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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우당탕탕 버스킹 공연하기(1)

by 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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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밥 먹듯이 놀러 가는 집이 있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친구가 차린 게스트 하우스였다. 한참 전공 공부를 할 시기에 대학을 자퇴하고, 이곳에 게스트하우스를 차릴 정도로 대담하고 거침없는 친구이기도 했다. 시은이네 집에 가면 항상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 집의 스태프로 온 인규가 온 날부터 시작된 노래였다. 인규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버스킹을 하는 남자였다. 그는 자신의 노래로 세상과 연결되고 있었고, 이곳에서도 그 임무를 다하고 있었다. 그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늘 거실에서는 조그만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다. 인규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누군가는 젬베를 북처럼 두들겼다. 그리고 누군가는 키보드를 들고 건반을 쳐댔다. 그 집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주로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노래였다.


“너에게 난 해 질 녘 노을처럼

한 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후회 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인규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그 주위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옆에 맥주를 한 캔씩 두고 잔뜩 취기 어린 표정으로 인규의 노래를 따라 불렀고, 나도 그 틈에 껴서 흥얼흥얼 조그맣게 따라 불렀다. 음악과 술, 그리고 거실의 노란 조명은 우리를 하나로 연결시켜 주었다. 인규는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와도 한치의 망설임과 떨림도 없이 노래를 불렀다. 자신을 보는 눈동자가 많아질수록 인규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더 크게, 더 자신감 있게 노래를 불렀다. 꼭 무대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시선 속을 유영하는 모습은 멋있음을 넘어 존경스러운 감정이 들 정도였다. 나는 어느새 소녀팬이 되어 인규의 노래를 듣기 위해 밤마다 그 거실을 찾아갔다.


인규는 곧 시은이와 함께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이 바다 마을에서 최초로 버스킹 공연을 열기로! 어느 날처럼 그 집에 놀러 갔을 때, 시은이 폴짝 뛰어오며 장난기 넘치는 눈으로 말했다.

“언니! 우리랑 같이 노래 부르자. 우리 버스킹 공연하기로 했어!”

“버스킹? 어디서?”

“길 한복판에서! 스피커도 엄청 큰 거 연결해서 할 거야.”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자고? 당황스러웠다. 나는 남들 앞에 서는 게 세상에서 제일 부끄러워 대학시절에도 죽기 살기로 발표를 피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나는 노래를 잘 부르는 편도 아니었다. 긴장만 해도 목소리가 떨리고 삑사리는 기본이었다. 노래 실력을 듣지도 않은 채 다짜고짜 같이 부르자는 말에 당연하게 거절을 했다.

“아.. 나는 노래를 못 불러서 자신이 없어. 미안”

내 눈은 떨릴 대로 떨리고 있었다.

“그럼 넌 더더욱 노래를 불러야 해.”

우리의 얘기를 듣던 인규가 말했다.

“이 버스킹의 취지가 그거거든. 실패할까 봐 두려운 마음에 맞서는 거.”

“오빠는 노래를 잘하잖아. 나는 목소리가 얇아서 삑사리도 잘 나고, 사람들이 지켜보면 얼굴이 빨개져”


그 말에 인규는 호탕하게 웃었다.

“내가 버스킹 하면서 세계일주하니까 잘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나 처음 노래 불렀을 때 어땠는 줄 알아?”

실용음악과를 나올 정도로 음악과 늘 가까이 지냈던 인규는 처음으로 버스킹을 했을 때 온몸이 얼어붙었다고 했다. 매일같이 치던 기타는 이상하게도 손이 움직이지 않았고, 목소리도 인어공주가 된 것처럼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쟤 지금 뭐 하는 거야?’하는 눈빛으로 힐끔 거렸고, 인규는 그 상태로 한 시간 동안이나 가만히 서 있었다며 지금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근데 결국엔 그냥 했어. 어떻게든 목을 열고, 아무 소리나 냈어. 엉망이었어. 음은 계속 흔들리고, 가사는 몇 번이나 틀렸어. 근데 그때 알았어. 두려운 감정이 사라지는 건 기다린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그냥 하는 거야. 벌벌 떨면서 두려운 채로.”

아무리 많은 사람이 쳐다봐도 떨지 않는 인규가 그런 얘기를 하니 슬쩍 호기심이 생겼다.

어쩌면 이건 내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좋은 기회일지도 몰랐다. 인규는 자전거를 무서워서 타지 못하던 나에게 ‘넘어질 용기’를 알려주고 있었다. 이대로 자전거를 끝내 타지 않을지, 아니면 그의 지지 아래 한 번 올라탈지는 오롯이 내 선택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넘어질 용기는 지금이 아니면 갖기 어려울 거라는 걸. 인규처럼 넘어지는 걸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흔하지 않다. 넘어질 용기를 알려주는 대신 넘어지면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운지, 그래서 왜 넘어지면 안 되는지만 알려수는 사람만이 수두룩한 세상이다.


노래를 안 부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의 대부분을 차지하다가, 이제는 ‘불러봐도 되겠다’와 ‘부르지 않겠다’는 마음이 50:50으로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한 번쯤 해봐도 나쁘지는 않겠으면서도 아직은 용기가 부족했다. 인규의 말에 마음이 살짝 기울다가도, 섣불리 결정을 내리는 게 두려웠다. 그때 시은이 내 머릿속 계산기를 단번에 박살 내버리는 말을 했다.

“언니! 보라언니도 같이 부르기로 했어. 보라언니도 자기 노랫소리 남들이 듣는 거 진짜 싫어하는 사람인데.. 대박이지?”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보라언니를 보니 언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보라는 노래방에서조차 노래를 부르지 않는 사람이었다. 음치에다가 박치인 자신의 노래실력을 남들에게 들키기 싫어 늘 듣는 게 좋다고 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그런 언니가 용기를 냈다는 사실에 가슴이 이상하게 콩 하고 울렸다. 나는 남들 앞에서 발표는 싫어도 친구들끼리 노래방에 가면 곧잘 노래를 부르는 편이었다. 언니는 그런 나보다 훨씬 더 결심을 내기 힘들었을 텐데 그럼에도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꽤 큰 울림을 주었다.


“그럼 나도 한 번 해볼래..!”

그렇게 나는 생전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첫 연습날이 다가왔다. 우리는 미리 생각해 온 노래를 각자의 앞에서 부르기로 했다. 노래를 부르기로 결심은 했지만, 여전히 수줍음이 많은 나를 위해 인규가 같이 듀엣을 불러주기로 했다. 첫 순서로 인규가 노래를 불렀다. 역시나 잘했다. 두 번째 타자는 보라언니였다. 옆에는 어떤 남자가 함께 있었다. 자신처럼 노래엔 잼병이라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걸 꺼리는 형래였다. 그들이 선정한 노래는 영화 라라랜드의 주제곡 ‘city of star’였는데, 시작한지 겨우 일분만에 나는 웃음이 터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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