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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를 이렇게 보내는 게 내 인생의 정답일까?

by 뭉지

스물여섯 살,

나쁘지 않은 성적과 꽤 괜찮은 스펙을 가지고 인서울 대학교를 졸업했다. 약해빠진 몸으로 대학생활을 열심히 한 탓에 주변 친구들보다 이력서에 쓸 내용도 많았다. 아빠는 졸업식 때 한시름 놓은 표정으로 ‘이제 대학 졸업장도 나왔으니 취업할 때 문제없겠다’며 기뻐했다. 한 직장에 30년간 다닌 아빠는 자신처럼 자식 또한 어서 취업해 직장생활을 안정적이고 꾸준히 하길 바라는 눈치였다.


아빠의 바람대로 졸업 한 뒤에는 집 앞에 있는 영어학원에서 조교로 일하며 취업 준비를 했다. 채용사이트를 들락날락하며 직무를 정하고, 이력서에 쓸 내용도 하나 둘 정리했다. 그런데 준비를 하면 할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학생 때부터 종종 날 찾아왔다. 이 마음은 기가 막히게 ‘시험기간’처럼 경쟁에 지치는 순간들에만 날 찾아와서 ‘그냥 다 때려치우고 도망가자’라고 속삭였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무시하다가도 뫼비우스의 띠처럼 경쟁이 자꾸만 반복되니 진짜로 다 때려치우고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무시가 안 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부터 시작된 성적 경쟁이 이십 대 중반까지 취업경쟁으로까지 이어지자 이 작은 나라에서 평생 경쟁만 하다 죽으려고 태어난 건가 싶은 의문도 슬글슬금 들었다.‘내 인생은 왜 이렇게 경쟁이 끝도 없지? 입시경쟁, 학점경쟁, 스펙경쟁 이젠 취업 경쟁까지.. 이 약한 몸으로 평생 경쟁만 하다 죽으려고 태어났나?’

다른 친구들과 선배들은 이 경쟁이 견딜만하다는 듯이 공부도 척척하고 취업도 턱턱 하는 데 견디지 못하는 내가 나약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20대의 절반을 경쟁만 하며 보내는 스스로가 가엽게 느껴졌다. 20대라는 예쁜 나이를 이렇게 치열하게 보내며 사는 게 과연 내 인생의 정답일까?


취업 준비를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나씩 해나갔다.


내가 진짜 취업을 원하는 게 맞나?

솔직하게 말하면 아니었다. 이미 경쟁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지만, 단지 주변 선배들이 졸업 후에 죄다 취업을 하고, 아빠도 취업을 바라니까 준비를 한 것뿐이었다.

사실 나는 진짜로 원하는 직업적인 꿈도 없고, 직무도 그다지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경쟁에 지쳐 의욕이 다 떨어진 상태라 자기소개서도 열정적으로 써지지 않았고, 운 좋게 면접까지 간다 한들 붙을 자신도, 붙어봤자 회사에 성실히 다닐 의지도 없었다. 오히려 붙었을 때 주 5일을 하루에 8시간씩 일해야 된다는 현실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럼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뭐지?

명확했다.

미친 소리 같지만 세계 여행이었다. 이 꿈은 내가 7년 동안 간직해 오던 것이기도 했다.


세계 여행을 왜 가고 싶은데?

어릴 때에는 막연한 동경이었다가 지금은 한국과 전혀 다른 문화에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지켜보고 싶었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한 힌트를 얻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은 ‘경쟁을 통해 강자만 살아남는다고 말하는듯한 세상’이었다. 나는 이 세상이 좁고 답답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입시, 대학, 취업 등 인생의 숙제를 잘만 해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숙제가 왜인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사람은 다 다른 개성과 특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데 걸어가는 길과 나이는 다 비슷한 게 이질감이 들었다.

내가 태어난 게 단지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기 위해서일까?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단지 돈과 안정을 추구하면서 누군가와 결혼하고 애를 키우기 위해서일까?

