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더위는 치열했다. 온 세상을 태울 듯이 더웠다. 원래 내게 여름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열정을 쏟아내는 듯한 여름의 태양이 좋다. 나무들이 무성한 초록빛이 되어 반짝이면 기분 좋다. 푸릇푸릇한 여름이 오면 내성적인 내 성향도 마치 외향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뭔가 더 하고 싶고 가만히 있고 싶지 않다.
여름이 오기 전, 여름에 읽는 책을 검색하니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가 나왔다. 나도 모르게 제목에 이끌렸다. 어떤 내용의 소설일지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 여름보다는 건축이야기가 많지만 주인공 사카니시의 사소한 일상들을 엿볼 수 있었다.
사카니시가 건축사 사무소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여름 별장 사무소에서 국립도서관 공모전을 준비하는 이야기다.
여름 별장에서 지내는 동안, 여닫이가 나쁜 문짝 같던 내 행동 거지가 조금씩 덜컹거림이 줄어들면서 레일 위를 매끄럽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이 느껴졌다. _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주인공이 일이 손에 익어가는 과정을 잘 표현한 문장이다. 일본 문화인지 모르겠지만 글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나는 성격이 급해 글을 빨리 읽는 편이다. 그러나 이 책을 빠르게 읽을 수 없었다. 문장의 간격이 느껴져 저절로 천천히 읽혔다. 내용 전개도 그랬다. 소설에선 그 누구도 빨리 일 하라고 다그치지 않고 스트레스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주인공들이 국립도서관 설계 경합을 준비하는 건 아주 큰 과제이다. 예전에 혼자 글을 써서 ‘우수 출판 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에 지원할 때 속이 쓰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오랜 시간 써온 글을 몇 달 동안 고치고 고쳐 제출했다. 결과는 잘되지 않았고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설계 경합이 일의 과정 중 하나인 것 같았다. 건축이 삶에 일부 듯 경합 자체가 일상의 한 부분 같았다. 당장 해야 할 일을 쌓아두고 허우적대던 내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기분이 좋아서 주절주절 말할 때와, 멍하니 혼자 있을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훌쩍거릴 때, 여러 가지 상황에 놓이는 것이 인간이니까, 방도 거기에 맞춰 역할을 분담하는 게 좋다, 고. _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그들과 나와 또 다른 점은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 최고 자리에 있었다. 소설 속 무라이 선생의 건축관은 자연과 잘 어우러지고 사는 사람의 삶이 녹아드는 공간을 원한다. 편안함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중요하다. 나중에 편하기 위해 지금 열심히 일하고 치열하게 살아간다.
누군가가 쉴 때 책을 읽는다고 했다. 내게 휴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때로는 의무감으로 책을 읽고 시간을 정해놓고 글을 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동안 긴장의 연속이다.
건축을 대하는 무라이 선생은 여유가 있었다. 어느 정도의 치열함 속으로 걸어가 본 사람은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나는 거기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다. 힘들면 편해지고 싶고 편해지면 다시 불안하다.
대부분 사람들은 잘못된 일을 저지르면 불안해한다. 내 잘못으로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하고 다닐까 봐 두렵다. 나는 가끔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이 좋지 않을까 봐 무섭다. 받아들이고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면 되는데 막상 이야기를 들으면 계속 생각난다. 시간이 지나 생각하면 별거 아니었다. 불안의 문을 열고 나오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큰 존재가 아니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에 지레 겁을 먹고 한걸음 물러서는지 모른다. 도서관에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마주했을 때 놀랐다. 너무 두꺼워서 선뜻 빌려오고 싶지 않았다. 그 안에 복잡한 등장인물 관계가 이어질까 두려웠다. 소설을 읽을 때 등장인물이 많으면 누가 누군지 몰라 앞장으로 되돌아갈 때가 있다. 번거로움 보다 자존심이 상한다. 그게 뭐라고, 정말 별것도 아닌 일에 자존심을 세우는지 모르겠다. 마음에 걸려 체한 것 같은 일들을 나중에 돌아보면 하찮은 일이었다. 어쩌면 지금도 나도 모르게 그런 일을 반복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반대로 집 안에 계속 있으면 점차 견딜 수가 없어져서 밖에 나가고 싶고, 자연 속을 걷고 싶고, 나무와 꽃을 보고 싶고, 바다를 보고 싶다고 원하게 되지. 인간의 내면 같은 것은 나중에 생긴 것으로 아직 그다지 단단한 건축물은 아니라는 증거일 거야. 집 안에서만 계속 살 수 있을 만큼 인간의 내면은 튼튼하지 못해. _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지금은 9월이다. 여름은 지났지만 다음 해에 다시 돌아온다. 어쩌면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있는지 모른다. 다만 내가 잊을 뿐이다.
타닥타닥 키보드를 치며 글로 만들어지는 이 시간이 치열한 여름 같아서, 잔잔함에 한걸음 다가서고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