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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신 Sep 16. 2024

모른척하지 않는다면 『이처럼 사소한 것들』

공감받는다는 것

 학창 시절에 불우한 가정환경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선생님의 잘 챙겨주라는 당부에 친구들이 신경 써줬다. 내성적이었던 그 친구에게 말 한마디를 더 건네거나 같이 어울렸다. 어떤 친구는 도시락을 하나 더 싸와 나눠 먹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 그 친구가 친구들의 도움을 받기 싫다고 했다. 선의를 뿌리치는 걸 보고 다들 이상한 아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이유를 알고 보니 불쌍한 아이라는 시선이 싫었다고 한다. 동정받는 것 같아 힘들었다고 한다.

 선의를 베풀었지만 결국 상대에게 좋은 일이 되지 못했다. 남을 위해 베푸는 게 무조건 좋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누군가는 도움을 받아야 할 환경이지만 어쩌면 가난보다 창피함이 더 싫을지도 모른다. 뻔히 상대의 상황을 알지만 상대가 원치 않는다면 모른척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상대를 외면하지 말아야 할 상황은 직접 도와달라고 할 때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눌 때 상대가 진심으로 고마워하면 정말 뿌듯하다. 그러나 도움을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시간과 노력, 돈이 들어간다. 단순하게 끝나지 않는 도움은 선뜻 나서기가 힘들다.

 누군가가 길가에서 나를 붙잡고 도와달라고, 나쁜 사람들 손에서 구해달라고 하면 움찔할 수밖에 없다.     


 "아저씨, 우리 좀 도와주시겠어요?" 펄롱은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강까지만 데려다주세요. 그거면 돼요" 정말 진지한 말투였고 더블린 억양이었다.

 "강에?"

 "아니면 대문 밖으로만이라도 나가게 해 주세요." _ 클레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책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18세기 카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는 '막델레나 세탁소' 배경의 소설이다. 주인공 펄롱은 수녀원에서 미혼모나 어린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걸 봤다. 수녀원에 석탄 배달을 간 펄롱에게 누더기 옷을 입은 소녀가 구해달라고 했다.


 펄롱이 아이들을 만나고 더 괴로웠던 건 자신도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부인의 도움으로 펄롱의 어머니가 가정부로 일하며 잘 살 수 있었다. 펄롱은 결혼을 해 다섯 명의 딸을 다.

 펄롱은 집으로 돌아와 그 아이들 중 한 명이 자신의 아이라면 어떨지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살아가면서 모른척해야 할 일이 있는 거라 했다.  

 이야기니 펄롱이 소녀를 도와줬으면 했지만 막상 나의 일이 된다면 모른척했을지도 모른다.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

 


 펄롱은 힘든 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수녀원의 아이들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소녀가 얼마나 힘들면 자기에게 도와달라고 했을지 느꼈다. 자신의 도움이 얼마나 가치를 발할지 이미 알았다.

 펄롱은 소녀를 모른척하지 않았다. 누구나 펄롱처럼 될 수 없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조건 선의를 베풀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억지로 할 필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하고, 아니면 하지 않아도 된다.

 좋은 일을 할 때 갈등 된다. 내가 누구를 도와줄 상황이 아니라는 마음과 도와주고 싶은 마음. 고민되는 이유는 누군가를 도와주면 한 번이 아닌 그 사람이 살아가게끔 만들어주는 ‘지속성’ 때문이다. 나의 도움이 끝까지 갈 수 있는지 스스로를 믿기 힘들고 시간이나 금전적 여유를 계산하게 된다.

 누군가를 돕는 데에 반드시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지 않다. 공감만으로 그 사람을 도울 수 있다.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 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 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 -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 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 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_ 클레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



 내가 펄롱처럼 누군가의 부탁에 손잡아 준 일이 있는지 돌아봤다. 종종 도와주기도 했지만 상대의 인생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내게 도움을 청한다면 생각한다.

 '얼마나 힘들면 내게 저런 부탁을 할까?'

 그 사람 마음이 되도록 애쓴다. 다른 사람 마음을 공감하면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아도 나아지는 걸 봤다. 나도 공감받았을 때 내 아픔이 타당하다는 생각에 안심되었다.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기 싫을 때가 있다. 평범한 하루가 때로는 안심할 방패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삶에서 계획되지 않는 일들에 선뜻 발 벗고 나서기 힘들다.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건 하나의 용기이자 모험이 될 수 있다. 그 용기에 맞서는 것 중 하나가 공감이라 생각한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_ 클레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삶의 여정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있다. 내 삶이 별 탈 없이 지나가더라도 어느 순간 어떤 모습으로 간절해질지 모른다.

 가진 게 많아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 생명의 끈이 될 수 있다.



저자 클레이 키건 / 출판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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