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모리

살아내는 힘

by 아이린

아주 어릴 적에 죽음이라는 것을 가족의 한 사람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었다. 그 사람의 죽음은 당시 다섯 살 정도의 나이인 내 잠재의식에 남아 오랜 세월 죽음이라는 것이 공포 그 자체이게 만들었다. 내가 죽음을 조금 다르게 바라본 것은 내게 애증의 존재인 조모의 죽음이다. 할머니는 오랜 시간 암 투병을 하면서 육체적 고통을 겪었고 마지막은 식도까지 전이된 암으로 음식을 거의 드시지 못해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계셨었다. 목소리도 내지 못하셔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누워계시면서도 방문이 열리면 찾아온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다. 추측은 할머니가 가장 보고 싶어 하던 손자는 못 올 것을 알았으니 그다음 보고 싶던 존재인 큰 딸 아니었을까? 할머니의 생명의 빛이 꺼진 그날 가족들은 둘러앉아 임종예배를 드렸다. 조용히 눈을 감으신 할머니의 호흡이 사라진 순간 나는 전에 없는 빛을 그 얼굴에서 보았다. 할머니의 얼굴은 빛이 났다. 그전에 아팠던 사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그 순간 나는 반신 반의 하던 천국을 확신할 수 있었고 할머니가 그곳에 가셨음을 알 수 있었다. 오래전 스스로 세상을 버린 그 가족의 죽음의 현장에는 없었던 빛이 할머니의 임종 현장엔 있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단순히 "곧 죽을 테니 슬퍼해라"는 허무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삶의 유한함을 인식하고 현재에 충실하라"는 역설적인 생의 찬가에 가깝다고 말한다. 과거 세네카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같은 스토아 철학자들은 죽음을 '자연스러운 섭리'로 보았다. 죽음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그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내가 다스릴 수 있는 나의 덕성(Virtue)과 행동에 집중하라고 그들은 가르쳤다. 이것은 나의 생각에 맥이 닿아있는 철학이다. 어쩔수 없는 즉 내 힘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일대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는 것이다."내가 존재할 때 죽음은 오지 않았고, 죽음이 왔을 때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에피쿠로스는 죽음 이후의 고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죽음을 직시함으로써 오히려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정심(아타락시아)을 찾아야 한단다. 즉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다"라고 말하며, 죽음 자체는 중립적인 자연 현상이지만, 그것을 '재앙'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고통이 시작된다 말한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Sein-zum-Tode)'라고 정의했다. 어떤 인간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본래적인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다고 한다. 죽음이라는 끝이 있기에 삶이 비로소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흐름은 네가 어쩔 수 없으니, 오늘 네가 통제할 수 있는 그 작은 행동 하나에만 너의 모든 신성을 쏟아부어라." 내가 어쩔 수 없는 문제들에 굉장히 오랜 시간 매여서 휘둘려 왔고 그것으로 인해 고통받았다. 그러나 스토아 철학을 알게 되고 책을 읽어가면서 그리고 성경을 조금 더 깊이 읽어가면서 내가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타인의 평판, 과거의 사건, 육체의 노화, 질병 그리고 죽음 같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문제 대신 나의 판단, 나의 선택, 지금 내가 취하는 태도 같이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은 "어차피 죽을 테니 아무것도 하지 마라"가 아니다."죽음은 네 소관이 아니니 걱정 말고, 네 소관인 '오늘의 정의로운 행동'에만 집중하라"는 단단한 권유다. 어머니는 늘 내게 내일은 네 날이 아니다 오늘이 너의 날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처음 어머니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내일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단순히 비관적인 체념이 아니라 삶의 주권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히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겸손이자 가장 치열한 삶의 태도임을 어머니의 삶을 지켜보며 깨달았다.


"마치 그것이 네 인생의 마지막 행위인 것처럼 모든 일을 행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명상록)

"죽음은 삶이 우리에게 준 가장 멋진 발명품이다. 죽음은 삶을 변화시킨다." — 스티브 잡스 (2005년 스탠퍼드 졸업 축사 중)

메멘토 모리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거울을 통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묻는 가장 강력한 질문이다. 마지막이 있다는 것은 끝이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무엇보다 나에게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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