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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을 탈출한 새

by 뭉지

편안하지만 억압된 삶보다 불편하지만 자유로운 삶이 훨씬 낫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에게 ‘너 같은 약한 몸으로 가면 큰일 난다’ ‘세상은 진짜 무서운 곳이다’ ‘혼자 가서 어떤 일이 생기면 어떡하냐’등의 걱정이 담긴 말을 잔뜩 들었다.

당연했다. 우리 모두는 새장 속에서 살고 있는 새였기 때문이다. 이 새장밖을 탈출한 새는 아무도 없었고,그저 무시무시한 댓가가 기다린다는 것만 다들 짐작할 뿐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약한 새가 새장밖을 탈출한다는 무모한 짓을 벌이고 있으니 지켜보는 새들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작고 연약한 새를 사랑하는 마음이 클수록 새들은 '죽을 수도 있다'며 그저 더 크고 강한 경고의 말을 할 뿐이었다. 그 말에 겁이 나기도 했지만, 작은 새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자신이 원하는 곳은 더 넓고 자유로운 세상이라는 것을. 새장 너머에 있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두 눈으로 보고, 온몸으로 경험하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이 지구에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편안한 곳에서 의미 없이 사느니 불안하더라도 알록달록하게 살고 싶었던 새는 주변의 만류에도 새장을

결국 탈출했다.



조그만 기내용 캐리어와 백팩에 짐을 꾹꾹 눌러 담은 채로 첫 여행지인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며 주위 사람들이 경고했던 말도 머리에 단단히 새겨 넣었다.

‘이 세상엔 댓가 없는 호의는 없고, 나는 범죄 타겟팅이 되기 좋은 몸 약한 여자야!’

얇은 종잇장 같은 몸을 지키기 위해 지금부터 나를 둘러싼 모든 걸 의심하고 보겠다고 다짐하며 길을 나섰다.

‘편견’이라는 색안경을 낀 채 길을 나선 새에게 세상은 웃음을 지으며 무언가를 준비해두고 있었다.


시작은 공항에서 나갈 버스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ATM기기에서 돈을 뽑고 있을 때부터였다.

기계 조작이 미숙해 이것저것 눌러보고 있던 나에게 어떤 남자가 오더니 “한국인이세요?”라고 물었다.

당황하며 맞다고 하니 “그 atm은 수수료가 많이 드니 돈 뽑지 마시고, 제가 더 싸게 뽑는 기계 있는 곳으로

데려다 드릴게요” 하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따라오라는 말을 남긴 채 쿨하게 팔자걸음으로 터벅터벅 사라져 가는 뒷모습이 꽤나 여행을 많이 다녀 본 사람 같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 왜 호의를 베풀지? 이거 이상한데’하며 의심이 들었다. 이대로 뒤돌아서 도망칠까 하다가 나는 한 푼이라도 아껴야 되는 여행자인 데다가 공항 특성상 보안요원과 사람도 많은데 설마 큰 일이야 일어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사이 남자는 계속해서 나와 멀어지고 있었다. 나보다 훨씬 앞장서서 걷고 있으니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그 길로 도망칠 거리도 확보도 됐었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따라가 보기로 했다.


잔뜩 의심이 담긴 눈빛으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갔는데 남자가 말한 대로 특정 은행의 Atm기기가 나왔다. 정말로 수수료가 저렴한지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죄다 그곳에서 돈을 뽑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이 뽑는 걸 지켜보라며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기기에서 돈을 뽑는 모든 과정을 쿨하게 오픈했다. 나에게 비밀번호를 이렇게 보여줘도 괜찮은 걸까 되려 걱정이 되면서도 그를 따라 수수료 없이 돈을 무사히 뽑았다.


그분은 뒤 이어서 공항버스를 예매하는 법, 공항버스를 타는 위치, 교통카드를 발급받는 법 등을 차례차례 알려주었다. 머리로는 남자를 계속 의심하면서도 꼭 필요했던 정보들이라 도둑고양이처럼 얍쌉하게 배워 나갔다.

신실한 기독교인이라는 남자는 종교 교리에 맞게 길 잃은 어린양을 하나 더 구원해 주었다. 캐리어를 끈 채로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는 모습이 누가 봐도 나처럼 이곳에 혼자 여행을 온 어린양이었다. 남자는 놀랍지도 않다는 듯이 그 어린양에게 ‘한국인이세요?’하며 하며 똑같이 말을 걸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구세주를 만난 듯이 어린양은 우리에게 다가왔고, 예수님이 된 남자는 양에게 필요한 여행 정보를 익숙한듯이 척척 떠먹여 주었다.


그리고 이보다 더 놀라운 사건들이 시내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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