모퉁이에서 지켜보는 사람이었다. 내 피에는 들끓는 요소가 부족했던 것 같다. 그러나 동물 운동 현장을 돌아다닐 때 나는 뜨거웠다.
학교에서 분신 자살한 이가 나와서 많은 학생이 야간 시위를 하던 뭐 그건 시위는 아니고 그냥 모여 있는 거지만 거기도 있었다. 울먹이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밖에는 길이 없었나 궁금해했다.
후에 아주 오랜 후에 내 세대의 인간들이 민주투사 운운 하며 자신들은 그 대가를 받을 자격이 있노라 하는 말을 들을 때 386에 이어 486 586이 되어 지금도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면 그냥 이해가 안 되고 이상하기만 하다. 홍길동처럼 도망 다니던 전대협 회장의 요즘 모습도 그렇고.. 노동운동을 하다가 여권에 들어간 이와 지금은 여당이나 마찬가지인 야권의 일부가 된 이들의 차이를 나는 여전히 이해 못 한다. 뭐가 다른 건지
내가 생각하는 열사? 는 박종철 외엔 없다. 그때도 지금도...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신입생 시절 박종철이라는 사람의 죽음은 정말 안타까웠다. 공부를 하고 싶은데 학교는 늘 시위로 시끄러웠다. 최루탄 냄새를 잔뜩 묻히고 돌아온 동기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 내게 강의 노트를 요구했었다.. 난 냉정하게 거절하지도 못하고 그냥 복사를 해주었다. 바보처럼 잡히지 말라는 덕담을 하며 말이다. 그 아인 지금 뭘 하고 살까? 여전히 투사처럼 살까?
학교를 그만두고 유학 떠나는 걸 실패했다. 마음을 접고 공부를 해야 했다. 그래서 1학년때의 열심히 학생운동 하던 친구들과는 멀어졌다. 굉장히 오랜 후에 학교의 그네들 중 일부는 시민단체에 들어가고 작은 회사에 들어가 생활인으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건너 건너 들었을 뿐이다
나는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그리고 학교 밖에서 벌어지는 정치와 관련된 일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나 말지와 같이 친구들의 등쌀에 읽던 책도 내던지고 나는 전공 공부를 했다. 대학에 남고 싶었지만 그것도 결국 실패했다. 나는 세상으로 나가야 했다. 쓸데없이 고학력자라는 타이틀만 달고.. 내 전공은 선보고 시집가기도 어렵게 했고 내 성별은 입사원서를 받으러 간 현장에서 여자는 안 뽑는다는 말을 듣게 만들었다.. 학교 안에서 연애 못하면 평생 혼자가 될 거라는 대학 선배들의 말이 현실화된 게 지금의 나다.
오래전 자신들이 피땀 흘릴 때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그 결과물을 따 먹는 인간이라 한 국회의원을 비난하는 운동권 출신 의원들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냥 자신들의 열정과 사명감으로 현장에 있었지만 다른 사명감을 지닌 존재도 있을 수 있는데.. 별거 아닌 나지만 내가 혹시 별거가 되었으면 저 사람들은 나를 비난했겠다. 뭐 했냐고.. 다른 것을 마음에 품은 사람의 존재가 비난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되었을 텐데 또 그나마 그런 뜨거움도 없는 존재도 비난받지 않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으련만 다른 것의 존재가 그리 잘못된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