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언젠가는 죽음과 마주한다. 삶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 최대한 빨리 마주하고 싶지 않고 먼 이야기로 미루고 싶다. 살다 보면 내게 일어난 일이 죽음과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가족의 죽음을 경험했거나 죽어가는 걸 지켜볼 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른다. 현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고통이 길어지면 차라리 이 세상이 끝나길 바라기도 한다.
책 『몬스터 콜스』의 소년 코너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 벅차기만 했다. 아버지는 재혼으로 떠났고, 어머니는 암 투병으로 무서운 외할머니와 살았다. 밤마다 끔찍한 악몽에 시달렸다.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지만 말하지 못했다.
누구나 사춘기라는 힘든 시기를 통과한다. 코너에게 사춘기 정도는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엄마가 죽어가는 걸 지켜봐야 했고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제대로 슬퍼할 수 없었다.
코너는 피하고 싶은 현실에서 악몽을 꾸며 주목이라는 괴물을 만났다. 코너는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데려가라 할 때 얼마나 힘든지 느껴졌다. 자신이 어딘가로 가야 괴로움이 덜해지고, 피할 수 있는 돌파구라 여겼는지 모른다.
코너는 땅을 내려다보고, 달을 올려다보았다. 몬스터의 눈만은 바라보지 않았다. 악몽의 느낌이 몸 안에서 자라났고, 주변 모든 게 어둠으로 변해 갔고, 모든 게 어쩔 수 없는 일처럼 묵직하게 느껴졌다. 맨손으로 산을 옮겨야만 하고, 다 옮기기 전까지는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인 것처럼. _패트릭 네스 『몬스터 콜스』
코너는 절벽에 떨어지는 엄마의 손을 간신히 붙잡고 버티는 악몽을 자주 꿨다. 고통스러운 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몬스터는 코너에게 언젠가 진실을 말하게 될 거라 말하지만 코너는 없다고 했다. 자신에게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를 몰랐다.
때로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노쇠하거나 병과 싸우는 사람들. 어쩔 수 없이 병원이나 요양원에 있는 사람들. 그들이나 그들을 보내게 된 이들의 마음은 헤아리기 힘들다. 그 가족들이 코너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맨손으로 산을 옮겨야만 하고, 다 옮기기 전까지는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상황’ 마치 절벽에 손을 뻗어 아픈 가족의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감당하기 힘들다. 불편한 진실을 알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을 지도 모른다.
영화, 몬스터 콜
그리고 만약에 언젠가, 이때를 돌아보고 화를 냈던 것에 대해 후회가 들더라도, 엄마한테 너무 화가 나서 엄마랑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했던 게 후회가 되더라도, 이걸 알아야 한다, 코너. 그래도 괜찮았다는 걸 말이야. 정말 괜찮았다는 걸. 엄마가 알았다는 걸. 엄마는 안다, 알겠니? _패트릭 네스 『몬스터 콜스』
코너 엄마의 병이 악화되자 엄마가 한 말이다. 코너에게 오히려 화를 내 마음을 표현하라고 했다. 코너에게 힘이 되지 못하는 엄마가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픈 사람이나 그걸 지켜보는 가족은 자연스레 앞으로 맞이할 죽음을 상상하지만 입 밖에 내기가 힘들다. 숨기고 있던 말에 아프기도 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당당히 말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 어떨 땐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삶이 온통 어두움으로 둘러싸인 것 같다고 속 시원히 말하고 싶다. 삶이 싫다고 내 삶을 놓는 건 아니다. 더 잘 살아가기 위한 감정 표현이지만 누구에게 말하기 힘들다.
죽음에 가까이 가본 사람은 안다. 병과 싸우며 고통만 짊어진 게 아닌, 후회로 얼룩진 시간을 다시는 만들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거나 따뜻한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 옆에서 지켜본 가족은 더 잘해주지 못한 후회로 산을 쌓는다. 삶은 어떤 선택에도 후회가 남는다. 후회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남은 힘을 다 쓴다면 잘했다고 생각한다.
코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힘을 다 발휘했다. 그러다 악몽에서 절벽에 매달린 엄마의 손을 놓았다. 자신의 잘못으로 엄마가 떨어졌다고 좌절했다.
‘너는 고통이 끝나기를 바랐을 뿐이다. 네 고통. 고통 때문에 네가 겪는 소외감을 끝내고 싶었다. 지극히 인간적인 바람이다.’ 몬스터가 말했다. ‘진심이 아니었어.’ 코너가 말했다. ‘진심이었다. 하지만 진심이 아니기도 했지.’ 몬스터가 말했다. _패트릭 네스 『몬스터 콜스』
코너는 엄마가 살기를 원하면서 한편으로는 세상을 떠나기를 바랐다. 고통스러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 마음에도 선과 악이 종종 싸운다. 가까운 누군가를 죽을 만큼 미워하다가 어느새 미움에 대한 죄책감을 가진다. 스스로 어떤 감정인지 모를 때가 있다. 진실이라고 해서 아닐 수도, 거짓이라고 해서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죽음과 연결되어 있지만 삶과 먼저 이어져야 한다. 살아가면서 악몽 같은 상황을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살아내야 한다. 가까운 이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면서도 견뎌가야 한다.
너무 괴롭다면 마음의 목소리를 자신에게 내어도 괜찮다. 힘들다고 다 놓고 싶다고 스스로에게 외쳐도 괜찮다.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 힘들 때 올라오는 나쁜 생각들을 알아차리면 된다. 내가 지금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쁜 생각이 나 자체가 되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는 생각일 뿐이다.
영화, 몬스터 콜
나쁜 것이 아니다. 생각일 뿐이다. 무수한 생각 중 하나. 행동이 아니었다. _패트릭 네스 『몬스터 콜스』