만약, 그런 삶을 산다 한들 내가 내 인생을 진심으로 만족하고 행복해하며 살 수 있을까?

뭔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다는 막막함이 자꾸만 들었다. 주변에는 정직한 길만 걸어가는 사람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정해진 길을 불만 없이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사회부적응자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 인생의 정답은 이 길이 아닐 수도 있잖아?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면 할수록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내가 보였다.

머릿속에서 두 명의 내가 양쪽의 입장에서 끝나지 않을 토론을 계속해서 벌이고 있었다.


‘그 몸으로 세계여행? 건장한 남자도 혼자 떠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에 너를 던진다는 건 목숨을 건 도박이나 다름없지 않아?’

‘맞아 도박이나 다름없어. 근데 이대로 남들이 가는 길을 똑같이 걸으면 내 답답함은 해소되지 않을 게 뻔한데?’

‘너 세계 여행을 떠난다고 아빠한테 말하면 아빠가 엄청 충격받을 거 뻔히 보이지 않아? 네가 우리 집의 평화 다 깨는 거야. 아빠가 대학생활 내내 학비도 지원해 주고, 용돈도 줬는데 그럴 자신 있어? ’

‘아니 없어. 그렇지만 세계여행이라는 꿈을 포기하자니 이미 7년간 기다렸던 꿈이고, 지금을 놓치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두려워져서 영영 못 떠날 거 같아’

‘진짜? 그럼 이거 하나만 물어보자. 세계여행을 다녀오면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다 쓰고, 공백기 생길 텐데 그거 감당할 자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고민만 하다 보니 3개월이 훌쩍 지났다.


결전의 날은 예상치 못하게 다가왔다.

일하던 영어학원에서의 일이 유난히 힘든 날이었다. 해야 하는 일이 계속해서 생기는데 학생들은 자꾸만 말썽 부리며 속을 썩였다. 학생들을 계속해서 조용히 시키면서도 일을 하나씩 처리하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순식간에 밤이 됐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학생들은 이미 모두 집에 간 상태였고, 나는 빈 강의실에 앉아 몸과 마음이 지친 채로 앉아있었다. 넋이 나간채 앉아있다 보니 문득 취업한다면 내 미래가 딱 이럴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와 직장 사람들에게 적응하고, 주어진 업무를 바쁘게 처리하다 보면 오늘처럼 바쁘게 지내는 나날들이 반복될 거 같았다. 머릿속에는 직장인이 된 내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지하철을 타며 출근하는 모습,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모습, 일이 바빠 야근하는 모습 등 다양한 모습이었다. 이상하게 온통 회색으로 가득한 장면이었다. 어릴 때부터 개성 없는 회색인간이 되는 걸 가장 두려워했던 나는 그 장면이 내게 희망이 아닌 절망의 장면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병실 침대에 누워 다시 걸을 수만 있다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자던 스스로와의 다짐은 어디로 갔을까?

마음 깊이 원하는 알록달록한 꿈이 있는데 두려움 때문에 도전하지 못하는 게 그날만큼은 바보 같다고 느껴졌다. 이렇게 두려움 가득한 채로 회색빛 인생을 계속해서 살 바에야 그냥 여행지에서 죽더라도 꿈이라도 이뤄보고 죽는 게 차라리 더 행복할 거 같았다.

지금처럼 사는 건 진짜 아닌 거 같다는 생각에 더 이상 꿈을 꿈인 채로 남겨두지 말고 떠나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확신에 확신을 더하고자 집에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바로 한 달 뒤에 출발하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첫 목적지는 튀르키예였고, 두 번째 목적지는 이집트였다. 가진 돈을 최대한 아껴서 쓰기 위해 유럽처럼 물가가 비싼 선진국은 아예 가지 않을 계획이었다.

돌아오는 티켓도 일부러 끊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까지 안 올 작정이었다.

더 이상 인생이 주는 숙제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내가 가진 청춘을 만끽하며 알록달록하게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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