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신 Sep 02. 2024

어른의 자격 『페인트』

삶을 대하는 방식

 “엄마, 우린 왜 서울에 살지 않아? 왜 부자가 아니야?”

 친구 아이가 부모에게 한 말이었다. 아이가 자기도 모르게 남들과 비교하고 있었다. 비교는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들고 무력하게 만든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비교되는 삶을 살아왔다. 가족, 학교, 사회까지 비교가 없는 곳이 없었다. 나 그대로 살게 된  얼마 되지 않았다. 책을 읽고 작가가 되면서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삶이 시작되었다.

 부모나 자녀, 선생님이나 학생, 상사나 직원의 역할이 되면 서로 기대하는 기준이  있다.  잣대로 나와 서로를 저울질한다. 

 나의 환경을 스스로 선택하고 만든다면 삶이 달라질까?


 ‘만약에 부모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책 『페인트』가 주는 질문이다. 버림받은 아이를 정부가 책임을 져 열세 살이 되면 부모 면접을 통해 선택하는 내용이다. 만약 내가 아이라면 어떤 부모를 선택할지 생각하게 만든다.

 좋은 가족의 모습은 무엇일까? 아마 사람마다 바라는 기준이 다를 것이다. 나는 좋은 가족 이전에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린 시절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고 자랐다. 유교 사상이 남아있는 교회나 학교에서 자녀는 부모 말이나 스승에게 무조건 '순종’을 강요했다. 숨이 막혔다. 어른은 아이들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대접받기만 바라는 요즘 '꼰대'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건 아이건 서로 돕는 존재라 여겼다. 내가 크면 아이들에게 숨 막히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존재들 아니에요? 그들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건 그만큼 상대를 신뢰한다는 뜻 같아요.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기 약점을 감추고 치부를 드러내지 않죠. 그런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가 무너져요. _이희영『페인트』



 주인공 제누 301은 열아홉 살로 부모 면접을 많이 했지만 매번 선택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의외인 사람에게 끌렸다. 겉으로 좋아 보이는 것보다 솔직한 모습을 보인 사람이 좋았다. 처음부터 가면을 벗어던진 사람이 끌린 것이다. 아마 신중하게 선택하더라도 새로운 가정에서 얼마나 힘들지 이미  것 같다.

 부모의 성품은 아이에게 많은 영향을 주지만 가정환경도 중요하다. 어떤 아이는 부모를 선택할 때 환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을 적극 지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실적인 선택일지 모른다.


 소설 속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하는 게 부러움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제누 301은 혼자 살아온 19년 동안의 공백이 컸다. 그만큼 새로운 가족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내 가족의 시간들이 그저 만들어진 게 아니다. 내가 집에 있다가 엄마를 보면 '아, 내겐 엄마가 있었지.' 하지 않는다. 서로 있을 자리에  있다는 게 당연하고, 많은 시간을 걸쳐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영화, 리틀보이

  

 온전한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건, 그게 누구든,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나를 이루는 요소라고 믿는 것들이 정작 외부에서 온 것일 수도 있으니까.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 낯선 사람과 친구가 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리듯, 내가 나를 알고 친해지기까지, 그렇게 스스로를 이해하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_이희영『페인트』



 ‘반대로 부모가 자녀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떨까?’

 아마 대부분의 부모들이 사춘기가 지난 아이를 택하거나 수월하게 사춘기를 지날만한 아이를 택할지 모른다.  모든 인간에게는 평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데 그 양을 어느 정도 쓴 아이를 선택하고 싶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겐 시기가 온다. 지랄을 소모하는 시간, 자기 자신을 찾는 시간, 곁에 있는 사람과 이별하는 시간. 만약 모든 시간을 건너뛴다면 순탄한 삶이 지속될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가정은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곳이 아니다. 적당한 시련과 결핍은 나를 더 성장시켰다. 환경이 어떻든 누구에게나 문제는 일어난다. 언제 어디서 고개를 내밀어 나를 공격할지 모른다.

 지금과 다른 선택을 하면 다른 삶을 살 거라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어차피 선택은 내가 한다. 선택이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방식에서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모른다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모르기 때문에 배울 수 있고, 모르기 때문에 기대할 수 있으니까. 삶이란 결국 몰랐던 것을 끊임없이 깨달아 가는 과정이고 그것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긴 여행 아닐까? _이희영『페인트』



 삶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내 삶에 대한 큰 기대가 없다. 그저 내 글이 사람들에게 꾸준히 읽히면 좋겠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이 다는 걸 모르기에 계속 쓸 것이다. 앞으로 어린이나 청소년 소설에 도전하려 한다.  숨 막히지 않는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뭐든 해볼 생각이다.


저자 이희영 / 출판 창비


이전 11화 바꿀 수 없는 것을 대하는 자세 『피터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