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향형이면서 주의 산만하다. 성인이 되어서도 내가 산만한 줄 몰랐다. 취업 준비를 하며 알았다. 도서관에 가면 앉아 있어도 손발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회사 면접을 가서는 다른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하는데 혼자 두리번거렸다. 생각해 보니 학창시절 공부할 때 주위 친구들의 목소리가 잘 들려 여기저기 참견하기도 했다. 예전엔 한 번에 여러 가지를 듣는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냥 산만한 거였다.
내 책상 위엔 책이 대 여섯 권 있다. 한 번에 여러 책을 읽기도 하지만 책상에 책이 없으면 자꾸 딴짓을 한다. 게다가 한 번에 집중을 30분도 넘지 못하고 딴생각을 한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책이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이다. 너무 많은 등장인물과 이해하기 힘든 사건들. 먹기 싫은 음식을 꾸역꾸역 먹는 기분이었다. 읽는 게 괴로워서 잠을 자면 말도 안 되는 막장 드라마 같은 꿈을 꾸기도 했다. 일 년 가까운 시간에 다 읽었다. 내 삶에 반전은 없었다. 어려운 책을 읽었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 생각과 비슷한 책만 골라 읽는 사람들이 있는데 굉장히 위험한 독서법이다. 이런 독서는 생각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좁게 만들고 자신을 편협한 인간으로 만든다. 물론 내가 좋아하고 흥미를 가진 분야의 책을 찾아 읽으며 나와의 연결점을 이어 나가는 것은 중요하지만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는 생각들을 살펴보면서 균형감을 찾아야 한다. _ 사이토 다카시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내 생각과 비슷한 책만 골라 읽는 사람들이 있는데 굉장히 위험한 독서법' 이라는 문장이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게 된 이유다. 나와 반대 지점에 서 있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면 사람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두운 면이 있다. 물론 내게도 있다. 책에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삶이 파괴되는 모습들을 보여줬다. 스스로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했다. 추악한 인간의 이면을 봤다.
마치 내 생각을 보이는 그대로 비춰주는 책이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이다. 어떻게 독서를 해야하고, 독서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알려준다. 내용을 기억해 실천하고 싶어서 대여섯 번 이상 읽었다. 이 정도면 책에 파묻혀 사는 작가라 여기겠지만 전혀 아니다.
나는 책을 맹신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쓴 글은 때로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주관이 들어가 있다. 좋은 부분은 받아들이고 적당히 비판할 줄 알아야 한다. 절대적인 진리나 정답이 있지 않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여러 번 읽는 이유는 좋은 부분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그리고 내 경험만 의존하지 않으려 한다. 고민이 있을 때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것과 비슷하다. 선택의 폭을 넓히게 해준다.
성실하게 읽은 독서량이 쌓여서 어떤 일도 자신감 있게 해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헤매지 않을 기준이 되어준다. _ 사이토 다카시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꾸준히 읽다 보니 천권의 책을 읽었다. 나는 여전히 산만하다. 책이 주는 매력이 많다. 어제보다 나아진 나를 보여준다.
예전에 나는 상대의 말에 요점을 빨리 파악하지 못했다. 아무리 집중해도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알거나 다시 물어서 상대의 의도를 알아냈다. 말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자주 있는 일이었다. 맥락을 파악하지 못했다. 중요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들어야 하는데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에도 귀를 쫑긋 세워 혼자 다른 데로 빠졌다.
책은 주제가 있고 옆으로 이야기가 새도 다시 이어나간다. 내가 다른 데로 빠져도 친절하게 다시 돌아간다. 읽는 훈련을 하니 듣는 것도 수월해졌다. 상대의 말의 의도를 잘 파악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책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거울처럼 나를 보여줬다. 책을 읽다가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하며 이해되지 않던 사람도 다시 읽으면 달라졌다. ‘이상한 사람이 너야, 너! 여전히 못 알아듣는 너라고!’ 라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성실하게 책을 읽어 나가고 다른 이의 생각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는 동안 책에 담긴 지혜와 지식이 내면에 쌓인다. 이렇게 독서로 쌓아 온 것들이 내가 직접 살면서 겪은 경우가 뒤섞이면서 나만의 독특한 내공이 된다._ 사이토 다카시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산만한 사람은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다. 여러 곳에 발을 뻗으려 한다. 호기심이 많아 한 번 시작한 것을 꾸준히 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수히 많다. 이유를 찾는 건 나의 몫이다. 아마 지금 당신은 읽지 않아야 할 이유가 더 많을 것이다. 내가 다 겪어봐서 안다. 아무나 할 수 없으니 더 특별하지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