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노예
어느새 나는 임신 테스트기의 노예가 되었다. 이식 6일 차 - 빠른 사람은 희미한 두 줄을 볼 수 있다는 그 날- 부터 임신 테스트기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침 첫 소변으로 해야 정확한 결과를 볼 수 있다는 설명서를 무시하고 오후 시간에 해봤다. 결과는 한 줄.
역시, 아침 첫 소변이 아니라서 결과가 이렇게 나오나 보다..
7일 차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몇 분 후 나는 임테기의 결과를 확인하고 아직 방에서 자고 있는 남편에게 뛰어갔다.
“여보, 나 두 줄이야!”
남편은 놀라 임테기를 받았다. 이 각도 저 각도에서 쳐다보던 남편은 어렵게 입을 떼었다.
“여보, 아무리 봐도 한 줄이야.”
나는 여기 두 줄이 보이지 않냐면서 계속 남편에게 임테기를 들이밀었다.
분명 화장실에서 두 줄로 보였는데.. 조명 탓인가.
나는 임테기를 들고 주방에 갔다가, 화장실에 갔다가.. 방에 갔다가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혹시 사진으로 찍어서 확대하면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찍어 봤다.
아까 본 건 뭐지? 마음속 한 줄?
나는 먼저 임테기를 사용해본 사람들의 소중한 후기를 꼼꼼히 읽으면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쌍둥이가 아니면 시약선이 희미할 수 있구나.’
‘사람에 따라서 시험관 시술 10일 차에 두 줄이 나타나는 사람도 있구나.’
‘테스트기 종류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구나.’
‘임테기로는 한 줄인데 피검에서 임신으로 나온 사람도 있네?’
임신 테스트기의 노예로 전락하다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가..
나는 증상 하나에 반응하고, 놀라고, 의심했다. 수시로 증상을 일기장에 기록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핸드폰을 바라보면서 지냈다. 눈을 뜨자마자 '검색'으로 시작해서 '검색'으로 끝나는 하루. 갑자기 우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집에서 빈둥빈둥 뭐 하는 거지? 일 년 열두 달 쇠털같이 많은 날 중 하루일 수도 있지만, 내 인생에 다시는 오지 않을 가장 젊은 날이기도 한데 말이야.
회사를 다니면서 힘겹게 시험관 시술을 준비하는 다른 예비 엄마들도 있는데 이렇게까지 무기력한 내 모습이 꼴 보기 싫다.
먹고 자고 또 먹고.. 임신을 위해서 사육당하는 느낌이다.
운동도, 운전도, 빵도..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모든 것이 다 금지된 채로 늘어나는 뱃살과 뒷구리 살을 보며 내 한숨과 푸념은 잦아졌다.
그래도 ‘임신’이면 다 괜찮다. 이런 것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그렇게 다짐했는데..
아침마다 만나는 그 작은 요물(임신 테스트기)이 임신이 아니라고 말해줄 때마다 나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