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식물학자, 천문이야기-현재

새로운 경험, 새로운 사람, 새로운 욕심

by 달삭

평온한, 한가한, 무료한, 여유, 할 일 없음, 여가…

이 잔잔한 단어들.

내가 고3 때 떠올린 대학생활에 대한 단어들이었다.


절대 바쁨의 느낌이 들지 않는 단어.


'저녁에 할 일 없으면 헬스를 배워서 기숙사 헬스장을 가볼까.

카페 탐방을 다녀볼까.

기숙사 살면 되게 좀 쓸쓸하긴 하겠다…'


라는 생각도 무색하게

그리고 감사하게도


내가 좋아서 하게 된 하나.

선배들이 밥을 너무 열심히 사주셔서 가게 된 동아리 하나로 2개의 동아리가 생겨버렸다.


둘 다 할 수 있는 만큼 욕심껏 해본 결과…


2학기가 될수록

'쉴 수 있을 때 혼자 쉬자.

공부할 수 있을 때 하긴 해야하는데...

시간이 없다…'

라는 대학생활을 하게 되더라.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을 만날수록 만나는 것 자체에

점점 긴장이 없어지니까

시간은 없는데

오히려 여유라는 것은 더 생기는 것 같았다.


외향형과는 절대 거리가 먼 대문자 I형으로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사람을 만나다 보니

배우는 것도 느끼는 것도 많았고

세상 자체가 넓어지게 된 것 같다.




공댄데 철학과 복수전공을 하던 선배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야지를 선언하신

생명계열과 공과계열인데 천문학과 복수전공을 하시던 선배님들.


와 저렇게 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해 주시던

군대에서 휴가 나와서 별 보러 동아리 오시는 선배님


내가 아는 작가님의

을 좋아하시는 선배님


술 종류 설명해 주시는 선배님


꿀강의 족보 사놨던 거 공짜로 주시는 선배님


방학이면 내내 해외로 나가시는 선배님.


반갑게 밥약 약속을 받아준 선배님들.


먼저 친해지고 싶다고 연락해 주던 친구.


그 친구를 보고 엠티 같이 가자고 용기 내 연락해 보자 쉽게 받아준 다른 친구.


어색해했을 텐데 기숙사까지 길을 돌아 함께 가준 친구.


인간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말을 붙여주던 친구.


엠티 갔다가 즉석으로 잡은 밥약 약속에

연락을 안 해도 나와 주던 사람들.




자연스럽게 저 사람이 하는 것을 나도 해보고 싶다.

아 저렇게 하면 되는구나를 깨닫게 된 만남이었다.




그리고 그 넓혀진 것에 발을 내딛게 해 준 건 또 다른 동아리의 사람들.


공댄데 심리학 복수 전공을 하시던 다른 동아리 선배님은 새 학기 또는 방학이 되면 늘 계획을 물었다.


그런 거 세울 생각도 없었어서 계획 없다고 말해도

매번 여행이나 자격증 계획을 물어왔다.


그러다 보니 그런 건 다른 사람들의 일인 줄 알았는데

나도 그 계획을 생각해 보고 도전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 동아리를 같이 하던 내 친구는 늘 활동이 끝나면 어땠는지 물어봐줬고

그래 너 별생각 없이 그냥 한 활동에도

대답을 위해 다시 생각하고 머릿속으로 정리해서

한 문장이라도 내뱉었다.


그 동아리의 다른 선배는

나만 이야기할 거리가 없고 힘든 게 아니라는 것을 ,

어떻게 해야 편하게 대화 주제를 잡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그 동아리의 또 다른 선배는

알바를 적극 추천했고 맛있는 게 사람에게

얼마나 행복을 주는지를 보여주었다.


그 동아리의 또 다른 친구는 늘 고민을 물어뫘다,

동아리가 힘들지 않은지, 이해가 안 되지는 않는지.


내 이야기를 하도록 해준 사람들.




그래서인지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고 일이었다는 것과는 다르게

어느새 만남이라는 것이 즐거운 일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예전 친구들을 소중히 여기기보단 현재 관계에만,

그마저도 끝나면 끊어버리려는 나에게

엄마가 늘 그건 아니라고 말했었는데, 그땐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본가로 내려와서도 고등학교 친구를 피하려 하지는 않는다.




어릴 때 알파와 다이소에 가던 것을 노는 것이라면서 함께 돌아다니던 친구,

사실 그런 만나는 행위가 귀찮았었다.


하지만 어느새 카페에 앉아할 일을 하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친구가 되었고


노는 것 하나 노래방 가는 것 하나 버스 타는 것 하나마저 걱정을 해가면서 하던 나는 이제 아무리 어색한 사이와 만난다 해도 그냥 만날 수 있었다.




사람뿐이 아니었다.


시험 치는 것도 긴장이 사라져 버렸다.

사실 이건 좋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빠가 수능 전에 맨날 말하던 지인사 대천명은 시험 전에

"하핳 지인사 대천명"이라고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물론 고등학생 때와 다르게 하늘에 맡길 만큼 공부하진 않은 것 같지만)




학교에서 가는 소풍, 수련회, 수학여행에 스트레스받던 나는

이제 하루 정도, 2박 3일 정도 놀러 가는 건 긴장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작은 규칙 하나에도 안 지키면 괜히 눈치를 봤는데,

작은 일은 그냥 대충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꼭 학과에서 정해진 대로 시간표를 만들지 않아도 되고

시험 성적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아닌 데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거의 내가 보기에는 도전적인 삶을 살고 있으니.


이런 환경 속에서

나도 당연히 여행을, 새로운 것을, 도전을 꿈꿨고


내가 냅다 천문학과 복수전공을 고민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2학기 내내 천문학과 복수전공을 꿈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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