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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삐 Jun 25. 2021

꿀삐의 난임분투기⑬

무소식이 희소식?

동결배아 이식 날

대망의 이식 날. 이식 시간은 오전 9시 50분. 20분 정도 일찍 병원에 도착했다. 먼저 채혈실에 가서 피를 뽑고 접수를 했다.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앞에 대형 TV에 아이가 나오는 영상이 나온다. 이게 뭐라고 눈물이 난다.

남편 몰래 눈물을 쓰윽 닦았다. 남편은 노트북을 켜놓고 벌써 일을 시작했다.


내 이름이 호명되고, 나는 1인 침대가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하의를 탈의하고 가운을 입은 후 침대에 누웠다. 잠시 뒤 이식실에서 담당 선생님을 만났다. 그녀는 오늘도 해맑다. 나는 시술 의자에 앉았다.

'오늘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이식할 때의 느낌을 온전히 느껴야지! 그래서 글로 전해야지!' 다짐했다. 이윽고 나의 그곳은 강제로 벌려졌다. 이식실 안에 있는 몇 명의 사람들이 다 그곳을 주시하고 있을 때, 나는 이식하는 느낌을 느끼고 싶어서 온 정신을 집중했지만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선생님이 "이식 잘 되었습니다."라고 말씀하시기에 끝난 걸 알았다. 40분 정도 침대에 누워있다가 배아 사진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간단하게 이식이 끝났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림뿐이다.




이식 + 2

저녁에 샤워를 하다가 더러워진 화장실 바닥을 봤다. 화장실 청소를 언제 했더라. 왜 이렇게 더러워 진거야 하면서 청소솔로 바닥을 신나게 문지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참! 나 어제 이식했지..’

채취와 이식이 한꺼번에 이뤄졌던 지난 차수와 이번 차수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번 차수의 진행과정은 지난번보다 너무 간소하고 이식 후의 증상도 지난번과는 다르게 고요하다.

5일 배양된 배아를 이식해서 하루 이틀 내로 착상이 진행된다고 하는데, 왜 아무렇지 않지? 내 배아가 소변과 함께 흘러갔나? 똥을 싸다가 튕겨져 나갔나? 샤워를 하다가 씻겨진 건가? 도통 모르겠다.

증상이 없으니 증상 놀이도 없다.




이식 + 3

생리주기를 알려주는 앱(app)에서 알림 메시지가 떴다. 내일이 가임 예정일이라고. 곧 배란일이라고. 내가 시험관을 하는지 알리 없는 앱은 오늘도 지가 할 일을 참 열심히 하고 있다.

아침부터 뱃속이 쿡쿡거리고 와이존이 쑤시는 듯한 느낌은 배란일이 가까워졌기 때문일까?  

점심을 먹은 후에는 속이 더부룩하고 머리가 띵하다. 체온을 재보니 37.5~37.6도.. 열이 나네..

체한 건지, 프로게스테론의 영향인지, 착상 때문인지.. 정말 모르겠다.




이식 + 4

며칠 동안 추어탕을 먹었다. 이식 후로 하루에 한 번은 소고기를 먹는다. 아침을 먹으면 포도즙을, 점심을 먹으면 두유를 챙겨 먹는다. 찬 음식은 일절 먹지 않는다. 찬물, 아이스크림, 밀가루, 냉면, 오이, 커피 금지. 집안일은 최대한 하지 않고 시간만 나면 누워있는다. 특히 질정을 넣고 나면 한 시간씩 잔다. 쪼그려 앉기 금지, 서서 샤워하기, 허리 숙이지 않기, 많이 걷지 않기.. 이게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이식 + 5

며칠 만에 처음으로 남편과 외출을 했다. 파주 아웃렛에 가서 여름에 입을 재킷을 샀다. 쇼핑은 언제나 즐겁다. 이식하고 5일 만에 차가운 음료를 먹었다. 딸기 라떼. 진짜 꿀맛이다. 기초체온이 계속 높아서 그런지 좀만 걸어도 덥다. 땀이 뻘뻘 난다. 생전 여름에 덥다는 말을 안 하던 내가 덥다는 말을 달고 사니, 남편이 의아하게 생각한다. 저녁에는 친정에 갔다. 가족들과 친정 근처에서 장어구이를 먹었다. 평소 좋아하지는 않는 음식인데 뱃속에 있을 배아에게 힘내라는 의미에서 내가 메뉴를 골랐다. 부디 힘을 내서 착상을 하길!


아무런 증상도 없지만, 체온이 계속 37.5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거 보면, 내 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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