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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삐 Jul 04. 2021

꿀삐의 난임분투기⑭

얄미운 사람, 그 이름 남편

이식 삼일째에 남편은 내가 이식한 걸 잊은 것 같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남편이 말한다. “여보, 만둣국이 먹고 싶어.

나는 남편이 먹을 만둣국과 내가 먹을 추어탕을 준비했다.


이틀째 점심 무렵에도 그랬다. 아침에 먹은 밥그릇을 설거지하면서 남편이 먹고 싶다는 ‘간장계란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누가 배를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고기를 구워 먹으려고 아침에 꺼내놓았는데 힘들 것 같아서 못했다. 꽤 오랫동안 달그락거렸는데 남편은 방문 한 번 열어보지 않았다. 체온이 높은 데다가 불 앞에서 서있으니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여보 나와, 밥 다 됐어.”나는 최대한 감정을 누르고 말했다. 그 순간 갑자기 남편이 누군가와 통화를 시작했다. 5분 정도 지나서야 방문이 열렸다.


“여보~ 왜 소고기는 안 구웠어? 당신 소고기 먹어야 된다며?”

 

나는 버럭 화를 냈다.

“당신 왜 아침 설거지 안 했어? 설거지가 그렇게 힘들어? 설거지랑 당신 먹을 점심이랑 소고기랑 내가 그걸 다 할 시간이 어디 있어? 그리고 밥을 다 차려놨는데 왜 통화를 하는 거야? 나 이식 둘째 날이야, 배가 계속 콕콕 쑤셔. 오늘 같은 날은 자기가 밥 좀 차려주면 안 돼?”


남편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 진짜 배부르다고 생각하지 않아? 다른 여자들은 일하면서 시험관 시술해. 내 덕분에 휴직해서 시험관도 하고, 휴직한 후에 내가 집안일도 많이 도와주는데. 도대체 나 같은 남자가 어디에 있다고 매일 그렇게 서운하다고 말하는 거야? 나도 서운해!”

 

나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상처투성이인 말들. 도대체 휴직해서 배부르다는 소리를 몇 번째 듣는 건지. 집안일은 도와주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거라고 그렇게 말해도 도와준다는 표현을 하는 남자. 도대체 나 같은 남자가 어딨다는 건 누구와 비교하는 걸까.(혹시 가부장적인 아버님과 비교한 건 아니겠지)

후아. 대한민국은 출산율 향상을 위해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지원금 몇 푼 쥐어주면 ‘아 나라에서 돈도 주네!’ 얼씨구나 하면서 애 낳나? 애를 낳으면 뭘 해, 아직도 집안일, 출산, 양육은 온전한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태반인데! 남자들은 착각이 심한 것 같다. 본인은 절대 보수적이지 않은 남자고 다른 남자들보다 훨씬 더 가정적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내가 휴직을 하고 남편은 거의 가사를 내려놓았다. 남편은 가끔씩 선심 쓰듯이 집안일을 한다. 먹고 싶은 것도 많아졌고 반찬 투정도 심해졌다. 청소 빨래에 대한 잔소리도 한다. 어찌 보면 남편 명의의 집에 얹혀살면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활하는 입장이니(마치 내가 기생하는 벌레가 된 느낌이네) 남편의 저런 태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몸이 정상인가? 나는 주사 맞고 약 먹고 내 몸 쑤시고 망가뜨리면서 이러고 있는데 이러면 안 되잖아?

 

나는 오늘도 결심한다. 늙어서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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