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 대한 관심과 배려

소소한 일상

by 아이린

마지막으로 밀키와 코코를 입양 보낸 후 나는 동물자유연대 회원을 탈퇴했다. 내 가족이 된 아이들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나를 거기 남아있지 못하게 했다. 단체는 일 년여 아이들을 돌봐 줬고 내 바람대로 해외이긴 하지만 한집으로 입양 보내줬다. 나름 입양을 보내는 일로 끝까지 아이들을 책임지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래도 내가 아이들을 마지막까지 돌보지 못한 죄책감은 그곳에 머물러 있지 못하게 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이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다가 잃어버리고 찾으러 다니다가 길거리의 가여운 생명에 눈을 뜨고 그걸 계기로 동물 단체에 들어갔다. 동물 자유연대는 오래전 동물을 좋아하던 사람들의 모임이 여러 가지 의견차로 갈라질 무렵 창립했다. 나는 그곳의 창립멤버다. 변변한 공간도 없이 대표가 일하는 사무실 한편을 쓰다가 회원이 기증한 집으로 옮기고 애초 목적과 달리 동물구호를 하게 되었다.


동물 구호에 전념해야 한다는 쪽과 시스템을 바꾸는데 더 집중해야 한다는 쪽의 차이가 모임이 갈라진 이유였다. 동물자유연대는 동물이 버려지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데 주력하자는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래서 구호보다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을 위한 사업에 주력했다. 그러나 구호 필요 동물을 외면만 할 수 없었다. 하나둘 모인 아이들의 수가 늘었다. 간사들이 있는 낮에는 아이들도 자기를 봐달라고 짖는 등의 호소가 많았다. 야간에는 자신들의 편이 없음을 아는지 조용했지만 동네에서는 끊임없이 민원을 넣었다. 십시일반으로 회원들이 나눠 보호를 하기도 했지만 무단으로 아이들을 버리고 사라지는 사람까지 있었고 사명감만으로 버티기 힘들었던 간사들이 자주 교체 되던 시기도 있었다.


결국은 여러 사람들의 후원과 회원들의 노력으로 남양주시대가 열렸다. 도울 자유연대는 정말 많이 컸다. 보호시설의 모델을 만들겠다는 노력이 결실을 맺었고 지금도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정말 많은 일을 그 아이들을 위해 했다. 구호활동 시위 캠페인 등등 누군가 고기를 먹으면서 무슨 동물 운동이냐 비아냥대는 말에 고기를 끊었다( 비건은 못된다. 그러나 얼굴 있는 건 안 먹는다) 강아지나 고양이등의 소동물에 대한 관심에서 자연 그리고 환경에 대한 관심까지 가지게 되었다.. 동물권 환경 등의 영역은 지금도 나의 관심 영역이다.


동물 자유연대의 후원을 다시 시작했다. 회원 가입은 안 할 거다. 돈은 없지만 적은 금액으로 그들의 수고에 동참하고자 예전처럼 현장에 가지도 큰돈이 필요한 일에 돈을 내지도 못하지만 소액이라도 보탬이 나의 정체성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20191103_164943.jpg


keyword
이전 10화아버지에 대한 이런 저러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