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합은 마을이 아주 좁다. 작은 마을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가 50개가 넘는데다가, 도보 15분이면 모두 갈 수 있다. 그 덕분에 특이한 문화도 형성돼 있다. 바로 다른 숙소를 친구 집 놀러 가듯이 드나드는 문화다. 친해진 사람의 손에 이끌려 쭈뼛쭈뼛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면, 어느 집이든 정겹게 맞아준다. 그곳에서 누군가 꽁꽁 숨겨둔 한식 재료로 함께 밥을 만들어 먹고, 수학여행을 온 중학생들처럼 왁자지껄 수다를 떨기도 한다. 그 덕에 다합은 소문이 특히 빠른 곳이기도 하다. 우리끼리만 나눴다고 생각한 이야기가 어느새 모두가 아는 이야기가 되는 건 부지기수였다.
허름한 구멍가게에서 좋아하는 200원짜리 이집트 과자를 사 들고 터벅터벅 숙소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몇 번 마주쳐 눈에 익은 여행자 친구가 앞에서 걸어오더니 말을 걸었다.
“너 600달러에 집 계약했다며?”
“응?? 무슨 소리야??” (돈 문제는 예민했기에 계약 금액은 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었다.)
“소문 다 났던데? 다른 사람들도 이미 다 알고 있어.”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들었는지 물어볼 틈도 없이 그는 내가 쉐어하우스를 하려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한 달에 600달러는 이곳 시세에 비해 매우 비싸다는 것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많은 집을 봐도 이 집만 한 곳이 없었다), 이 근방에서 하우스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최소 몇 년씩 살아온 사람들이라는 것. 여행 온 지 한 달밖에 안 된 내가 도전하는 건 너무 무모하다는 것. 그렇게 무리하게 머물 필요가 있느냐는 것. 자신도 하우스 운영을 해보려 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는 것. 손님은 어떻게 모을 계획이냐는 것, 집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결하려는 것 등질문 폭격이 이어졌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가 하나하나 문제점을 지적할 때마다 반박할 수 없어 더 민망했다. 그저 아무 대책이 없어 우물쭈물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걱정되는 마음에 나에게 하나하나 일러주고, 질문하며 현실을 직시하게 했다.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그의 말을 곱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가장 민망했던 건 내가 하우스를 운영하려는 계획과 계약한 집의 금액을 대부분의 여행자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돈 문제는 가족도 모르게 하라는 데 이름도 모르는 사람까지 다 알고 있다니..
하지만 소문이 빠른 것에는 좋은 점도 있었다. 그 소문 덕분에 우리 집에 첫 손님이 찾아왔다.
검정색 꽃모자를 쓰고 다니는, 앳된 소년미가 가득한 ‘웅이’였다. 그는 언제나 카메라 한 대를 목에 달랑 매고 다니며, 사람들의 소중한 순간을 조용히 담아냈다. 밤마다 메신저로 날아오는 사진에는 그만이 가진 따뜻한 색감과 시선이 항상 담겨있었다. 웅이는 어느 날 내게 조심스레 다가와 언제부터 묵을 수 있는지, 가격은 어떤지 등을 물어보았다. 일반 숙소랑 비슷한 가격을 부를까 잠시 고민했지만, 한 명이라도 들어와 줬으면 좋겠는 마음에 훨씬 싼 값을 불렀다. 웅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마침 자신이 예약해 둔 숙소 날짜가 거의 다 돼 간다며 우리 집에서 머물겠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곳을 떠나기 싫어서 매일 집을 구하러 다니는 모습을 알고 있었고, 그런 내 꿈을 응원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숙소를 계약한 첫날부터 게스트룸의 왼쪽 침대는 항상 웅이의 고정자리였다. 오른쪽의 자리는 번번이 바뀌었다. 어느 날은 웅이가 데려와준 친구들이 묵기도 했으며, 어느 날은 장기 여행자가 와서 묵기도 했다. 그리고 텅 빈 날도 있었다. 어떤 손님이 오든 우리는 항상 알람 없이 자고 싶은 만큼 푹 자고,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나 밥을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걸어 나가 바다 수영으로 온몸의 졸음을 깨웠다. 가끔 전기나 물이 끊기는 날도 있었지 안 상관없었다. 주인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어 ‘워터 스탑!’ ‘일렉트로닉 스탑!’이라고 외치면 공구 가방을 가지고 등장해 뚝딱뚝딱 고쳐주셨다.
밤에는 늘 거실 소파에 누워 이야기를 나눴다. 머리 위로 번지는 조명의 노란불빛은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처럼 항상 속내를 꺼내놓게 했다. 그즈음 나는 웅이가 20살부터 5년간 근무했던 삼성전자를 퇴사하고 세계여행을 떠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