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리야?
언젠가 목사님이 설교 초반부에 선배 목사님 말씀을 하셨다. 그 선배 목사님은 언제나 "이목사 살아 있나?" 이렇게 물으시고 대화를 시작하신단다. 여기서 살아 있느냐는 말은 숨 쉬고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함은 아니다. 순간순간을 그리스도인으로 인식하고 살고 있느냐의 의미다. 살아있는 이유 움직이고 일상의 모든 활동을 하는 것의 목적을 분명히 이니식하고 살고 있느냐 묻는 것이라고 목사님은 말씀하셨다.
전에 일을 할 때에도 가게에 전화가 올 때 꼭 " 문 열었어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문을 열었으니 전화를 받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사실 과거의 내가 그랬다. 전화를 받는다는 것은 그냥 문을 열었다는 게 아니라 영업을 할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임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살아 있음은 그저 잠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고 밥 먹는 행위만이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목적을 지녀야 한다. 살아서 움직이는 이유를 가질 때에야 진정 살아있는 것이다.. 내가 그저 숨 쉬고 움직이고 밥 먹고 자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그 너머의 무언가를 위해 사는 존재가 될 때 만이 진정으로 살아있다는 의미다.
기독교인이 살아있음의 증거는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심으로 내가 그리스도와 일체가 되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며 사는 것이다. 비 기독교인이라도 자신이 살아서 아니 사는 동안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곳을 향해 느리더라도 발걸음을 디딜 때 비로소 살아 있다 할 수는 것이다.
내가 서있는 곳 내가 갈 곳에의 방향을 정립하지 못하면 삶의 거친 풍랑을 견뎌낼 길이 요원하다. 설사 버티는 데 성공해도 그것은 근근이 살아냄일 뿐이다.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의지가 개입된 행위가 아닌 것은 살아있음의 증거가 아니다. 갈 곳을 정하지 못하면 표류한다. 과연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큰 배를 움직이는 방법은 잘 모른다. 한 가지 아는 것은 좌표에 맞춰 조금씩 움직임을 맞춰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에 운전을 할 때 아니 정확히는 운전을 배울 때 강사의 말이 도로의 중간에 초점을 맞추고 핸들을 조금씩 움직이지 않으면 자동차는 경로를 이탈해 사고를 낸다고 했다.
내가 가야 할 곳에 시선을 두고 조금씩 조금씩 고칠 것을 고쳐가며 움직이자. 아프다고 힘들다고 웅크리며 경로를 이탈하던 삶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매일매일 점검하고 조금씩 정확하게는 1%라도 바꾸는 일에 성공하면 나는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자의 삶을 잘 살아냈다 칭찬받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