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의 화음은 예상보다 훨씬 제멋대로였고, 음정과 박자도 들쑥날쑥했다.
인규는 땀을 뻘뻘 흘리며 속도를 맞추려 애썼지만, 두 사람은 오히려 더 빨라지거나 느려지면서 인규의 박자를 어떻게든 피해 갔다. 도망가는 사람과 쫓아가는 사람이 있는듯한 세 명의 모습이 꼭 한 편의 개그 콩트를 보는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풋하고 웃어버렸다.
그리고 나만 웃기는지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저 따뜻한 시선으로 보라와 형래를 지켜보고 있었다. 잊고 있었다. 이번 버스킹의 취지는 자전거에서 넘어질 용기를 얻는 것이라는 걸. 나는 또 그걸 새카맣게 잊고 냉철한 심사위원의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디 얼마나 잘 부르는지 보자’라는 눈으로 보니 당연히 웃겨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는 우리가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 모인 자리가 아니었다. 넘어져도 괜찮다는 걸,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이 버스킹 모임이 생겨난 취지에 맞게 사람들은 보라와 형래가 자전거에서 우스꽝스럽게 넘어져도 사랑 어린 시선으로 지켜주고 있었다. 그 따뜻함은 폭신한 구름이 되어 두 사람의 실수를 감싸 안았다. 그 구름 위에선 어떤 상처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 보라와 형래를 보니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들이 더 이상 내 눈에 웃겨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평가라는 색안경 빼고 바라보니 그들이 얼마나 완벽하게 부르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든 용기를 내서 노래를 무사히 마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다음은 내 순서였다. 오늘을 위해 일부러 얼굴이 다 가려지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왔다. 달팽이처럼 껍질 안으로 들어가, 나의 떨리는 얼굴과 목소리를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는 마음이었다. 사람들을 정면으로 보며 노래를 부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조금 전 보라와 형래를 바라보던 그들의 시선을 떠올리자, 마음 한쪽이 살짝 풀어졌다. 내가 너무 과하게 걱정하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인규는 천천히 기타 줄을 튕기기 시작했다. 공기 속으로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첫 음에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나는 염소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언제였던 건지 기억나지 않아
자꾸 내 머리가 너로 어지럽던 시절
한두 번씩 떠오르던 생각
자꾸 늘어가서 조금 당황스러운 이 마음..”
고개를 땅에 묻고 노래를 부르다가, 문득 사람들의 표정이 궁금해졌다. 저들은 나를 어떻게 지켜보고 있을까?
여전히 사랑을 머금은 표정으로 보고 있을까? 아님.. 서툴고 어색한 모습을 보며 아까의 나처럼 웃고 있을까.. 마음속에서는 두 가지 상상이 동시에 부딪혔다. 하나는 웃어주는 얼굴, 또 하나는 비웃는 얼굴. 두려움이 스멀스멀 목을 타고 올라왔다. 아니야. 분명 아까처럼 따뜻하게 지켜보고 있을 거야. 환상에 속지 말자. 두려우면 직접 확인해 보자.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 어린 표정으로 나를 감싸주고 있었다. 왜 그런 걱정을 했나 싶을 정도로 내 앞에도 폭신한 구름들이 잔뜩 깔려있었다.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목소리엔 조금 더 힘이 들어가고, 떨리던 심장도 조금씩 잔잔해졌다. 구름처럼 부드러운 시선이 나를 감싸 안아 주고 있었기에, 나는 마침내 숨을 고르고 노래에 마음을 온전히 담을 수 있었다. 음정과 박자가 완벽하지 않아도,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여기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 앞에서 노래를 이어나갔다. 옆을 보니 인규도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맞춰주고 있었다. 마지막 소절을 부르고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나를 향해 박수를 쳐주었다. 끝까지 부른 것에 대한 격려의 박수였다.
우리는 2주 뒤에 있을 버스킹을 위해 삼일에 한 번씩은 꼭 리허설을 했다. 무인도로 놀러 갔을 때도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걸 ‘오히려 좋아!’ 하며 노래만 불러댔다. 그리고 놀랍게도 노래를 반복할수록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부끄러움이 점점 사라져 갔다. 남들 앞에서 부르는 상상만 했을 때는 그 두려움이 거대한 벽처럼 그게 느껴졌는데 노래를 거듭할수록 벽의 높이는 차츰 낮아졌다. 보라와 형래도 어느 순간부터는 누르기만 하면 노래가 나오는 인형처럼 자동적으로 부르고 있었다. 다람쥐와 인규는 그 사이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내까지 나가 음향 장비도 구해오고, 같이 버스킹을 할 인원을 더 모집해 오기도 했다. 공연할 자리를 물색해 온 그들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달랑 기타 하나로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어느새 제법 버스킹다운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 모험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렇게 다 준비해서 불렀는데 경찰이 와서 하지 말라고 하면 어떡해?”
인규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도 우리 공연의 일부가 될 거야. 부르다가 경찰 오면 3초 만에 짐 다 들고 도망가는 거지. 이 공연이 5분 만에 끝날지, 아니면 1시간이 될지는 아무도 몰라. 그냥 운에 맡겨야 해. 그것도 꽤 낭만 있지 않아?”
