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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신 Mar 25. 2023

나에겐 아몬드가 있다

책, 아몬드

 <아몬드> 유명한 책이지만, 너무 늦게 알아 몇 개월 전에 읽었다.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를 무작정 빠지게 만든 책. 초반에 잔인한 장면이 나오지만 나중에 그게 잊힐 만큼 좋았다.


 책 <아몬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의 이야기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타인과 감정을 나누지 못하는 상태에서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 소년에게 새로운 만남이 생기면서 치유받고 성장하게 된다.


 나에겐 아몬드가 있다. 당신에게도 있다.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거나 가장 저주하는 누군가도 그것을 가졌다. 아무도 그것을 느낄 수는 없다. 그저 그것이 있음을 알고 있을 뿐이다. _ 손원평 <아몬드>



 한동안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아 감정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여긴 적이 있다.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면 우울함도 느끼지 않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내 몸에 상처가 나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 상처를 키웠을 때, 알게 되었다. 고통을 느낀다는 건 위험을 알려주는 신호가 되는 거였다. 게다가 감정이 사라지면 다른 사람이 어떤 감정인지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거였다.

 우울함도 그렇다. 스스로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은 신호다. 아직 그게 뭔지 느끼지 못하지만 말이다.

 <아몬드>에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은 감정을 알 수 없으니 내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다.

 

 사실 나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내가 미세한 단어의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정상인지 아닌지 따위는 내게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_ 손원평 <아몬드>



  주인공 소년은 감정이 아닌 말과 행동으로 그 사람의 감정을 알았다. 그러나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나도 가끔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한다. 겉으로 입꼬리를 올린다고 해서 그 사람이 기분이 좋다는 확신을 해서는 안된다. 상대의 마음을 가늠한다고 해서 겉으로 표현해서도 안된다. 그게 맞든 틀리든 상대에겐 마음을 들킨 것만으로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계절은 도돌이표 안에서 움직이듯 겨울까지 갔다. 다시 봄으로 돌아오기를 되풀이했다. 엄마와 할멈은 이런저런 일들로 티격태격하고 자주 깔깔대다가도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말수가 줄어들었다. 해가 공기를 붉게 물들이면 할멈이 소주를 들이키며 캬, 소리를 냈고 엄마는 가슴에서부터 나오는 목소리로 좋다, 하고 장단을 맞췄다. 캬 좋다! 엄만 그 말의 뜻이 행복이라고 했다.  _ 손원평 <아몬드>


 상대의 마음을 추측하는 것과 공감은 다르다. 상대의 마음을 나도 이해한다는 의미다. 그걸 알면서도 잘 되지 않는다. 공감을 한다면서도 행동하지 못하고 쉽게 잊는다. 아마 감정을 깊이 느끼는 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까지 그 마음에 빠지게 될까 봐 두려워 쉽게 흘리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아몬드는 어떤 것일까. 주인공 소년과는 다르게 나의 감정을 너무 크게 느껴 내 일상까지 지장을 주는 게 아닐까.

 누군가와의 만남에서 혹시라도 내가 무표정하게 을 놓고 있더라도 절대 공감하지 않는 게 아니니 오해하지 말기를. 나의 감정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한 노력이니깐.


대부분 사람들은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_ 손원평 <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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