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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신 Aug 11. 2024

태어났다면 견뎌가라 『달의 궁전』

내향적이어도 괜찮아

 며칠 전 유퀴즈에 엄태구 배우가 나왔다. 아주 내향적이어서 자기소개를 하는 것조차 부끄러워 말끝을 흐릴 정도였다.

  '현장 갈 때마다 무서웠고, 어느 날은 터널을 지나가며 무덤으로 들어가는 길 같다.'

 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 줄 알았다. 배우님의 말에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나는 지인들이 세명 이상 되면 엄청 긴장된다. 낯선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갈때는 마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막상 터널의 끝이 있다는 걸 알지만 무서웠다.

 내 주위에 내향적인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만인에게 사랑받는 배우가 내향적이니 신기하고 좋았다.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을 찾았다는 안도감이랄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니 조마조마한 게 아니라 오히려 편했다.


유퀴즈, 엄태구 배우


 책에서 많은 인물을 만나지만 거의 다 외향형이거나 적극적인 성향이다. 최근 내향적이면서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을 만났다. 책 『달의 궁전』주인공  마르코 포그다. 내향형이지만 때에 따라 적극적으로 변하는 인물이다.

 책 내용은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주인공에게 다양한 시련을 준다. 갑자기 고아가 되어서 외삼촌과 살 때도 잘 견뎠다. 갑자기 외삼촌이 세상을 떠나고 노숙생활을 할 지경까지 갔다. 포그는 삶이 무너지면 다시 일어나 살아간다.     


 그때부터 나는 실제로 나 자신을 돕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손가락 하나 꼼짝하려고 들지 않았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도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 당시에 나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이유를 꾸며 냈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그것은 아마도 절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_폴 오스터 『달의 궁전』   

  


 포그는 노숙생활을 하면서도 스스로 왜 그런지 몰랐다. 어떤 이에게는 그의 행동이 답답할 수 있다. 나는 이해되었다. 마치 우울함에 빠져있던 내 모습 같았다.

 어두운 절망이 마음에 집을 지으면 헤어 나오기가 힘들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온다. 손가락하나 까딱하기 힘들다.

 포그가 다시 일어서는 데에는 자신의 의지와 함께 친구들의 도움이 있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이 두렵다고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포그는 절벽 끝으로 내몰린 상황에서도 다시 삶을 선택했다.

 책을 읽다 보면 일어날 수 없거나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았다. 비현실적이 내용이 많았다. 그러나 삶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삶에 현실 같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간혹 소설이 진짜 세상 같고 내 삶이 소설 같을 때가 있다.

 21년 전 교통사고로 한순간에 전신마비가 되었다. 긴 터널 같았던 삶이 빛을 보게 되니 현실감이 떨어졌다. 책을 읽으며 다양한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점점 좋아졌지만 여전히 힘들 땐 마음이 다른 곳에 가있고 내가 없어진 느낌이었다.  좋을 땐 '이게 현실인가?' 하며 한 번 더 확인했다. 길고 긴 터널을 얼마나 헤맸는지 모른다.




 자네는 몽상가야. 자네의 마음은 달에 가 있어. 그런데 세상 돌아가는 걸로 봐서는 그래 가지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자네는 야망도 없고 돈에도 전혀 관심이 없고 예술을 느끼기에는 너무 철학적이야. 내가 자네를 어떻게 해야 하지? 자네한테는 뒤를 봐주고 뱃속에 음식이 들어 있는지, 호주머니에 돈이 좀 있는지 보살펴 줄 사람이 있어야 해. 내가 죽고 나면 자네는 곧장 시작했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말 거야. _폴 오스터 『달의 궁전』



 포그는 앞이 보이지 않던 에핑을 위해 책을 읽어줬다. 에핑은 포그가 예전으로 돌아갈 거라고 했지만,  포그는 보란 듯이 자신이 살 방법을 찾을 거라 했다. 그리고 죽어가는 에핑을 위해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원래 행동했던 대로 되돌아가려는 본능이 있다. 자기가 하던 대로 해야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그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안다.

 내 마음엔 두 가지가 있다. ‘그래, 네가 그렇지 뭐.’라고 하던 일을 포기하게 부추기거나 ‘아냐, 넌 다르게 살 수 있어.’ 인내하는 마음이 동시에 살고 있다. 좋은 쪽이 이기기 위해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쓴다.

 포그 또한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보다 에핑에게 에너지를 썼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 그냥 지나치지 않으며 삶을 붙잡았다.     


 나는 어느 것도, 하다 못해 허공에 떠도는 먼지조차도 지나치지 않으려고 하면서 차근차근 설명을 해 나갔고, 공간이 무한해져서 세상 속에 무수히 많은 세상이 생길 때까지 공간의 한계를 파고들었다.  _폴 오스터 『달의 궁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은 인내를 배운다. 어떤 이의 이야기라도 나의 이야기로 만들 수 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진정한 나를 볼 수 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아픔과 상실을 경험한다. 잃는 것만이 아니라 얻는 것도 있다. 이 먼지 같은 찰나가 영원이 될 수 있는 것은 내 삶이 계속된다고 아는 순간이다.

 좀 내향적이면 어떠랴, 좀 약하면 어떠랴. 하지만 여전히 무섭다. 나는 이 세상에 내가 사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지 않았으면, 할 정도로 소심하다.  그 정도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런데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고 있다.  '오 마이 갓!'


저자 폴 오스터 / 출판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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