이미 인규의 머릿속에는 경찰이 들이닥치는 상황까지 모든 시나리오가 그려져 있었다. 시은은 옆에서 좋다며 꺄르륵 웃고 있었다. 역시나 브레이크라고는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결전의 날이 왔다. 우리는 최종 리허설을 마친 후, 장비를 하나씩 챙겨서 길을 나섰다. 덩치 큰 남자들은 나무 의자와 무거운 스피커를 어깨에 메고 걸었고, 여자들은 케이블과 마이크 등 자잘한 짐을 나눠 들었다. 보라와 형래는 취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맨 정신에 노래를 못 부리겠다며 이미 얼큰하게 취기가 오른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긴장감이 목까지 차올라, 갈증을 가라앉히려 급하게 수박주스를 사 마시며 종종걸음으로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바다로 이어지는 길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장비들을 세팅했다. 아무리 가난해도 큰 스피커 하나는 꼭 들고 다니며 하루 종일 음악을 듣는 이집션들이 궁금증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다가 하나둘 다가왔다. 눈치 빠른 인규가 재빨리 앞으로 나서 그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30분 있다가 버스킹 할 거야. 관심 있으면 보러 와! 친구들도 데려오면 더 좋고. 꼭 와야 해!”
그 말에 이집션들은 좋다며 엄지 척을 하거나 “오케이! 오케이!”를 연발하며 어깨를 들썩였다. 역시나 흥이 우리보다 열 배는 많고, 노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다웠다. 점점 무대가 세팅되어 갈수록 사람들은 하나둘 늘어났다. 이미 이곳에 여행 온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퍼졌는지, 길을 걷다 마주친 낯익은 얼굴들도 꽤 많이 앉아 있었다. 관객들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고 심장이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 이건 진짜 미친 짓이야.’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설렘과 공포감이 뒤섞여 가슴 한가운데서 부딪히고 있었다.
준비했던 대로 인규가 첫 노래를 시작했다. 그는 마이크를 잡는 손끝 하나 흔들림 없이, 당당하게 노래를 이어나갔다. 그의 목소리는 순식간의 공기의 흐름을 유명가수 즉흥 버스킹 현장처럼 바꿔놓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세이렌의 목소리를 들은 듯이 자신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고, 그를 지켜보았다. 노래 한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관객은 배로 늘어났다. 그 모습을 보니 떨리는 마음이 도저히 진정되지가 않아, 나는 팔찌를 팔러 온 이집션 소녀의 손을 붙잡고 빙글빙글 춤을 추었다. 춤이라도 추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그대로 도망가버릴 것만 같았다. 초등학생정도로 보인 소녀는 나를 조금은 신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함께 빙글빙글 돌아주었다.
다음 차례는 보라와 형래였다. 언제 취했냐는 듯이 술기운이 사라진 보라는 굳은 표정으로 마이크 앞에 섰다. 나처럼 심장이 귀 옆에서 쿵쿵거릴 만큼 긴장한 얼굴이었다. 보라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서툰 영어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안녕. 내 이름은 보라예요. 제가 여기 있는 이유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어서예요. 저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요. 그래도 끝까지 부를 거예요. 왜냐하면 여기는 다합이잖아요? 다합은 뭐든 괜찮은 곳이에요. 제가 다합을 사랑하듯이 다합은 우리를 사랑해서 다 괜찮아요.”
사람들은 보라의 소개에 박수를 치며 응원을 보냈다. 인규는 보라와 형래를 보며 천천히 기타 줄을 튕겼고, 두 사람은 마이크에 대고 자신들의 불완전함을 솔직하게 내보였다. 최종 리허설 때만 해도 제법 호흡이 잘 맞아 들어갔던 둘은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다시 엉망이 되어버렸다. 긴장감이 덮치자 박자와 음정은 여기저기 흩어졌고, 둘의 호흡도 순식간에 어긋났다. 인규는 또 그들을 따라가려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나는 이제 다른 사람들이 보라와 형래를 어떻게 지켜보는지 따위는 둘러보지 않았다. 그저 내 눈에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는 그 용기가 보였고, 그 순수한 에너지가 나에게 엄청난 힘이 되고 있다는 것만 느껴졌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발표공포증이 있던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마이크로 걸어갔다. 나를 바라보는 수십 개의 눈동자가 느껴졌다. 여전히 떨리지만, 이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보라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와 그들의 불완전한 노래가 주는 순수한 용기가 내 안에 스며든 덕분이었다. 마이크를 잡고 나도 내가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Hi! my name is eunji.
now I'm very nervous. but, I will enjoy this time.
So you guys, please enjoy this time too.
thank you!”
어둠에 가려져 사람들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신할 수는 있었다. 여전히 구름 같은 폭신한 눈빛을 가지고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바다냄새가 잔뜩 나는 구름 위에서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리고 인규의 기타 소리에 맞추어서 페달을 밟았다. 이 순간만큼은 넘어지는 게 두렵지 않았다. 설령 넘어지더라도, 이 순간만큼은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삶은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온몸으로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