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집트에서 쉐어하우스 오픈

by 뭉지

손을 바들거리면서 달러를 건넸다. 남자는 웃으면서 돈을 받았다. 천천히 돈을 센다. 액수가 맞는지 몇 번이고 확인한 후, 나에게 말했다. “좋아. 이제부터는 여기서 지내도 돼.” 미친 짓을 저질렀다. 이 바다마을에서 집을 계약해 버렸다.


원래대로라면 계획했던 돈이 다 떨어져서 다합을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그건 온몸이 거부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이곳에서의 내가 마음에 들었다. 쌩얼로 다니는 것에 부끄러운 감정이 들지 않는 것, 눈치 따위는 보지 않는 이집션들을 따라 자연스레 능청스러워지는 것, 빈티지샵에서 건진 오천 원짜리 옷을 입고 다녀도 초라라지 않은 것. 누군가를 외적인 요소로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눈이 생긴 것. 그 모든 게 좋았다. 햇볕에 잔뜩 그을린 살갗만큼 삶의 만족도는 진해져만 갔고, 마음속 불순물들은 하루하루 씻겨 내려가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로망이 하나 있었다. 바로 영화 <백만 엔 걸 스즈코>의 스즈코처럼 살아보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곳저곳을 떠도며 즉흥적으로 자신이 마음에 드는 여행지에서 돈을 벌며 살아간다. 좁고 작은 방에서 잔뜩 밀린 과제를 하다가 노트북으로 본 스즈코의 세상은 자유롭고 또 넓어 보였다. ‘나도 한 번쯤은 스즈코가 되어 살아가고 싶다’라고 나지막이 다짐했던 기억이 슬그머니 떠올랐다.

운이 좋게도 이 시기에 나는 인규에게 자전거에서 넘어질 용기를 배웠다. 머릿속으로 당연하게 여겼던 최악의 상황은 웬만해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그 밤의 버스킹을 통해 알게 됐다. 걱정했던 음이탈은 한 번도 나지 않았으며, 경찰도 오지 않았다. 모두가 마음껏 노래를 불렀던 그 밤, 등 뒤로 쏟아지는 달빛과 짭짤한 밤공기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진 자신을 느꼈다. 그날의 가장 가까운 관객은 나였다. 그날의 배움을 머릿속에 남겨두지 않고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돈이 없지만, 떠나지 않을 방법을 생각했다. 계산기를 두들겨보니 가장 큰 지출은 숙박비였다. 어떻게든 이 부분만 줄일 수 있다면, 이곳에 머물 희망이 있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단골 카페에 찾아서 일을 시켜달라고 해볼까? 아님 한식을 만들어서 팔아볼까? 나쁘지 않았지만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았다. 그럼. 아늑한 집 하나를 구해, 소규모 쉐어하우스를 운영하면 어떨까? 그곳에서 나처럼 돈을 아껴야 하는 여행자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 거지. 그 순간 심장이 쿵쾅쿵쾅 하며 뛰기 시작했고, 머리엔 이거다! 하는 스파크가 튀었다.

그날부터 이집트에서 맨 땅에 헤딩이 시작됐다. 좁은 골목과 햇볕이 내리쬐는 길가를 헤매며 집을 찾기 시작했다. 부서질 듯 낡은 문, 휘어진 철제 난간, 난해한 이집트식 문양이 새겨진 집까지.. 열흘 동안 스무 곳이 넘게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전화벨이 울리면 잘 준비를 하다 가도 뛰쳐나갔다. 여행자들은 그런 나를 보며 “나였으면 그냥 떠났어”하며 혀를 내둘렀다.


마침내 운명처럼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발견했다. 방 두 개에 내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인테리어가 갖춰진 공간이었다. 한 방에는 큰 침대와 책상이 있어 내 방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이었고, 다른 방에는 싱글 침대 두 개와 옷장이 있어 게스트용으로 쓰기에 딱이었다. 방에 있는 아치형 창문으로는 초록으로 우거진 나무와 분홍 꽃나무가 보였고, 거실에는 모두가 밤늦게 누워서 수다를 떨 수 있는 길고 넓은 소파가 놓여 있었다. 집을 둘러보는 내내, 이곳에서 누군가와 함께 웃고, 요리를 하고, 저 소파에 기대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이 자동으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마치 이 집이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한 달 월세는 600달러(약 80만 원). 살면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망하더라도 꼭 해보고 싶어요. 딱 한 달만 해볼게요. 돈은 한국에 돌아가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꼭 갚을게요. 지금 여기를 떠나야 한다는 게 죽기보다 싫어요 “ 엄마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정적이 괜히 무겁게 느껴졌다. 엄마는 정적 끝에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네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또 처음이네. 한 달만 해봐.” 여행까지 가서 엄마에게 손을 벌리는 게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선택지를 고를 마음이 없었다. 그렇게 엄마에게 세상에서 가장 값진 100만 원을 빌렸다. 아빠는 여행 가서 왜 이상한 짓을 하느냐며 당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소리쳤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은 내게 전혀 들리지 않았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지금부터라도 나는 내 생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되어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100만 원으로 맨땅에 헤딩을 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 설령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어 파리만 날린다 해도, 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돈은 언제든 다시 벌 수 있지만, 지나간 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곳에서 하는 경험이 100만 원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한다는 걸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매우 싼 값으로 수업료를 치르고 있었다.


딱 한 달만 더 이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드림하우스’를 오픈했다.

keyword
이전 26화이집트에서 우당탕탕 버스킹 공연하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