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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삐 Jun 19. 2021

꿀삐의 난임분투기⑪

부부의 타협

피검 후 우리 부부 삼일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식사는 '쿠팡이츠'를 통해 알아서 해결했다.

여건이 된다면 한 달 정도 말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생리를 시작하는 바람에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극적으로 타협했다. 동결 이식을 한 번만 더해보는 걸로..

만약 이번에도 실패하면, 나는 복직을 하고, 임신은 1년 뒤로 미루기로 했다.  

   

동결 이식을 시작하려면 생리 3일째에 병원에 오라고 했었다.

생리 3일째 날, 보건소에 들러 ‘난임 지원 결정통지서’(냉동배아 1차)를 발급받았다. 통지서를 받아 나오는데 보건소 직원이 물었다.

 “어느 병원에 다니세요?”

 “아 네, OOO 병원이요.”

그녀는 웃으면서,

 “요즘 그 병원 ‘5일 냉동배아’ 이식 성공률이 높아요! 잘 되실 거예요.”라고 말했다.

말 한마디가 이렇게 따뜻하다니.. 솔직히 감동받았다. 고맙다고 손이라도 잡고 싶었다. 코로나만 아니면;      


오후 3시의 병원진료. 이 맘 때면 한가할 줄 알았는데, 또 한 시간 반을 기다렸다. 담당 선생님은 지난 채취 때 냉동을 해둔 배아의 개수가 10개나 되고, 그들의 상태가 대체적으로 좋다고 했다. 나는 5일 배양된 배아를 2개 이식하기로 했다.(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만 35세 이상 여성은 최대 2개까지 5일 배아를 이식할 수 있다.)


또 주사를 맞아야 하는 줄 알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약 처방만 있었다. 신선 이식 1차에 비하면 정말 수월하다.     


[진행 과정]

5/17 생리 시작 3일째 : 병원 진료(프로기노바 처방)

5/28 약 복용 12일째 : 병원 진료(자궁내막 두께 확인)

(자궁내막이 두께가 두꺼우면) 그날로부터 5일 되는 날(6/2) 이식

* 자궁내막이 두꺼워지지 않으면 일주일간 약을 더 복용하고 이식     


순조롭게 진행될 것만 같았던 냉동 1차인데, 자궁내막 두께라는 변수가 또 생겼다.

도대체 시험관 시술이란 놈의 변수는 몇 가지나 될까….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서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병원 진료를 받고 나오면서도 그렇게 마음이 무거울 수가 없었다. 이식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니….     


후.. 세상일 어느 것 하나 도통 쉬운 게 없구나…. 집에 돌아오니 ‘엄마’ 생각이 났다. 요즘 ‘엄마’에게 전화해서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는 일이 많아졌다. 문득문득 엄마 얼굴이 떠오른다.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면서 달라진 여러 많은 것들 가운데 스스로 가장 대견하고 기특하게 여기는 점이라면 바로 이 것이 아닐까 싶다. 엄마와 아빠를 생각만 해도 찔끔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는 거. 뭔지 모를 고마움과 애틋함으로…․     


나는 원래도 눈물이 많고 부모님을 끔찍이 사랑하긴 했었다.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몸이 힘들고 마음이 답답할 때 오롯이 짜증을 뱉어낼 수 있는 상대가 ‘엄마’밖에는 없다는 걸 알고 나서는 엄마에 대한 애착이 더 커졌다. 엄마도 유방암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받았을 때,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고 한다. 그때만큼 외할머니를 그리워한 적이 없다고 했다. 남편도, 자식도, 엄마만큼 편하게 하소연할 곁을 주지 않았으니까…․ 외할머니 앞에서 펑펑 울고 싶었다는 엄마 말을 듣고 엄마에게 미안해서 목 놓아 울었다.      


나는 딩크도 아니지만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내가 없어진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언젠가는 부모님을 위해서, 그리고 남편을 위해서 하나쯤은 있어야겠지 라고만 생각했었다. 시험관 아기 시술을 진행하면서 '엄마'가 되고 싶은 생각이 이토록 간절해질 줄은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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